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초대석)“중대재해법 걸음마 단계…보완 개정 불가피”
석재왕 교수 "산재 재발 원인은 솜방망이 처벌"
“중대재해법 모호한 부분 많아…예측 가능하도록”
“강력 처벌보다 억제 효과 더 중요…안전문화 확산”
입력 : 2022-05-24 06:00:00 수정 : 2022-05-24 06:00:00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은 의미도 있고 유용하지만, 너무 내용이 두루뭉술해요. 사법기관이나 정부에서도 적용을 어떻게 할지 애매하니, 지금까지 중대재해법으로 처벌받는 기업이 별로 없죠.”
 
서울시 서울안전자문회의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석재왕 건국대 안보·재난관리학과 교수는 올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법 4개월을 맞아 <뉴스토마토>를 만나 중대재해법의 보완 개정 필요성을 주장했다.
 
중대재해법은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선 시행 4개월이 무색할 만큼 ‘뜨거운 감자’다. 산업재해나 시민재해 같은 중대재해가 발생해 사업주·경영책임자·지자체장·공공기관장 등에게 최대 실형까지도 직접 책임을 물 수 있기 때문이다.
 
석 교수는 “기존에도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었지만, 처벌 수위가 낮았다”며 “2018년 김용균 씨가 사망한 현장에서 2년 후 또 사람이 죽었는데, 처벌 수위가 강했으면 기업주가 안전 주의 의무를 더 기울였을 거다. 그러다보니 중대재해법이라는 강력한 법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 교수가 지목한 후진국형 산업재해의 재발 원인은 사법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이다. 근로자가 사망하는 산재가 발생해도 징역이나 금고 등의 처분을 받는 경우는 1년에 3~5건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실형기간이 1년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 평균 500만원의 벌금에 그친다.
 
처벌 수위가 낮다보니 사업주들에게 안전보건조치를 등한시해서 얻는 이익이 위법 행위로 얻는 불이익보다 훨씬 크게 나타났다. 대검찰청 범죄분석자료에 의하면 2017년 기준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입건된 사업주들의 93%는 동종 전과를 보유하고 있었다.
 
"너무 졸속으로 만들어져 문제 많아"
 
석 교수는 “그래서 중대재해법이 만들어졌는데 너무 졸속으로 만들어져 문제가 많아 당시에도 저를 비롯한 학계에서 의견을 많이 냈다”며 “너무 규정이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다보니 경영자들이 재난을 예방하려하기보다 법을 회피하기 위한 대응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 7조와 11조, 15조에 따르면 중대재해 발생 시 책임을 피하려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아니한 경우’에 해당해야 한다. 여기서 ‘상당한’에 대한 구체적인 범위 설명은 빠져 있다.
 
또 4조와 9조에서 사업주·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로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예산·점검 조치’를 규정했지만, 이 역시 ‘필요한’이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지, 최소한 어느 정도 이상을 해야하는 건지에 대한 얘기는 없다.
 
석 교수는 “필요한 예산이나 상당한 직무의 범위에 따라서 처벌 받고 안 받고 하는데 법이 모호하니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책임의 범위가 명료하지 않다”며 “직업성 질병자도 범위를 어떻게 할지, 고의·중과실이 없는 경우에 대한 면책규정, 근로자의 준수 의무 구체화, 관계법령의 범위 등 부족한 입법은 시행 4개월이라도 조속한 시일 내에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석재왕 건국대 안보재난관리학과 교수가 지난 4월26일 서울시 더안전회의에 참석한 모습. (사진=서울시)
 
버스 안전벨트 착용 '의무 고지'도 작은 변화
 
그렇다면 중대재해법 4개월의 성과는 무엇일까. 석 교수는 처벌도 중요하지만 억제 효과가 더 중요하다고 꼽았다. 중대재해법의 강력한 처벌이 강조되면서 각 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중대재해 전담 조직을 만들고 인력을 보강하며 관련 예산을 확보한다.
 
또 중대재해 예방계획을 수립하고 책임자와 담당자들에게 중대재해 예방교육을 실시하며, 현장 점검을 강화하고 매뉴얼을 정비한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나 기업주 사이에 안전에 대한 인식이 안전문화로까지 확산되는 단계라는 설명이다.
 
석 교수는 “김용균 씨 사례같이 이제 몇 년 후에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는 거를 억제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사고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기업 운영이나 우리 생활에서 안전이 핵심적인 가치로 자리잡아가면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위험사회에서 안전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광역버스를 자주 타는데 이전에는 기사가 안전벨트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도 않고, 승객 중 90% 가량은 얘기해줘도 하지 않았는데 사고가 나면 몸이 튕겨져 나갈 수 있다”며 “요즘은 기사들이 주의 의무대로 멘트를 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아졌으며, 그러다보니 승객들도 하나 둘 벨트를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일각에서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우려하는 부분이 중대재해의 양극화다. 서울시나 경기도 같은 대형 지자체, 대기업들은 상대적으로 미디어 노출 빈도도 높고 예산이나 조직이 갖춰져 중대재해를 막기 위한 의무를 다하기에 유리한 환경이다.
 
반면에 여건이 열악한 중소기업이나 지자체들은 상대적으로 기존의 관습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서도 절반이 넘는 중소기업들이 중대재해법에 잘 모른다고 응답했으며, 1/3이 넘는 곳이 인력·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준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석 교수는 “아직 중대재해법 대상이 아닌 5인 미만의 기업을 포함해 안전에 대한 양극화가 굉장히 심하다”며 “사고는 가리지 않고 찾아오기 때문에 대기업이나 서울시 같이 잘 대응하는 곳을 모범삼아 전파하고, 정부나 지자체에서 열악한 곳에 대한 안전 컨설팅을 실시하며 지역별로 예산·일자리를 지원해 위험 요소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석재왕 건국대 안보재난관리학과 교수가 지난 20일 서울 동작구의 한 커피숍에서 중대재해법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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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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