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28)이방인은 없다. 내가 미처 만나지 못한 친구들이 있을 뿐이다
입력 : 2022-12-07 16:11:33 수정 : 2022-12-07 16:11:33
“나 일어나 가리라, 지금, 항상 밤낮으로”
 
캄보디아 국경을 넘으니 카지노 호텔들이 즐비하다. 베트남에서는 허용이 안 되는 도박을 국경선을 넘어 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1번 국도는 비교적 최근에 포장한 듯 넓고 산뜻했지만 주변에는 공사현장이 많아서 먼지가 많이 날렸다. 국경을 넘으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핸드폰 유심카드 갈아 끼우는 일과 환전하는 일이다. 유심카드를 사려고 잠시 가게 앞에 나의 한혈마를 세워두고 들어갔는데 돌아보니 웬 비닐 봉투가 걸려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아차 싶어서 급히 나가보았다. 캄보디아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많은 것이 없어진다는 충고를 수도 없이 들었던 터이다. 비닐 봉투 안에는 소주 한 병과 포카리스 한 캔, 그리고 치즈케익 한 조각이 담겨 있었다. 기가 막힌 조합이었다. 목마르고 배고프고 적적하던 나에겐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혐의점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누구지? 누굴까? 내가 전생에 조국을 지켰었나? 누가 나를 위해 산타가 되어주었을까?
 
야자수나무 잎 사이로 눈부신 해가 떠오른다. 물이 흘러간다. 메콩 강이다. 물은 흘러가고 나는 달려간다. 물은 멈추면 썩고 나는 멈추면 피폐해진다. 물은 꾸불꾸불 흐르고 나는 뒤뚱뒤뚱 달린다. 이제는 동에서 서로 달려서 유럽의 로마 바티칸까지 달려간다. 등에서 비친 해가 앞으로 길게 내 그림자를 만든다. 국경 마을에서 하루 자고 프놈펜을 향해 달리노라니 캄보디아 한인회장 정명규 씨를 비롯하여 한인회 임원 몇 분과 원불교 프놈펜 교당 정승원 교무와 바탐방 교당 김경선 교무가 국경선 근처까지 마중을 나왔다.
 
아마도 원로교무이신 박청수 교무님의 무언의 압력도 조금 작용하지 않았나 짐작한다. 그는 한국의 마더 테레사로 불리고 있다. 그는 전 세계 53개국을 찾아 소외계층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직접 살펴보고, 무지·빈곤·질병 퇴치에 힘쓴 것은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큰 사명감을 가진 사람의 무아봉공(無我奉公) 한평생이다.
 
특히 그는 34년 동안 캄보디아 돕기를 계속하고 있다. 바탐방에 2013면 무료국제병원을 세웠고, 전 국민 수보다 더 많은 지뢰를 제거하기 위한 활동을 했으며, 내전으로 고아가 많아 고아원을 세웠고, 승려 장학금을 지급했으며, 단기교사 양성 기금을 지원했다. 원광탁아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강명구 평화마라톤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지뢰는 잠들지 않는 영원한 적군”이라는 말이 있다. 캄보디아는 아직도 정글의 깊은 곳이나 논과 밭으로 경작할 수 있는 그러나 다니지 않는 곳에는 예전 크메르 루주가 도망가면서 쫒아오지 못하도록 묻었던 지뢰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는 세계 최대 지뢰 매설국의 하나이며 희생자만도 4만 5천 명에 이른다고 한다.
 
캄보디아 역사는 무수한 전쟁과 침탈의 반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킬링필드라는 영화제목 들어보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도 미국이 등장한다. 당시 캄보디아의 초대 수상은 노르돔 시아누크였다. 그는 비동맹 중립외교를 펼쳤으나 미국은 그를 못 미더워 했다. 캄보디아가 호찌민 루트로 활용되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던 미국은 론 놀 장군을 사주해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축출한다. 미국은 그 악마 폴 포트에게 정권을 쥐어준다. 정말 미국은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구나!
 
폴 포트는 정권을 잡자 나라를 개조한다는 명목으로 지식인과 성직자를 포함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다. 그 숫자를 정확히 파악한 자료는 지금껏 하나도 없다. 단지 15만 명에서 최대 170만 명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예이츠의 그 시에서 변화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에 경도될 때 움직이는 심장마저 돌이 된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그 영화 속에 녹아있는 암울과 고통이 3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 마음속에 트라우마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트라우마는 마음속의 지뢰이다. 언제든지 밟으면 터져버린다. 캄보디아는 1999년에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내전이 끝났다.
 
여기 용감한 동물상을 받은 ‘마가와’라는 이름이 붙은 아프리카 도깨비쥐가 있다. 2013년 탄자니아에서 태어난 마가와는 벨기에의 비정부기구 대인지뢰탐지개발기구에서 특수훈련을 받았다. 사람이 테니스 코트만한 넓이의 땅에서 지뢰를 탐지하려면 금속탐지기로 나흘 정도가 걸리지만, 마가와 같은 설치류는 30분이면 탐지를 마칠 수 있다고 한다.
 
냄새로 땅속에 묻힌 지뢰를 찾는 훈련을 받은 마가와는 지난 2016년 캄보디아에 배치되어 100개 이상의 지뢰를 발견했다. 마가와는 영국의 동물보호단체 PDSA로부터 용감한 동물에 수여하는 금메달을 받았다.
 
경제적으로는 세계 최빈국에 속하지만 가옥이나 사람들 삶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산이 보이지 않고 끝도 없이 펼쳐지는 비옥한 충적평야는 사람과 소와 염소를 먹이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소들은 풀어놓으면 아침에 자기들끼리 들판으로 출근해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이면 배를 채우고 알아서 집을 찾아온다. 앞마당과 들판에는 온갖 과일나무들의 비료를 주지 않아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고 개울이다 저수지에는 온갖 물고기들이 잘 자라고 있다. 
 
과연 무엇이 경제력이란 말인가? 이렇게 들판이 풍요로운 데, 그래서 곡식과 과일이 풍부하고 소와 돼지와 닭이 잘 자라고 있어서 먹을 것 걱정 할 이유가 없는데 국가에 미국 돈 달라가 없어서 가난하단 말인가? 친구들은 스마트폰이 있는데 자기는 없는 것에 열등감을 느껴 자살한 아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김경선 교무의 촉촉한 눈망울이 마음에 걸린다. 자본주의가 말들어낸 가짜 가난 속에서 진짜 풍요로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
 
‘하늘나라의 옷감’
내게 금빛 은빛으로 수놓아진
하늘의 옷감이 있다면
밤의 어두움과 낮의 밝음과 어스름한 빛으로 된
푸르고 희미하고 어두운 색의 옷감이 있다면
그 옷감을 그대 발밑에 깔아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은 꿈밖에 없으니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아드리오니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그대가 밟는 것은 내 꿈이기에.
 
-윌리엄 버틀러 예이즈
 
“여기 이방인은 없다. 오로지 당신이 아직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있을 뿐이다.” 예이츠가 남긴 명언이다.
 
나는 오늘도 내가 아직 만나지 못했던 세상 곳곳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뒤뚱뒤뚱 뒤뚱뒤뚱!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65일째인 지난 4일 캄보디아의 한 거리에서 현지 교민들과 뛰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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