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매수청구권 도입 후 물적분할 실종…우회로는 '사업양도'
올 들어 현재 유가증권시장 물적분할 DB하이텍 단 1건
반대주주 주식 매수 비용 부담에 작년 대거 막차 타
사업양도 후 우회상장 등 편법 우려는 여전
이사 충실의무 강화 등 규제 법안 국회 계류
입력 : 2023-05-08 06:00:00 수정 : 2023-05-08 07:24:46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주식매수청구권 도입 후 물적분할 사례가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일반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제도 도입 효과가 보이지만, 사업양도를 통한 우회상장 등 규제망을 비켜가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정치권과 시장에서는 주주에 손해를 끼치는 회사 결정에 대해 포괄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이사 충실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중 이사회 결의일 기준 작년에 물적분할을 추진한 기업은 17개로 집계됩니다. 반면 올들어 현재까지는 단 1개뿐입니다. 작년말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으로 상장기업의 이사회가 물적분할을 결의하는 경우 반대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도록 했고 이후 급감한 것입니다. 제도 도입을 앞두고 물적분할 공시 강화 등 일반 주주 보호 방안이 대통령 선거 공약 때부터 예고됐던 터라 작년에 분할 수요가 몰린 경향도 있습니다.
 
급한 물적분할은 작년에 처리
 
당초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물적분할이 이슈화되면서 규제 법안이 논의되던 과정에서 SK케미칼이 SK바이오사이언스를, 카카오가 카카오페이 및 카카오뱅크를 분할 상장한 바 있습니다. 또 포스코홀딩스가 비상장을 전제로 철강사업부문 포스코를 떼어냈습니다. 이후 작년 초 LG화학에서 떨어져 나온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된 직후 LG화학 주가가 하향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작년엔 ▲DRB동일 자동차부품 사업 ▲SG세계물산 콜롬보사업 ▲드림텍 의료기기사업 ▲코오롱인더 골프웨어사업 ▲서흥 건강기능식품사업 ▲삼일씨엔에스 골재사업 ▲LS일렉트릭 EV Relay사업 ▲세아베스틸 특수강 제조업 ▲케이지티에스 환경에너지소재사업 ▲쌍용정보통신 클라우드 사업 ▲한솔홈데코 인테리어사업 ▲삼양패키징 PET재활용 사업 ▲한화 방산부문 ▲SKC 소재사업 ▲한농화성 화학산업 ▲풍산 방산부문 ▲한화솔루션 소재사업의 물적분할 이사회 결정이 이뤄졌습니다.
 
 
그랬던 것이 올 들어 현재까지는 DB하이텍만 팹리스사업 물적분할을 진행했습니다. DB하이텍은 물적분할 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를 받아들인 첫 사례가 됐습니다. 반대주주가 많으면 주식매수청구액수가 불어나 분할이 무산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기업은 유망 신사업의 분할 상장을 통한 외부 출자금을 늘리고 싶어도 주식매수비용을 고려해야 합니다. 더욱이 분할 상장 후 모회사의 주가 하락을 경험한 주주들이 반대매수를 적극 행사할 것도 기업 측에선 부담입니다.
 
재계에선 주식매수청구권 도입으로 사업개편 등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부작용을 우려합니다. 다만 과거 대기업 물적분할은 분할 후 지배력이 상실된 사례가 많았습니다. 사업집중도 강화 등 기업이 제시한 분할목적 공시와 다르게 구조조정 목적을 숨겼던 셈입니다. 그러다 코로나19 이후 증시활황 때는 분할 후 재상장 시도가 늘어났습니다. 배터리 등 유망 신사업에 대한 외자유치를 통해 투자금을 마련한다는 의도였습니다. 그럼에도 지배주주가 구주매출 등 재상장 후 확보하는 이득에 비해 분할 전 회사 일반주주는 분할 사업에 대한 권리가 줄거나 침해된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이런 여론 수렴 결과, 주식매수청구권이 도입된 것입니다.
 
“자산양도도 특별결의 거쳐야”
 
반대주주를 무릅쓴 물적분할 시도는 줄게 됐지만 유망 신사업을 비상장사에 양도해 우회상장하는 등 규제망을 회피하는 다양한 편법시도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사 충실의무를 강화하는 법안들이 발의됐습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같은 당 박주민 의원이 각각 비슷한 내용의 상법개정안을 내놨습니다.
 
상법 제382조의3은 이사 충실의무로써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상법 제399조43은 고의나 과실로 법령 또는 정관을 위반하거나 임무를 게을리하면 손해배상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에 손해가 없는 이상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 주주가 물적분할 등으로 손해를 입더라도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습니다.
 
개정안은 이사가 주주 이익 보호 의무를 갖도록 해 주주가치가 훼손되면 소송할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법안에는 중요 자산 처분 및 양도 시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하고 반대주주에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게 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기업들이 물적분할과 동일한 효과를 누리지만 현행 이사회 결의만을 필요로하는 자산 처분 및 양도를 통해 현물출자함으로써 자회사를 신설하는 등 우회로를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물적분할을 금융당국에서 제재하니까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인데 사업양도 등 꼼수로 재상장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 같다”라며 “이런 경우 현실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관련 규제 법안 마련에 적극 찬성한다. 이사 충실의무에 주주를 포함시키는 방안도 시급한 당면과제”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자본시장법은 이사회 결의 사실 공시 이전 주식 취득 주주에 한해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DB하이텍의 경우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분할을 결의하기로 하면서 주주확정기준일을 작년 12월31일로 대체했습니다. 이에 올들어 DB하이텍 주식을 산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대상에 제외돼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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