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라-루나 사태' 주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서로 넘기라며 한국·미국·싱가포르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때 '한국의 일론 머스크'라며 세계적으로 추앙받던 청년이었는데 그 말로가 참 비참합니다. 오늘(29일) 토마토Pick!에서는 '테라-루나 사태'와 권 대표의 앞날을 짚어드리겠습니다.
권도형은 누구?
1991년생으로 한국 국적입니다. 대원외고 졸업 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했습니다. 잠깐이지만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엔지니어로도 일했던 그는 2016년 분산 네트워크를 연구하다가 가상화폐에 심취했습니다. 테라폼랩스를 설립한 뒤 한창 테라-루나 가치가 높이 평가 받았을 때에는 두 회사의 시가 총액이 77조원까지 갔는데요. 2019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30세 이하 아시아 3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테라루나 사태'가 터진 뒤 외신들은 테라노스 전 CEO 엘리자베스 홈스에 빗대 '한국판 사기꾼 홈스'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테라루나 사태 일지
2018년 : 권도형, 신현성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와 함께 테라폼랩스 설립
2019년 4월 : 테라폼랩스, 테라(스테이블 코인)+루나(자매 코인) 발행 시작
2021년 3월 : 테라폼랩스, '앵커 프로토콜'로 투자자 유인
'앵커 프로토콜' 출시 2개월만에 테라 가치 3배 이상 급증
2021년 5월 : 테라가치 급락. 권 대표, 미국 모 회사와 공모해 테라 대량 구입
테라 가격 원래 수준 회복, 권도형 "테라 회복은 특수 알고리즘 덕분"이라고 대대적 홍보
2022년 4월 : 개인·기관투자자 몰리며 자매코인 루나 가치 1달러 미만에서 119.18달러까지 폭등
권도형 한국 출국(해외 도피 추정)
2022년 5월 : 테라 가치 1달러 미만으로 폭락·회복 불능
테라코인 시스템 붕괴…400억달러(51조 3600억원) 상당 증발
2022년 9월 : 한국 법원, 권도형 체포영장 발부(자본시장법 위반 등)
2022년 12월 : 한국 법원, '공범' 신현성 등 8명 영장 기각
2023년 2월 :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테라폼랩스 및 권도형 사기혐의로 제소
2023년 3월 : 권도형 몬테네그로에서 체포
미국 뉴욕 연방검찰, 권도형 증권사기 및 시세조작 등 8개 혐의로 기소
서울남부지검, 신현성 전 대표 구속영장 재청구
테라-루나는 어떤 화폐인가?
권 대표는 테라-루나를 고안하기 전 가상화폐(암호화폐)의 근본적 약점인 심한 변동성에 주목했습니다. 이 변동성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갖고 가는 것, 즉 가치가 안정적인 코인(스테이블 코인)을 만드는 것이 권 대표의 목적이었지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테라-루나 코인입니다. 테라가 스테이블 코인이라면 그 가치를 담보하는 게 루나입니다. '1달려=1테라=1루나' 법칙을 기본으로 하며, △현물 예치 △자산담보 △알고리즘 운영 등을 세가지 특징으로 합니다. 테라-루나의 수익구조는 이미 많은 설명이 나왔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만, 결국은 시장 시세차익을 이용한 위험한 운영으로, 역시 암호화폐의 유동성이 늘 골칫거리였습니다.
문제의 '앵커 프로토콜'
그래서 권 대표가 담보기능을 가진 루나 유통량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것이 '앵커 프로토콜'입니다. 투자자가 테라폼랩스에 루나를 맡기면 최고 연 20%의 이자를 테라로 지급하는 파격적인 상품입니다. '앵커 프로토콜'은 대출도 가능했는데, 이자율이 연 12.4%였습니다. 이러니 투자자들이 루나를 담보로 UST 대출을 받은 다음 '앵커 프로토콜'에 반복 예치하고 테라폼랩스 입장에서는 대박이 났습니다. 2021년 5월 50억달러 정도였던 적립금 규모가 2022년 5월에는 160억달러까지 불어났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게 폰지사기라고 지적했지만 권 대표는 "가난한 사람과는 토론하지 않겠다"며 만용을 부립니다.
'죽음의 소용돌이'
그러나 얼마 안 가 '죽음의 소용돌이'가 시작됐습니다. 한 코인 시장의 큰손이 8500만달러어치 테라를 한 번에 팔아치우면서 테라와 루나가 동반 하락하더니 일시적으로 0.98달러로 떨어졌던 테라 가격이 1달러를 회복하지 못하고 폭락하기 시작한 겁니다. 시가총액 55조원 상당의 가치를 가지고 있던 테라-루나 코인의 가치가 일주일만에 99.99% 하락했습니다. 권 대표는 누군가의 작전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하면서 테라 2.0'이라는 새 코인 발행을 선언했지만 상장 2주 만에 가격이 10분의 1 가까이 폭락하면서 실패했습니다.
한국의 '일론 머스크'에서
인터폴 적색수배자로
2022년 4월 '앵커 프로토콜' 등의 효과로 대박을 친 직후 권 대표는 측근인 한창준 전 차이코퍼레이션 대표와 외국으로 도주합니다. '천재 개발자' '한국의 일론 머스크'에서 국제적인 도망자 신세가 된 거죠. 6개월간 싱가포르와 세르비아를 거쳐 몬테네그로까지 흘러들어갑니다. 다만, 몬테네그로는 경유지 였는데 현지 수사 당국은 권 대표 일행이 코스타리카 위조여권을 이용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출국을 시도하는 중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미국·싱기포르
"권도형 넘겨라"
권 대표 체포 소식에 반색한 국가는 우리뿐만 아닙니다. 싱가포르와 미국도 즉각 움직였습니다. 모두 '테라-루나 사태' 피해자들이 있는 국가입니다. 한국 피해자는 28만명으로 추산됩니다. 피해액은 50조원 이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싱가포르에서는 800억원대 사기 고소장이 경찰에 접수됐습니다. 미국 뉴욕 남부 연방지방검찰청(SDNY)도 권 대표가 체포된 직후 그를 투자자 기만 등 8가지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현재 이 세 국가 모두 몬테네그로 사법당국과 범죄인인도 가능성을 타진 중에 있습니다. 몬테네그로 사법당국은 현지에서 발생한 범죄 처단이 먼저라며 구금 30일 동안 어느나라에도 송환되지는 않을 거라고 밝혔습니다.
"차라리 미국으로 보내자"
권 대표가 국내로 송환되더라도 제대로 된 처벌이 가능할지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핵심 쟁점은 권 대표가 테라의 안정성을 홍보하며 투자자들을 속였느냐 여부입니다. 뉴욕 검찰의 공소장엔 권 대표가 폭락 사태가 일어나기 1년 전 이미 시세 조종을 공모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서울남부지검이 체포영장에 적시한 혐의는 자본시장법 위반, 유사수신행위규제법 위반 등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암호화폐 범죄를 규정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법정 다툼이 치열할 것으로 보입니다. 국내 일부 피해자 커뮤니티에서 '차라리 미국으로 송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이 체포영장 등에 적시한 혐의로 유죄가 인정된다고 해도 징역 15~20년이 선고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피해액에 대한 추징도 불투명합니다. 피해액을 돌려받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피해액 추징은 물론 징역 100년까지 선고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반성 모르는 '천재 개발자
권 대표는 왜 이렇게 미운털이 박혔을까요. 그것은 사태 발생 후에도 뻔뻔한 그의 행보 때문입니다. 권 대표는 지난해 인터폴 적색수배 직후 트위터를 통해 "산책하고 쇼핑몰도 간다"며 도주설을 부인했는가 하면, 최근 몬테네그로 법정에서는 구금기간 연장에 대해 다투며 '한국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는 등 방어권을 박탈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과거 그는 SNS에서 영어로만 소통해왔습니다. 막대한 피해도 있지만 이런 권 대표의 반성 없는 태도가 피해자들을 더 분노하게 하는 것 아닐까요. 어느나라에서 권 대표를 넘겨받든 엄정한 수사와 그에 합당한 처벌,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있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