(리뷰)해외로 뻗어가는 숨은 한국 음악들, ‘일렉트릭 사이드’
세이수미·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빌리카터·빅베트 합동무대
입력 : 2021-09-21 00:00:00 수정 : 2021-09-21 00: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쥘 베른 소설 속 주인공이 돼 세계 음악도시를 누비는 상상을 잠시 했다. 리버풀, 시애틀, 바르셀로나….
 
작은 무대 작은 의자들은 가끔 ‘무한한 우주’를 배양하는 공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홍대 벨로주에서 열린 공연 ‘일렉트릭 사이드’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선 자꾸만 지구가 돌았다.
 
‘일렉트릭 사이드’는 음악 레이블 일렉트릭뮤즈가 진행하는 기획 공연이다. 2014년 11월 첫 공연을 시작으로 레이블 소속 뮤지션들의 연합 공연을 열어오고 있다. 지난 15년 간 70여 장의 음반을 발매한 이 레이블에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팀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해외 투어는 물론이고 국내 일부 공연까지 끊긴 상황이지만, 이들은 악조건을 ‘배수의 진’ 삼아 분투하고 있다. 신보를 내고 작은 무대라도 오르는 이들을 보며 공연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소위 ‘한류 붐’이라고 일컫는 현상이 번쩍거리는 K팝 아이돌 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해외로 뻗어가는 한국 음악의 비옥한 토양은 사실 이런 소규모 공연장 작은 무대의 교류로부터 가꿔져온 것이다.
 
이날 무대에는 영국과 미국, 스페인 등을 넘나들며 활동해왔거나 신보를 낸 록밴드 4팀(빅베트·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빌리카터·세이수미)이 차례로 오르며 릴레이식 공연을 펼쳤다. 3인조 밴드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무대는 플로우 탐과 스네어 드럼에 꽂히는 통타로 시작됐다. 그린데이를 연상시키는 펑크 록 질주에 옥상달빛 같은 청량한 목소리의 아찔한 이율배반. 밴드는 2018년 영국 레이블 댐나블리와 계약한 이래 투어(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 리버풀사운드시티 등)를 돌며 해외로 줄곧 뻗어왔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코로나로 유럽 투어가 중단되면서 이후 앨범 작업에 돌입했다. 2집 ‘Marriage License’(7월 발표) 수록곡들 일부를 들려준 이날 무대에서는 디지털 성범죄 사건(곡 'Hit the Corner')을 비판하며 연대의 목소리를 독려했다.
 
11일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 '일렉트릭 사이드' 무대에 선 밴드 세이수미.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뒤이어 무대에 오른 부산 출신 4인조 밴드 ‘세이수미’ 역시 "대면 공연이 연례행사가 돼 버렸다"고 했다. 2017년 댐나블리와 계약을 맺은 이들 역시 세계로 뻗어왔다. 피치포크, 빌보드, 스테레오검, BBC 6 같은 세계적인 음악 매체가 이들을 앞다퉈 다뤘다. 지난해 시애틀로 날아가 찍은 이들의 ‘KEXP’ 무대는 한국 록의 약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지미 헨드릭스 고향이자 너바나 열풍의 진앙지인 시애틀 중심에서, 이들은 세계 시장을 겨냥한 시동을 걸었으나, 코로나 여파에 다시 국내로 발걸음을 향해야 했다. 지글대는 기타톤으로 거친 부산 앞바다를 그리듯(곡 'Old Town') 시작된 공연은 최근 믹스 작업 중인 신곡들의 라이브로 이어졌다.투박하고 거친 드럼 리듬에 기타, 베이스 이펙터가 한껏 찌그러뜨린 소리 덩어리들을 겹쳐낼 때, 보컬·기타의 최수미가 "잠깐만요!"라며 잠시 몸을 수그려 사운드 볼륨을 조정할 때, 마스크를 쓰고 앉아 고개를 까딱 거리다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차별금지법 제정의 온라인 관심을 촉구한 밴드 빅베트, '차별을 혐오한다'는 영어 가사를 할퀴듯한 록 사운드로 비벼낸 빌리카터의 무대도 인상적. 박수만이 유일한 관객 반응인 팬데믹 시대에도 공연과 시대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대중음악 공연은 비단 유흥 만이 아닌, 감정의 돌파구이자 살아나갈 힘입니다. 저희 같은 음악가뿐 아니라 공간 운영자, 관객분들, 스탭들이 모여 한국 음악 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마지막 멘트를 마친 빌리카터가 멜로디언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세계 약진을 위한 이들의 숨고르기는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11일 서울 마포구 벨로주홍대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밴드 빌리카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 기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2021 인디음악 생태계 활성화 사업: 서울라이브' 공연 평가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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