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입구역 뺏긴 기업은행, 대통령 한마디 때문?
지하철 역명병기, 하나은행에 8억원 낙찰
윤석열 "공기관 방만경영 개선" 질타
고액 입찰가 부담…지방이전 가능성도 발목
입력 : 2022-07-01 09:00:00 수정 : 2022-07-01 09:00:00
[뉴스토마토 이종용 기자]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부역명을 두고 하나은행과 기업은행(024110)의 희비가 엇갈렸다.
 
기업은행은 지난 7년간 '을지로입구역'과 함께 불리는 '기업은행' 역명을 지켜왔지만, 공격적인 입찰가를 써낸 하나은행에 밀려 이번에 낙찰받지 못했다.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이 도마에 오른 상황에서 기업은행으로서는 공격적인 입찰가를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오는 10월부터 을지로입구역은 '하나은행역'으로 역명이 병행된다. 을지로입구역은 연간 승하차 인원이 2200만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국내 주요 금융사들이 모여있는 '노른자'로 평가받는 곳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을지로입구역 1·2번 출구는 하나은행 본점과 연결되어 있고 5번 출구에 인접한 하나금융지주(086790) 명동사옥 내에는 관계사들이 입주해 있다"며 "이번 지하철역명 병기를 통해 하나은행이 대표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할 것"고 말했다.
 
실제로 하나은행은 을지로입구역 부역명을 차지하기 위해 만만치 않은 비용을 부담했다. 온라인 공공자산 처분시스템 온비드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을지로입구역을 8억원에 낙찰 받았다. 이전 주인이었던 기업은행은 첫 계약 당시 3억8100만원, 이후 한 차례 연장한 뒤 4억3000만원을 지불했다.
 
지난 2016년부터 을지로 입구 부역명을 사용한 기업은행으로서는 이번 탈락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정부가 공공기관 방만 경영을 문제 삼고 있는 상황에서 공격적인 입찰가를 제시하기는 부담스러웠다는 후문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며 공기업 방만운영에 철퇴를 가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기업은행의 최대주주인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 방지를 골자로 한 경영평가제도 전면 개편에 착수한 상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은행 입장에서는 고액의 입찰가로 을지로 입구 부역명을 낙찰받아봤자 공기관 경영평가와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지방 이전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냐는 질타도 받을 수 있다.
 
기업은행은 지방 이전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았지만, 산은 이전이 현실화 한다면 다른 국책은행들의 이전 추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국책은행들의 지방이전을 허용하는 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산업은행뿐만 아니라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의 지방 이전 근거까지 담겨있다.
 
기업은행으로서는 3년 뒤를 기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역명 병기 계약 기간은 향후 3년으로, 1회에 한해 3년 간 연장될 수 있다. 하나금융지주가 인천 청라에 '하나드림타운'을 조성, 2025년 주요 계열사를 옮길 예정인데, 을지로입구역이 무주공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진=뉴시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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