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 누구라도 최고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제자백가로 나를 배우다⑨)보통 사람을 위한 공부: 한비자의 '세'
입력 : 2022-04-26 06:00:00 수정 : 2022-04-26 10:13:24
말을 더듬는 개혁가

한비자는 한(韓)나라의 서얼 공자, 첩에게서 태어난 왕족이었다. 그는 말을 더듬었다. 입으로 자기 사상을 피력하던 백가쟁명의 시대에 말을 더듬는다는 것이 어떠했을까 짐작해보자. 첩에게서 태어났다는 한비자의 울분을 더욱 깊게 만들었을 것이다. 말더듬이 한비자는 말로 하는 유세를 포기하고 글을 쓰기로 한다.
 
한비자의 조국인 한나라는 전국시대 제후국 가운데 북방의 강대국 중 하나이던 진(晉)나라가 한(韓),위(魏), 조(趙) 세 나라로 분열될 때 쪼개져 나온 나라다. 서쪽으로는 진(秦)나라와 동쪽으로는 제(齊)나라 등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어 침략도 자주 당하고 쇠락해가고 있었다. 
 
한비자는 여러 차례 개혁안을 글로 써서 한나라 왕에게 올렸으나, 한나라 왕은 이를 실천하지 못했다. 한비자는 군주가 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을 통제하지 않고, 법을 바로 세우지도 않으며, 부국강병을 실현할 인물들에게 책임을 맡기지 않는 것을 개탄했다. 
 
한비자는 자신이 보고 좌절한 한나라 군주의 모습과 국가의 쇠락이 비단 한나라의 것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수없이 반복된 것임을 깨달았다. 이에 과거의 역사로부터의 성공과 실패를 살펴 <고분(孤憤)>, <오두(五?)>, <내외저(內外儲)>, <설림(說林)>, <세난(說難)> 등의 글을 남겼다. 
 
한비자는 이 글들을 통해 ‘변법(變法 : 제도 개혁)’을 통한 부국강병을 주장하는 자신의 개혁 사상을 피력했다. 한비자는 자신처럼 법의 개혁을 주창하는 이들을 ‘법술지사(法術之士)’라고 부르며 능력을 중심으로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 개혁론을 피력했다. 
 
한비자는 제도개혁, 변법을 통한 부국강병을 실천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법술지사들을 등용해야 하는데, 각 나라의 제왕들이 전통적으로 왕족, 귀족, 권신(權臣 : 권력이 막중한 신하)들을 세습적으로 높은 지위에 중용하는 데 그친다고 비판했다. 한비자는 자신의 비관적인 전망을 울분에 차서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변법을 주창하는 도가 있는 이들이 아직 도륙을 당하지 않은 것은, 다만 제왕을 위한 옥돌(璞 : 변법을 통해 개혁하려는 이들을 상징함)이 아직 제왕에 바쳐지지 않았을 따름이다. (《韓非子》<和氏>)
 
한비자의 글을 읽어보고 그의 개혁안에 무릎을 치며 동의한 인물은 누구였을까? 바로 진왕 정(政)이라는 인물뿐이었다. 이 인물은 훗날 분열된 전국을 통일하고 진시황(秦始皇)이라고 호칭을 고친다. 진왕은 한비자의 글을 읽어 본 후, “이 글을 쓴 사람과 만나서 얘기를 나눠 볼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궁정에는 이사(李斯)란 자가 승상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사는 한비자와 함께 순자의 제자로 있으며 동문수학한 인물이었다. 
 
이사는 약소국인 한나라를 공격하여 평화협상을 원하면 한비자를 협상 대표로 보내라는 계략을 내놓는다. 그 계략대로 진왕 정은 한나라를 공격해 평화협상 대표로 한비자를 만난다. 한비자는 앞에서 말했듯이 말을 더듬었다. 진왕 정은 글에서 보던 명쾌한 변법 개혁 논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한비자의 뛰어난 두뇌와 명석한 변법 논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이사는 한비자가 진나라에서 등용될 경우 자신의 입지가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속임수를 써서 한비자로 하여금 감옥에서 음독 자살하도록 계략을 꾸민다.
 
결국 한비자는 진나라의 차가운 감옥 안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가 남긴 변법 개혁 사상은 이사가 그대로 표절하여 진왕 정에게 상납함으로써 진왕이 여섯 나라를 멸망시키고 전국을 통일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한비자가 묘사하는 인간의 모습을 잘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인간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담겨 있다. 지위 고하, 직업, 남녀에 따라 원하는 것들이 있고, 그 ‘욕망’을 제대로 이해하면 자신을 다스리는 것은 물론 남도, 집단도, 나라도 능히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 한비자 사상의 핵심이다. 한비자는 이를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이야기하는 데 그 중 두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위(衛)나라 사람 부부가 함께 기도를 했는데, 아내가 기도하여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무런 사고가 없게 해주시고 베 100필을 벌게 해주십시오”라고 했다. 남편이 이를 듣고 말했다. “왜 그렇게 적게 비는가?” 아내가 말했다. “더 많이 벌면 당신은 그것으로 첩을 사들일 것입니다.”(《韓非子》<內儲說下>)

   장어는 뱀과 비슷하고 누에는 송충이를 닮았다. 사람들은 뱀을 보면 깜짝 놀라고 누에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그러나 어부는 장어를 손으로 잡고 아낙네들은 누에를 손으로 주워 담는다. 이익이 있으면 사람들은 모두 맹분[孟賁 : 위(衛)나라의 장사]이나 전저[專諸 : 오(吳)나라의 장사]와 같은 장사가 된다. 
 
한비자는 철저한 합리주의자였던 순자의 제자답게 인간이 욕망을 가진 존재임을 긍정했다. 모든 인간이 자기 욕망 충족을 위해 운동하는 존재임을 대전제로 삼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설교, 강압, 의무감을 부여해서는 움직이게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권력자도 백성을 움직이고 싶다면 백성들의 욕망을 긍정하고 그들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재화를 미끼로 내놓아야 한다고 한비자는 생각했다. 그 미끼가 바로 ‘신상필벌(信賞必罰)’이다. 《한비자》라는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신상필벌일 것이다. 
 
“상을 주기로 했으면 아무리 천민이더라도 상을 반드시 주어야 하고, 벌을 내리기로 한 행위를 저지른 인사는 신분이 아무리 높아도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한비자가 말하는 ‘신상필벌’이다. 한비자의 이러한 주장은 당시 세습 귀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배층에게 평등한 법률 적용을 요구하는 것으로 과격한 개혁안으로 비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한비자는 자신이 인간의 욕망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 <외저설좌상(外儲說左上)> 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로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면 결국 서로 기대에 어긋나 서로 책망하게 되지만, 자신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면 일이 되레 잘 진행된다.(《韓非子》 <外儲說左上>)

성숙한 인간일수록 자기 욕망에 솔직하다. 타인을 위해 이 일을 한다는 핑계를 대지 않는다. 자기 욕망에 솔직해야 동시에 상대가 나에게 하는 요구가 부당하면 그것에 맞설 수도 있다. 부모가 상사가 친구가 나에게 하는 요구는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결국 그 근원적인 곳에는 ‘그들 자신을 향한 욕망’이 놓여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타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도 자기 욕망이다. 한비자는 이를 꿰뚫어보고 이렇게 말한다. “이익이 있는 곳으로 백성들이 모여들고, 명성이 빛나는 곳에 선비들이 목숨을 바친다.”(《韓非子》<外儲說左上>)
 
이익을 탐하는 백성과 명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선비 중에 누가 더 성인군자인가? 한비자는 이런 식의 논리에서 벗어나 있다. 두 행위는 모두 자신을 위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같다. 백성이라는 존재와 선비라는 존재의 욕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각자가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지를 파악한다면, 각기 다른 사람들을 두루 통치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비자가 말하는 리더가 되는 법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애정을 받는 것이다. 상대가 스스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게 이유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한비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뛰어난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릴 때는, 다른 사람이 나를 애정으로 대하지 아니할 수 없는 방법을 사용하지, 다른 사람이 애정을 베풀어 나를 위해 일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애정으로써 나를 위해 일하기를 기대하는 자는 위태로우며, 내가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에 기대는 자는 안전하다.(《韓非子》<姦劫弑臣>)

권세가 가져오는 이로움

한비자가 군주를 위한 사상가인 것은 그가 ‘개혁’을 꿈꾸는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면 세상의 권력을 쥔 자를 바꾸는 일에 눈뜨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권력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한비자는 권력이라는 것의 속성을 제나라 경공(景公)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낸다.
 
경공이 궁을 나와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데 파발꾼이 달려와 이렇게 고했다. “안영 선생님(제경공의 스승)이 위급하셔서 곧 돌아가실지 모르겠습니다. 공께서 임종을 못 하실까 두렵습니다.” 경공은 화급하게 벌떡 일어나 이렇게 지시했다. “빨리 수레에 번저(煩且 : 빠르게 달리는 명마)를 매고 마부 한추(韓樞 : 당대 최고의 마부)로 하여금 몰도록 하라.”
 
경공은 번저가 끌고 한추가 모는 수레를 타고 수백 걸음을 달려가다 마부가 말을 빨리 몰지 않는다고 여겨지자 고삐를 빼앗아 자신이 대신 몰았다. 다시 수백 걸음을 달려가다가 이번에는 말이 잘 못 달린다고 여겨지자 이번에는 마차를 버리고 맨발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어이없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경공의 마음이 급해서였기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경공의 마음에는 군주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에 대해 엄청난 과신이 숨어 있는 것이다.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명마도 명마부도 자신의 두 다리보다 못하다 여기는 것이다. 
 
한비자가 이같은 이야기를 한 이유는 권력자의 어리석음을 비웃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것이 그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다. 
 
한비자는 권세를 가진 이의 역할의 중요성을 불 끄는 일과 비유하며 이렇게 말한다. 불을 끄려 할 때 항아리를 잡고 물을 담아 불난 곳으로 뛰어가는 것은 한 사람의 몫을 하는 것일 뿐이지만, 채찍과 매를 잡고 사람들을 재촉하여 불을 끄도록 지휘하면 만 명의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권세가 있고, 그 권세를 제대로 사용할 때 세상에 이로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때문에 뛰어난 리더는 자신이 리더임을 자각하고, 리더로서 부릴 수 있는 힘의 크기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여느 사람과 같은 위치에 자신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비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뛰어난 지도자는 백성과 일일이 사귀지 않으며, 밝은 군주는 몸소 작은 일을 하지 않는다.(《韓非子》<外儲說右下>)

보통 군주를 위한 공부

한비자가 말하는 군주는 유가에서 말하는 성현군자와 다르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한비자는 인간의 욕망을 중요하게 여겼다. 다수에게 주는 이익의 합을 크게 키우는 것이 좋은 통치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한비자는 덕(德)보다 법(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다스리는 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쓰고, 적은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는 수단은 버린다. 그러므로 덕(德)을 버리고 법(法)에 힘을 쏟는다.(《韓非子》<顯學>)

우리는 어떻게 해야 더 좋은 리더가 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한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 기준이 분명하다.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이를 위해서는 적은 수의 이들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한비자가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이란 더 많은 이들을 같은 방법으로 다스릴 수 있게 하고, 더 많은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게 하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법을 제대로 작동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한비자는 증자(曾子)의 아내 이야기를 통해 법의 본질이란 ‘어떤 경우에도 이루어지는 것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비자는 다수에게 주는 이익의 합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공동체를 위하는 방법으로서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신축청사에 새겨진 '자유, 평등, 정의' 문안. (사진=뉴시스)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 가려는데 그 아들이 따라오면서 울었다. 아내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집으로 돌아가 있어라. 내가 시장 갔다 와서 너를 위해 돼지를 잡아주마.” 증자의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오자 증자가 돼지를 붙들어 죽이려 하고 있었다. 놀란 아내가 말리면서 말했니다. “애를 달래려고 장난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어요.”
 
증자가 말했다. “어린아이에게 장난으로 거짓말을 하면 안 되오. 어린아이는 아는 게 없기 때문에 어버이가 하는 걸 보고 배우며 어버이의 가르침을 들어야 하는 것이오. 그런데 지금 자식을 속이는 것은 자식에게 속임수를 가르치는 것이오. 어미가 자식을 속이면 자식은 그 어미를 믿지 않게 되니 가르침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오.” 그러고는 돼지를 잡아 삶았다고 한다.(《韓非子》<外儲說左上>)
 
한비자는 별 게 아닌 말부터 지켜져야 엄격한 규율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말한다. 법의 중요성은 그 내용이 대단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이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법전을 만든다 해도 사람들이 지키지 않으면 하찮은 약속보다 못한 게 되며, 반드시 지켜지는 법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도 거대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방대한 수집에서 오는 현실적 지혜

한비자는 삶을 성숙시키는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따로 남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스스로가 저술을 하고 공부한 방식 자체가 매우 탁월하다. 한비자는 이야기 수집광이었다. 그는 다시 민간에서 전해지던 수천 편의 이야기를 방대하게 수집한 뒤 이를 어떤 주장에 인용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를 분류했다. 
 
그의 저작 《한비자》에서 <내저설(內儲說)>, <외저설(外儲說)>, <난(難, : ‘논박’이라는 뜻)>  등 모두 그가 수집한 수천 편에 이르는 이야기를 주제별로 분류한 것이다. 한비자는 이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각자의 ‘이치[理]’를 찾아내기 위해 사유했다. 

주희의 주자학에서 금과옥로처럼 들먹이는 ‘성(性, 본성)’과 ‘리(理, 이치)’ 가운데 ‘리’라는 개념을 가장 최초로 철학 개념으로서 사용한 사람이 바로 한비자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한비자는 후대의 유가들에게 일침이 될만한 말을 남겼다.    

   무엇을 안다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그 아는 것으로 세상에 대처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非知之難也, 處知則難也。<說難>, 12-6)

말더듬이로 세상에 출세하기에 어려운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비자는 사유의 세계로 도피하지 않고, ‘법’과 ‘개혁’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상수 철학연구자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 대학원에서 주역 연구로 석사를, 제자백가의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웅진씽크빅 중국법인장, 서울시교육청 대변인을 지냈다. 공자·노자·장자·손자·순자·한비자 등 제자백가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강의와 글쓰기를 하고 있으며, 고전의 현재적인 번역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효·김만중·정약용 등 한국철학 연구에 빠져있다. 저서로 <아큐를 위한 변명> <한비자, 권력의 기술> <바보새 이야기> <오랑캐로 사는 즐거움> 등이 있다.
 
(표=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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