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여군, 국가가 외면해선 안돼
입력 : 2022-04-04 00:00:00 수정 : 2022-04-04 00:00:00
지난 31일 대법원이 ‘해군 성 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판에서 두 명의 피의자에게 각각 파기환송심과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다. 해당 사건의 공대위는 즉각 대법원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3년간 사건을 대법원에 계류시키며 피해자에게 고통을 줬는데, 판결 역시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두 명의 피의자 중 무죄 판결을 받은 이는 해당 여군에게 지속적인 성폭력을 가한 소령으로, 여군은 그 때문에 임신중지 수술까지 받았다. 피해자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근무지 함장에게 상담을 요청했는데, 이때 또다시 성폭력을 당했다.
 
해당 여군이 군에서 믿을 사람은 없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피해를 불렀다. 사람이 가장 무력해질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낄 때라고 한다. 여군 역시 “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며 피해를 즉각 알리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절망을 가까이서 지켜본 공대위 대리인단 박인숙 변호사도 기자회견 당시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기자회견 내내 덜덜 떨리던 그의 손은, 회견 이후 기자가 질문하러 다가갔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연신 땀이 흘러내리는 이마를 훔치며 그는 “너무 당혹스러워서 말이 잘 안 나온다”고 했다.
 
군 인권센터의 김숙경 소장은 이날 기자에게 “이 사건 말고도 언론에 밝힐 수 없는 여군 성폭력 사건이 수두룩하다”고 귀띔해줬다. 이틀 전 김 소장은 ‘해군 군무원의 성폭력 2차 가해’를 폭로하며 “해당 사건을 드러내기까지 수개월의 고민이 있었다”고 했다. 군 성폭력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사건을 알리는 걸 주저한다고도 했다. 신고 후 사건이 해결되는 경우보다 피해자들이 군에서 배척당하고 2차 가해에 시달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군대 내 성폭력 사건이 수면위로 올라올 때마다 군은 개선 의지를 밝혔지만 여전히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지금껏 알려진 사건들은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많은 여군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삶을 마감했다. 이는 군도, 법도 피해자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절망 때문일 거다. 이번 대법원판결 이후 해당 피해 여군은 “오늘 또 한 번 죽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은 피해를 입더라도 생존자로 살아남기를 바란다”고 했다. 공대위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판결은 피해자를 외면한 처사"라며 "이제 누가 대법원을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이같은 판결이 반복된다면 군대 내 성폭력 피해 근절은 요원할 것이다.
 
조승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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