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반지하대책, 꾸준함이 필요하다
입력 : 2022-08-17 06:00:00 수정 : 2022-08-20 19:22:45
큰비가 내린 탓으로 곳곳이 물난리를 겪었다. 많은 지역의 집과 농지가 피해를 본 것은 물론이고,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서울의 반지하 주택에 살다가 당당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낯 뜨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국민들의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한다. 외형만 화려하되 안으로는 썩어있는 ‘회칠한 무덤’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 모르겠다. 지난 2020년 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큰 상을 받을 때 반지하주택에 대한 관심이 한때 높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반지하주택을 없애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정부와 일부 지자체가 공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모두가 허언이 되고 말았다.
 
영화의 수상 소식에 흥분할 줄만 알았지.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를 올바르게 읽지 못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서울시가 나섰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내놨다. 지하·반지하의 '주거 목적의 용도'를 전면 불허하고, 기존 주택도 향후 20년 내 차례로 없애겠다는 것이다. 기존 반지하주택 거주자를 점차 이주시킨다는 방침이다.
 
사실 40~50년 전 개발연대에 서울에는 판자촌이 많았다. 반지하주택과 판자촌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주거 공간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다만 판자촌은 시각적으로 보기가 좋지 않아 과거 군사정권과 서울시당국에서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 없애려고 애썼다. 그 과정에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도 동원됐다.
 
요즘은 판자촌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대신 반지하가 늘어났다. 서울 시내 주거용 지하·반지하 주택이 20만호를 헤아린다. 전체 가구의 5%를 차지한다. 그렇지만 반지하주택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니 선량한 공직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역대 정권과 서울시당국에서 사실상 외면해 왔다. 그러다가 이번 같은 참사가 빚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서울시가 이번에 나선 것이 만시지탄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큰 사고로 인명피해가 일어나고 보니 무언가를 깨달았나 보다.
 
고대 그리스 철인 플라톤의 저서에서 소크라테스는 “쓰라린 일을 당하고서 깨닫는 것은 바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지금 한국과 서울시가 꼭 그런 모습이다. 그래도 이제나마 깨달았으니 무심한 것보다는 백번 낫다. 앞으로라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앞으로 반지하주택 거주자들이 갈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 쉽지 않다.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예산과 생활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방안이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이번 대책 또한 유야무야로 끝나기 쉽다. 바우처제도를 비롯해 서울시가 제시한 대책들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오세훈 서울시장아 "이번만큼은 임시방편에 그치는 단기적 대안이 아니라 시민 안전을 지키고 주거 안정을 제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으니 일단 기대를 걸어 보고자 한다.
 
그런데 반지하는 사실 서울시만 문제는 아니다. 경기도에도 8만채 이상의 반지하주택이 남아있는 것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32만호에 이른다. 다른 지역의 경우 이번 서울시의 참사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따라서 경기도를 비롯해 다른 시도에서도 남의 일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반지하주택 문제는 외신에서 ‘banjiha’라고 실태를 지적했듯이, 대한민국의 어두운 그늘이다. 이제 정부에서도 문제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필요하다면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기업이라도 활용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새로운 주택정책의 하나로서 250만호 공급계획을 16일 발표했다. 이미 예정돼 있던 발표 일정이 1차례 연기된 것이다. 반지하 대책이 들어가 있으니, 그 순발력이 일단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서울시의 대책과는 다소 다른 것 같다. 현장 실태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양자가 서로 조율할 필요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앞으로 그 누가 국토교통부 장관과 서울시장을 맡더라도 협동 정신을 발휘해 함께 꾸준히 추진하는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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