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사법 기틀' 마련한 윤관 전 대법원장 별세
영장실질심사제 처음 도입…보석제도 활성화
서울중앙지법 시대 열고 특허·행정법원도 신설
입력 : 2022-11-14 12:20:15 수정 : 2022-11-14 14:33:29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우리나라 사법부의 21세기 기틀을 마련한 제12대 윤관 전 대법원장(사진)이 14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윤 전 원장은 1935년 4월1일 전남 해남에서 출생했다. 광주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1958년 10회 고시 사법과에 합격, 군법무관을 거쳐 광주지법 판사로 법조인의 길을 시작했다.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광주고법 부장판사·서울고법 부장판사·서울지법 북부지원장·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청주지법원장·전주지법원장 등을 거쳤다. 1986년 대법원 판사, 1988년 대법관, 1989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에 이어 1993년 제12대 대법원장으로 취임했다. 초대와 2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 이후 36년만에 나온 호남출신 대법원장이었다.
 
6년간의 임기를 마친 뒤 대법원장직에 퇴임한 후에는 법무법인 화백 고문변호사와 영산대 명예총장을 지냈고 2003년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로 위촉돼 2009년까지 활동했다.
 
대법원장 시절 집무실에서의 윤관 전 대법원장. 사진=대법원
 
법조계에서는 윤 전 원장을 '21세기 사법부의 청사진'을 구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한 대법원장으로 평가하고 있다. 대법원장 재직시 △법원의 입법의견 제출권 확보 △법관근무평정제도 도입 △법관윤리강령 제정 등 인사제도 합리화 △제판제도 혁신 등을 내용으로 하는 24개 개혁과제를 제시했다.  
 
취임 첫해부터 사법제도발전위원회(위원장 현승종 전 국무총리)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21세기 사법부 기틀을 마련했다. 영장실질심사제 도입·보석제도 활성화·증인심문 제도 개혁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중앙지법 출범·특허법원과 행정법원 신설 등 현재 사법부의 굵직굵직한 내외적 시스템이 윤 전 원장 임기 중 도입·완성됐다.
 
가장 평가를 받는 제도는 역시 영장실질심사제도다. 그 전까지는 법원은 피의자 심문 없이 검찰이 제출하는 수사기록만 보고 구속여부를 결정했다. 그러나 윤 전 원장이 영장실질심사제를 도입하면서 피의자의 인권과 방어권이 크게 신장됐다. 
 
검찰의 공개 반발이 없지 않았다. 당시 김기수 검찰총장은 이례적으로 윤 전 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 윤 전 원장은 "앞으로는 '검사가 구속했다'가 아니라 '법원이 피의자를 구속했다'는 말이 나와야 한다"라고 강조하면서 결국 제도 도입을 관철했다.   
 
대법관 시절인 1988년 사법연수생 수료식에 참석한 윤관 전 대법원장. 사진=대법원
윤 전 원장은 사법부의 권위주의적 문화 혁파에도 노력했다. 유신시절인 1977년 형사지법 판사로 근무하면서 법정에 나온 피고인의 수갑을 풀 고 재판장 정면에 앉도록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대법원장 시절 어려운 한문 일색으로 국민의 접근이 어려웠던 법률용어를 우리말로 바꾼 '우리말 바로쓰기' 소책자를 발간해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이 1999년 선정한 '우리말 지킴이'에 한승헌 전 감사원장과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판사실에 걸려있던 대통령 사진이 내려지고 법관의 청와대 파견과 정보기관의 법원출입이 막혔던 때도 이때부터다. 
 
중앙선관위원장과 대법관 시절 업적도 적지 않다. 중앙선관위원장 재직 중에는 선거법 위반혐의로 1심에서 50만원 벌금형 이상의 유죄판결을 받은 당선자는 형의 선고가 확정될 때까지 국회의원 직무를 정지할 것을 국회에 제안했다. 당시 선거 사무장에게만 적용되던 연좌죄를 구·시·도 연락사무소장과 후보자 가족까지 확대하는 안을 건의하기도 했다. 1991년 12월 대법관으로 근무하면서는 소부 주심을 맡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소급효를 헌법소원 당해 사건만이 아닌 일반 사건에까지 확장시키는 최초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대법원장 시절에는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기소돼 원심에서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전두환·노태우씨가 상고한 것을 원심 확정판결로 종결함으로써 어긋난 과거사를 바로잡는데 일조했다.
 
윤 원장은 역사적으로 '엄격한 법적용을 통한 법치주의 실현'을 철학으로 하는 중도합리주의자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청렴하면서도 서민적인 리더십으로 법조계 신망이 매우 두터웠다.
 
대법원장으로 취임하던 해 공개된 재산은 차남 재산 2억여원을 포함해 대법관 중 최하위인 5억3000며만원이었다. 전주지법원장에서 대법원 판사가 돼 전주에서 서울로 이사할 때에는 전세를 얻느라 큰 곤욕을 치른 일은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법원 체육대회 때면 자비를 털어 경비를 지원해줬다고 한다.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오현씨와 아들 윤준(광주고법원장), 윤영신(조선일보 논설위원), 남동생 윤전(변호사)씨 등이 있다. 장례는 법원장으로 치러진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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