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오직 '자유'만…'민주'가 실종된 300일
새해 1월2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 300일째 맞아
당선인 인사·취임식·축사 등에서 연일 '자유' 강조
지지층 결집 의도…전문가들 '민주' 사라졌다 우려
입력 : 2023-01-03 06:00:00 수정 : 2023-01-03 09:12:15
[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지금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또 '자유'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규모 의견을 가진 세력들도 존재하고 그래서 과연 안정적 통합이 참 어려운 그런 국가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대통령직속 국민통합위원회 추진전략 및 성과보고회에서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자유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세력'에 비토로 일관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는 '민주'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정치 전문가들 역시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에 대해 "민주가 실종됐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2일자로 윤석열 대통령이 20대 대선에서 당선된 지 300일을 맞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9일 치러진 대선에서 1639만4815표(48.56%)를 획득,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24만7077표(0.73%포인트) 차로 제쳤다. 역대 대선 사상 최소 표차 승리였다. 윤 대통령은 배우자 김건희 여사에 관한 각종 의혹이 악재로 작용했고 공정세상 어젠다를 내건 이 후보의 거센 추격을 받았으나 반문(반문재인) 민심을 결집,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2022년 3월10일 새벽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당선 확정 후 만세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대통령은 대선 승리 직후 당선인 인사에서부터 자유·민주의 가치를 천명했다. 그는 "윤석열정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로 세워 위기를 극복하고 통합과 번영의 시대를 열겠다"며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철 지난 이념을 멀리하고, 국민의 상식에 기반해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또 "당당한 외교와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거듭나겠다"며 "오늘 이 자리에 서는 순간에도 시대를 관통하는 공정과 상식의 자유민주주의 정신과 법치라는 헌법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도 했다.
 
윤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4월19일 제62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해서도 자유·민주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그는 "우리는 자유와 정의를 향한 외침, 그리고 목숨보다 뜨거웠던 불굴의 용기를 기억하고 있다"며 "목숨으로 지켜낸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국민의 삶과 일상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소중하게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62년 전 오늘, 권력의 부정과 불의에 맞서 위대한 학생과 시민들의 힘으로 자유를 지키고,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다"면서 "민주주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같은 해 5월10일 취임식에서도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이라고 하고, 취임사 본문에선 자유라는 단어만 35번이나 언급하는 등 자유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직접 다듬어 수정했다는 취임사에서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며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며 "번영과 풍요, 경제적 성장은 바로 자유의 확대"라고 규정했다. 또 "자유는 결코 승자독식이 아니다"면서 "모두가 자유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연대와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자유라는 단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건 시민·국민으로 총 15번 언급했다. 이어 △세계 13번 △평화 12번 △국제 9번 △민주주의 8번 △위기 8번 △연대 6번 등이었다. 
 
2022년 5월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윤 대통령은 석 달 후인 8월15일 제77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자유,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함께 연대해 세계 평화와 번영에 책임 있게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분들의 뜻을 이어가고 지키는 것"이라며 자유를 33번 꺼냈다. 이번 경축사에서 자유 다음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독립 18번 △국민 15번 △세계 12번 △평화 9번 △경제 9번 △민주주의 6번 △미래 6번 △혁신 6번 등이다. 
 
윤 대통령이 자유라는 단어를 매번 강조하는 건 보수진영의 중요 가치인 자유주의를 앞세워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이 대선 당선인 인사에서 밝힌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철 지난 이념을 멀리하고, 국민의 상식에 기반해 국정을 운영하겠다"라는 말에서의 '자유민주주의'도 언뜻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합친 말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자유주의에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대선 당선부터 300일 동안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만 강조한 탓에 민주는 실종됐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윤 대통령의 행보에선 민주의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청와대 대통령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는 것부터 그랬다. 대통령실 이전 과정에서 국민과 국회에 대한 설득과 의견수렴, 예산 검토 과정 등은 생략됐다. 대통령실 이전은 결과적으로 취임식을 하기도 전에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깎아 먹은 일등공신이 됐다. 
 
용산 대통령실 전경. (사진=뉴시스)
 
이뿐만이 아니다. 경찰국 신설과 행정안전부의 경찰통제 논란을 비롯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이상민 행정안전부·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한동훈 법무부·김현석 여성가족부·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 임명 강행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징계 국면에서 촉발된 '윤심'(윤석열 대통령의 뜻) 논란 △'윤석열차' 풍자에 대한 표현의 자유 탄압 파문 △주52시간제 개편 갈등 등도 민주주의 절차가 실종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협치 실종에 대한 지적부터 △영수회담조차 열리지 못한 경색국면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 압박 △국회선진화법 이후 최장 지각 처리된 2023년도 예산안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파행 등도 민주주의 실종 사태의 단면이다. 
 
특히 미국 순방 당시 '바이든-날리면' 사건으로 촉발된 언론과의 갈등, 시민의 알권리 침해 등은 윤 대통령이 행보에서 민주가 상실된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앞서 MBC는 윤 대통령이 지난해 9월21일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글로벌펀드 재정회의에 참석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48초 동안 만나고 나오는 길에 "국회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MBC 방송 후 국내 거의 모든 언론사는 윤 대통령의 해당 발언을 후속 보도했다. 이에 대통령실은 당시 윤 대통령이 한 말은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주장했고, MBC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하지만 MBC를 비롯해 윤 대통령 순방에 동행했던 언론들은 대통령실에 해당 발언의 입장을 요구했으나 대통령실이 13시간 동안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다가 뒤늦게 조치에 나서며 의혹만 키웠다. 더구나 김은혜 홍보수석은 '국회 이XX'에서의 국회는 미국 의회가 아닌 한국 야당이라고 발언, 논란을 부채질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해당 보도를 맨 처음 보도한 MBC만을 꼭 집어 비판하면서 언론과의 대치에 돌입했다. 급기야 이 일은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 사태로 비화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이 MBC를 전용기 탑승에서 배제한 이유를 설명하며 "우리 국가 안보의 핵심 축인 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악의적 행태를 보였기에 대통령의 헌법수호 책임 일환으로 부득이한 조치"라고 밝히자 논란이 더 커졌다.  
 
6월2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두수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윤 대통령이 가진 검찰 특유의 '이분법적 사고'가 문제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윤 대통령의 발언과 행보엔 이재명 대표와 야당, MBC, 일부 시민사회단체 등을 악으로 규정하고 척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게 엿보인다"며 "악이라고 간주한 자와는 협치를 할 수 없고, 민주주의 절차대로 상대할 수 없다는 게 윤 대통령의 의중인 것 같다. 윤 대통령의 기준에 있는 자유만 외치다 민주가 실종됐다"라고 주장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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