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을 채우다)①청년들이 채워가는 '빈집', 희망을 피우다
서울 구석구석 빈집…청년 아지트로 탈바꿈
시민출자 바탕, 청년단체 저렴하게 거주
"'쓰레기 골목', 청년들 다니니 살만" 주민들도 반겨
입력 : 2022-01-27 06:00:00 수정 : 2022-01-27 06:00:00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서울에도 빈집이 있다. 재개발이 엎어지거나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운 지역, 아니면 상속 과정 등에서 관리를 못하다가 방치된 집들이다. 빈집은 개인 재산인 사유지 장기간 방치되면서 우범지대가 되거나 쓰레기를 버리고 벌레가 들끓고 악취·오수의 온상이 되면서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뉴스토마토>가 빈집의 활용방안을 알아봤다.<편집자 주>
 
“빈집, 저희가 채우면 되죠. 주변에 다른 빈집을 보면 이런 공간을 활용해 청년들이 들어오면 재밌겠다고 상상해요.”
 
연극하는 청년들이 모인 창작집단 ‘작당’에서 활동하는 문병설(30)씨와 임웅빈(26)씨는 작년 3월 서울시와 SH공사가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 지은 청년공유주택 ‘터무늬있는 희망아지트’에 살고 있다.
 
희망아지트는 A동과 B동 두 개의 쌍둥이 집이 마주보는 형태다. 일반적인 공공임대주택은 개인이나 가구 단위의 청년이나 신혼부부들이 입주한다. 반면, 희망아지트는 층별로 청년 입주단체를 모집해 같은 단체 구성원들이 같은 층에 각자 다른 방을 사용한다. 
 
작당도 A동 1층을 사용한다. A동 2층과 B동 2·3층에는 각기 다른 청년 문화예술단체와 소셜벤처들이 입주했다. A동 3층과 B동 1층은 주민공동이용시설이나 공유공간 등으로 사용한다. 같은 단체 구성원끼리 셰어하우스 형태로 살면서 유대감도 커지고 공유공간에서 다른 단체와의 교류도 이뤄진다.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가격
 
청년들이 이곳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이다. 월 임대료에 전기·가스 공과금까지 합쳐도 20만원도 채 안 된다. 결정적으로 보증금 부담이 없다. 
 
서울에서 살 만한 방을 전세로 구하려면 1억원을 넘나드는 보증금을 내야 하지만, 희망아지트 보증금은 모두 시민출자금으로 해결했다. 덕분에 청년들은 집에 손을 벌리거나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된다.
 
서울시, SH공사, 터무늬제작소가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 빈집을 매입해 만든 '터무늬있는 희망아지트' 전경. 사진/박용준 기자
 
이는 희망아지트가 터무늬제작소와 SH공사의 협업으로 만들어져 가능했다. 사회투자지원재단 부설 터무늬제작소는 개인·법인에게 출자를 받아 ‘지옥고’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안정적인 주거공간을 제공하는 ‘터무늬있는 집’을 운영하고 있다.
 
입주 청소년에 '청년희망적금' 제공
 
터무늬제작소는 희망아지트 제공 뿐만 아니라 신협과 함께 입주 청년들에게 연 이율 7%에 달하는 적금상품 '청년희망적금'을 제공하고 있다. 청년들은 최장 4년의 거주기간이 끝나도 일정 금액의 종잣돈을 마련해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길 수 있다. 대상자들은 심사를 거쳐 사업 초기에 대부분 확정짓는다. 지역활동계획을 가진 청년단체들이 모여 워크숍을 가지면서 설계와 공사 과정에 의견도 내고, 이웃 주민들과 관계도 형성하며 유대감을 형성한다.
 
서울시는 희망아지트를 2019년부터 작년까지 45호 공급했으며, 올해 14호를 추가 공급할 예정이다. SH공사가 터무늬제작소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현 희망아지트 부지를 일반적인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매입 당시인 2019년까지만 해도 이곳에 수십년간 있었던 빈집은 지붕까지 주저앉을 정도로 노후도가 심각했다. 
 
부지를 매입해도 개발에 제약이 많았다. 부지 특성상 폭 1m를 간신히 넘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 해 차량 진입조차 힘들다. 또 필지에 사각이 많아 충분한 대지 활용이 어려웠다. 저층주거지 언덕길 윗편에 위치해 청년이나 신혼부부들이 선호하는 지역과도 거리가 있다.
 
"편의시설 보다 역세권에 더 만족"
 
그럼에도 청년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임씨는 “저희한텐 스타벅스나 영화관이 중요한 게 아니라서 연습실이 많은 한성대나 혜화와도 가깝고 마을버스도 바로 앞에 서서 좋다”고 말했다. 문씨는 “연극을 하는 저희 입장에선 같은 공간에서 지내면서 밥도 먹고 간단한 작업도 하며 많은 일을 도모하고 있다”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연도 여러 번 준비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매번 무산돼 아쉽다”고 강조했다.
 
동네에 청년들이 자리잡으면서 주민들도 반기고 있다. 주민 김영자(78)씨는 “주변에 빈집때문에 벌레·쓰레기·악취가 심해 고생한다”며 “재개발은 바라지도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다니니 동네가 깨끗해지고 좋다”고 얘기했다.
 
서울 강북구 삼양동에 빈집을 매입해 만든 '터무늬있는 희망아지트' 거주자 문병설(오른쪽 첫 번째)씨와 임웅빈(오른쪽 두 번째)씨가 김수동 터무늬제작소장 등과 집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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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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