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대통령 소통의 유통기한
입력 : 2022-06-14 06:00:00 수정 : 2022-06-30 17:39:04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한달이 지났다. '벌써 한달'이라지만 동시에 '아직 한달'이기에 한 윤석열 정부에 대한 평가는 아무래도 이르다. 다만, 바로 전 문재인 정부와 비교해보면, 확실히 윤 대통령 본인이 도드라져 보인다. 집권 초기 문 정부를 단 하루만에 국민에게 각인시킨 장면은 문 대통령이 취임 다음 날, 비서진과 텀블러를 들고 청와대 경내를 거니는 모습이었다. 시원한 와이셔츠 차림으로 언론에 공개된 이 장면에 상당수 국민들은 '파격 소통'이라며 열광했다. 
 
윤 대통령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기회는 매일 아침 출근길이다. 용산 대통령 청사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퍼붓는 민감한 질문에 윤 대통령은 거침 없는 발언을 쏟아낸다. 역대 대통령 중 '도어-스테핑(door-stepping)'을 한 이는 없었다. 용산시대를 연 윤 대통령이 처음 시작한 것이다. 현장에 있는 기자들이 국민을 대신한다는 점에서 보면, 윤 대통령의 이런 소통행보는 퍽 신선하다. 그런만큼 상당수 언론도 우호적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윤 대통령은 기자를 다루는 데 귀재다. 평생 언론의 조명을 받는 특수부 검사로 산 것도 한 이유겠으나, 워낙 박식하고 달변인 데다가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유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보니 더 그렇다. 검찰시절 윤 대통령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본 기자들은 십중팔구 그의 팬이 됐다. 말하자면 지금과 같은 '도어-스테핑'은 윤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익숙한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윤 대통령의 소통행보가 위태로워 보인다. 대통령 당선 전 발언이야 그렇다 치자.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출근길에 문 대통령 사저가 있는 평산마을 보수단체 시위에 대한 입장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대통령 집무실(주변)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다 법에 따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일견 법치주의 원칙을 강변한 것으로 들리지만, 온갖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강경 보수주의자들의 테러 수준 집회를 방관하겠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전임 대통령의 곤경을 바라보는 후임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닌 듯 하다. 아직 이르긴 하지만 윤 대통령 자신이 퇴임 후 똑같은 일을 겪는다면 그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진보성향 유튜브 단체가 곧 윤 대통령 자택 앞에서 맞불집회를 하겠다고 예고했으니 두고 볼 일이다.
 
검찰 편중인사 비판을 "과거에 민변 출신들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나"라고 맞받은 것을 두고도 뒷말이 많다. 스스로 통렬하게 비판해 온 문 정부의 인사 실책을 답습하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그 비판을 거두고 문 정부 인사 스타일을 계승하겠다는 의미인지 여러번 곱씹어도 알 길이 없다. 그의 말대로 능력을 우선해 등용했다는 검사 출신 공직자들로서도 참 어색하고 민망할 일이다. 
 
출근길 발언은 아니지만 지난 10일 국민의힘 지도부 오찬회동에서 나온 말은 더 딱하다. 용산시민공원 이름을 거론하면서 "영어로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있는데 국립추모공원이라고 하면 멋이 없어서 우라나라 이름으로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단다. 용산시대를 연 첫 대통령으로서 윤석열 정부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용산시민공원에 안성맞춤인 이름을 고민하는 마음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선해하더라도 한국어인 국립추모공원이라는 이름을 낮잡아 봤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여기에 지난 7일 국무회의 '반도체 특강'에서 "교육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고 한 말까지 더해보면 일본을 제치고 한국을 먼저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한 인상이 윤 대통령에게 참으로 강렬하게 남았나보다.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오랫동안 위기로 내몰려 벼랑끝에 선 기초과학과 인문학의 위기가 곧 교육의 위기요 국가장래의 위기라는 경고 쯤은 이제 안중에도 없다는 말인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소통'이라는 말을 찾아보면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이라고 풀이돼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다'는 뜻도 있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국민과의 소통을 가벼이 여긴 이가 없으나 이를 성공한 사람 역시 없었다는 것은 비극이다. 임기를 관통하는 한결같은 살핌과 배려가 없었음이다. 참모의 눈과 귀는 한계가 있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 소통'의 유통기한이라는 것은 채 5년이 안 되는 것일까. 보여주기식 임기응변이 소통의 밑천이라면, 애초에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겠지만.
 
임기 이제 겨우 한달이라지만, 벌써 한달이 지나갔다. 출근시간 '땡' 하면 청사 로비에 몰려드는 기자들에게 기사 거리를 던지는 소통보다 국민과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하고 상처 생길 일 없는 윤 대통령의 소통을 기대한다.
 
최기철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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