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29)마하 고사난다
입력 : 2022-12-19 11:39:42 수정 : 2022-12-19 11:39:42
절름발이 걸음으로 달려온 길, 달린다는 말이 낯 부끄럽게 느리지만 그래도 나는 달린다. 느릿느릿 달리니 더 많이 보인다. 세상이 더 넓어 보인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길거리의 소년들의 웃음이 더 많이 보인다. 더 많은 손짓이 보인다. 근원을 알 수는 없지만 해맑은 표정의 미소 속에 그 행복이 담겨있다.
 
“이 나라 너무 마음에 드네요! 아무래도 다음에 무슨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다시 오고 싶네요! 풍요로운 들판, 그 위에 평화롭게 풀을 뜯는 소. 가만히 보면 소들은 쉼 없이 풀을 뜯네요. 서두르지 않아요!”
 
평화를 만드는 우리는 우선 나 자신과 화해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고독 속에 걸어 들어가야 한다. 고독을 잘 다스리면 불안이 제거된다. 고독이 승화된 결정체를 가지고 가능한 한 이웃과 자주 만나서 내 자신과 화해하고, 내 나라와 온 세상과 화해해야 한다. 평화를 향한 나의 여정은 날마다 새롭게 시작된다. 화해가 바로 우리의 삶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이 여행에 초대해야 한다. 나 자신을 위해 화해하듯이 세상을 위해 화해하는 것이다.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단어'의 힘을 믿는다. 그건 아마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리라! 그래서 주문을 외운다. 주문을 천 번 이상 반복하면 강력한 힘을 가진 만트라가 된다는 것이다. 반복적인 신체활동은 마음을 집중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나는 이 풍요로운 벌판을 달리면서 영주를 끝없이 반복하여 독송한다.
 
천지영기 아심정 (天地靈氣 我心定 천지기운 나의 기운 마음으로 하나 되어)
만사여의 아심통 (萬事如意 我心通 세상만사 여의롭게 내 마음에 통한다네)
천지여아 동일체 (天地與我 同一體 천지는 나, 나도 천지 한 몸으로 감응되어)
아여천지 동심정 (我與天地 同心正 내 마음이 천지 마음 하나 되어 바른 마음)
 그리고 찬송가도 반복해서 벌판 끝까지 퍼져나가도록 부른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평화의 미래’는 폭력이 미쳐 발광하는 현실에서도 미래의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에 의해서 굳건히 유지된다. 여기 폭력이 미쳐 날뛰던 때에 평화를 꿈꾸고 묵묵히 실천하던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캄보디아의 간디’로 불리는 승려 마하 고사난다는 자신의 온 가족을 살해한 자들에게도 위로의 말과 행동을 전한다. 그의 가르침은 너무 평범해 오히려 새롭다. “미움은 미움으로 평정될 수 없다. 사랑을 통해서만 미움은 평정된다.”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의 난민촌 수용소 안에서도 지하 단체인 크메르루주의 수용소 지도자들은 누구든지 절에 가는 사람은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마하 고사난다가 절을 처음 개원하는 날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법회가 천막 절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대학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었다. 마하 고사난다는 천 년이 넘게 불리어 온 전통적인 찬불가로 법회를 시작했다.
 
내전이 벌어지고 크메르 루즈 정권 하에서 스님들은 붙잡혀가고 죽고, 절이 파괴되는 8년 동안이 법회는 중단되고 찬불가들은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지구상의 누구보다도 많은 슬픔과 불행을 겪은 이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아직 그 노래들이 생생히 기억되어 있었다. 이윽고 마하고사난다가 붓다의 법문 한 구절을  읽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미움은 미움에 의해선 결코 멈춰지지 않으니 오직 사랑으로써만 치료된다. 이것은 아주 옛날부터 전해져 온 영원한 법칙이다.”
 
그가 이 법문을 반복해서 암송하는 동안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와 함께 그것을 따라 암송했다. 그들은 그 구절을 계속 암송하는 동안 만트라가 되어 하나가 감동을 받아 흐느끼니 이윽고 저마다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트라우마에 갇혀 바싹 마른 장작과도 같았던 그들의 가슴이 용서의 마음의 생기기 시작했다. 마하 고사난다의 존재와 그가 낭송하는 진리는 그들이 참아야만 했던 슬픔보다도 더 큰 광명이었던 것이다.
 
공산주의자 크메르 루즈가 미쳐 날뛸 때, 그들은 불교를 완전히 근절하려고 시도했고 거의 불교를 말살시켰다. 거의 모든 승려와 종교 지식인이 살해되거나 추방되었으며 거의 ??모든 사원과 불교 사원 및 도서관이 파괴되었다. 마하 고사난다는 타이-캄보디아 국경에 망명해 고행을 하며 절을 세우고 캄보디아 비구를 양성했다. 그는 난민들의 마음에 평화를 되찾아주고, 캄보디아를 다시 재건하기 위해 난민촌을 돌아다니며 설법을 펼쳤다.
 
마하 고사난다는 1991년 파리에서 평화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사랑과 자비로 캄보디아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며, 이후에도 동남아, 세계 평화 등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92년에는 전국적 평화행진을 이끌기 시작했고, 뒤이어 캄보디아 전역에 걸쳐 수많은 평화걷기 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캄보디아 어린이들의 아버지, 살아있는 국보, 살아있는 진실, 평화중재자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는 유명한 명상가이며, 15개 국어를 구사하는 유명한 번역가이기도 했다.
 
캄보디아는 불교에 진심인 나라다. 태어나면 절에서 스님의 축복을 받고, 어린이들의 초등 교육은 대부분 불교 사원 학교에서 이루어진다. 남자들은 일정기간동안 출가수행을 거친다.  결혼식에도 스님들을 초청해 공양하고 늙으면 절에서 살다 죽으면 절 마당의 유골탑에 안장된다. 삶의 시작부터 마지막을 모두 불교라는 울타리에서 함께한다. 따라서 캄보디아의 불교는 그 자체로 국민과 국가의 정체성이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연기설에 입각하여 모든 것에 집착이나 증오를 버리고, 상호의존적 존재임을 깨달음으로써 동체대비를 실현하고자 한다. 따라서 캄보디아인들은 비교적 낙천적이고 유순하며 가족공동체를 중요시한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기 68일차인 지난 7일 캄보디아에서 촬영한 자신의 발.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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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기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