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정안 거부하는 옥시, 정부 책임 없나
입력 : 2022-06-07 06:00:00 수정 : 2022-06-07 06:00:00
오랫동안 해온 일은 노련해지기 마련이다. 시위 역시 마찬가지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인 그들이 시위에 나선 건 수년간 사람들 앞에서 반복해온 일이다. 그만큼 그들은 능숙해 보였다. 하지만 마이크를 잡은 그들은 숨을 헐떡거렸다. 목소리는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여러 번 비슷한 말을 했을 텐데도 사람들을 향한 소리는 매끄럽지 못했다.
 
기자가 찾은 현장은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한 업체가 생산하는 물건을 불매할 것을 요구하는 시위였다. 시위에 나선 이들이 나열한 제품은 대체로 생활·주방용품이었다. 대형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 동네 구멍가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들도 그곳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구입했을 터였다. 대다수 생활·주방용품의 광고 문구처럼 가족을 위해서 말이다. 실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몸이 계속 안 좋아지는 것 같아 더 열심히 살균제를 사용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올해 4월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한 공식 사망자 수는 1800명 가까이 된다. 지난달 31일까지 접수된 피해자만 8000명에 육박한다. 산소통을 매달고 집과 병원으로 오가며 치료받는 이들, 병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 수술 후 고생하는 이들 등 피해자는 다양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앞으로도 피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간 피해자들에게서 발견되지 못했던 병이 드러나거나, 합병증이 찾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알려진지 11년지 지났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가장 책임이 무거운 옥시는 피해 구제 조정안을 거부하고 있다. 조정안에 따르면 옥시는 5000억원 정도를 내야 한다. 전체 조정 금액인 9240억원의 반 이상이다. 옥시는 이 비율이 불합리하고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옥시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원료 공급 업체 등 잘못한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유독 자신에게만 과도한 잣대를 들이댄다며 억울해하는 모양새다.
 
옥시의 이 같은 주장에 피해자들은 분통을 터트린다. 조정안은 현재 피해만 산출했을 뿐, 미래 발생할 치료 금액은 제외 돼 있다. 병치례와 끝나지 않은 싸움을 해야 하는 그들에게는 턱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옥시는 가장 많은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기업이다. 그만큼 사회에 끼친 해악도 크다는 얘기다.
 
옥시가 끝까지 버틴다면 피해자들은 개별 민사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지금껏 지난한 세월을 견뎌온 그들에게 또다른 싸움은 험난한 일이다. 이때문에 피해자들은 애당초 검찰의 부실 수사와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이 이 같은 상황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제대로 죗값을 묻지 않아 피해자들만 우스운 꼴이 됐다는 얘긴데,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정부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조승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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