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딸 살해 엄마 '집행유예'…법원은 국가 역할 물었다
"국가, 장애인과 그 가족 보호·지원 부족"
입력 : 2023-01-19 19:14:27 수정 : 2023-01-19 20:33:44
[뉴스토마토 조승진 기자] 딸은 정상으로 태어났지만 첫 돌 무렵 병원 의료사고로 지적장애 1급이 됐습니다. 이후 딸은 누워서 생활해야만 했습니다. 딸과 의사소통, 교감은커녕 대소변도 대신 처리해줘야 했습니다. 그런 생활은 38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지난해 1월 대장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항암치료 도중 딸의 혈소판 수치가 낮아졌고, 더 이상 치료를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딸은 계속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엄마는 24시간 딸의 고통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코로나로 또 다른 보호자를 두기가 어려웠습니다. 엄마에게는 조금의 쉼도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딸을 죽였습니다.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난해 5월23일 인천 연수구에서 발생한 60대 친모 A씨가 중증장애를 앓고 있는 딸 B씨를 살해한 사건입니다. A씨는 범행 뒤 자신도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6시간 뒤 아파트를 찾아온 30대 아들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습니다.
 
살인 혐의 A씨, 재판부는 '집행유예'로 선처
 
인천지법 형사14부(재판장 류경진)는 19일 살인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A씨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앞서 검찰은 A씨에게 징역 12년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집행유예로 판단했습니다.
 
 
38년간 돌본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기소된 A씨. (사진=연합뉴스)
 
이날 재판부는 A씨가 심한 우울증으로 심신 미약 상태였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상태에서 심신미약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조서 진술 내용을 보면 당시 피고인의 우울증을 인정해도 심신미약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 "국가, 장애인과 그 가족 보호·지원 부족"
 
다만 재판부는 국가도 A씨 범행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짚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장애 정도 등을 고려하면 통상적인 자녀 양육에 비해 많은 희생과 노력이 뒤따랐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더구나 피해자는 대장암 진단을 받고 힘겹게 항암치료를 받던 중이었고, 옆에서 지켜본 피고인 또한 상당한 고통을 겪어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어 "피고인은 그동안 피해자와 함께 지내며 피해자에게 최선을 다해 왔고, 앞으로도 큰 죄책감 속에서 삶을 이어 나갈 것으로 보인다"라며 "나아가 국가의 장애인 및 그 가족에 대한 보호 및 지원 부족 또한 이 사건 발생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발생을 오로지 피고인의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피고인과 피해자의 가족, 친인척 및 그 지인들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간곡히 탄원하고 있다"며 양형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사진=뉴시스)
 
"나 죽은 뒤 딸 누가 돌보나 걱정"
 
앞서 A씨의 아들 C씨는 재판부에 A4용지 4장 분량의 탄원서를 제출하며 “40년 가까운 세월 누나와 함께 보이지 않은 감옥 속에 갇혀 고통 속에 살아오신 어머니를 다시 감옥에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라며 선처를 호소했습니다.
 
C씨는 탄원서에서 “지난 38년간 대소변 냄새, 침 냄새 나지 않도록 수시로 옷도 깨끗이 입히고 지극 정성 간호해왔을 정도”라며 “백번 천번 처벌을 받아야 하는 죄인이지만, 어머니를 감옥에 보낼 수는 없기에 제발 가정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간곡히 선처 바란다”고 했습니다.
 
A씨도 지난해 12월13일 결심공판에서 “먼저 죽으면 딸을 누가 돌볼까 걱정돼서”라며 “(내가) 60년 살았으면 많이 살았다고 생각해 끝내자는 생각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더 잘 돌봤어야 하는데 미안하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조승진 기자 chogiz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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