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베트남의 사파 지역을 여행할 때 일이에요. 구름, 하늘, 비를 계속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요. '각각의 형질은 다르지만, 결국 물로 순환하는 게 아닐까. 그게 결국 우리 인간의 모습과 유사한 게 아닐까.'"
박진희 작가(41)의 개인전 'Return to Arche: 처음으로 돌아가다'는 '먼 길을 돌아 다시 처음의 자리로 간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입니다. 지난 5일부터 오는 20일까지 서울 중구 로프트 그라운드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와 관련 화상으로 만난 박진희 작가는 "제 인생의 스토리와 자연을 보며 떠올린 사유가 맞물린 지점들을 한 곳에 모아보고 싶었다"고 얘기했습니다.
개인전 'Return to Arche: 처음으로 돌아가다'를 연 박진희 작가. 사진=박진희 작가
제목의 ‘아르케(Arche)’는 그리스어로 처음, 시초라는 뜻. "대학(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후 결혼과 출산, 자녀 양육의 일들로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그는 "그렇게 10년이 넘는 공백기 끝에 다시 시작한 작업으로 제1회 로프트 그라운드 작가공모전에 선정됐고 이번 전시를 열게 됐다"고 합니다. "20대 중반 '멋진 화가가 될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본의 아니게 인생 숙제가 빨리 찾아왔어요. 인생의 긴 터널을 지나오면서 결혼 전 열정을 갖고 했던 초기작들과 올해 1~4월 그린 작업물들을 연결시켜 이번 전시회에서 선보이게 됐어요."
대체로 여행에서의 영감을 그려온 편입니다. 그러나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색과 선 활용해 해석하고 변형하는 특유 스타일로. 'UTOPIA' 시리즈는 2005년 호주 사막 지역의 풍광을 붉은 땅과 푸른 선들을 섞어 표현한 작품입니다. 야생적이면서 초현실적인 성경 속의 광야나 에덴을 떠올렸다고. '나선풍경' 시리즈는 끝없이 산을 깎아 나선처럼 만든 듯한 베트남 사파 지역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입니다. "외부인하고 접촉 없는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서 순수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거든요. 그런 것들이 결국 색과 선으로 표현이 된 것 같아요."
개인전 'Return to Arche: 처음으로 돌아가다'를 여는 박진희 작가 작품들. 사진=박진희 작가
부다페스트 핑크빛 구름을 그릴 땐 '구름끼리 연애 하는 것 같아' 했던 상념도 꺼내보고, '개 시리즈'를 그릴 땐 목줄을 떠올리며 '안정적이지만 자유가 없는 삶'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똑같이 바라보는 풍경이지만 눈으로 보이는 풍경 너머에 다른 풍경을 보게 하는 것. 그런 것이 제가 계속 연구하며 만들어 가고 싶은 작품의 세계입니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고 아름다운 색감을 쓰는 영국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누구나 봐도 아름다운 색을 쓰잖아요. 자기만의 색을 구현한다는 것, 그것은 호크니가 제게 미친 영향이라 생각해요. 저 역시 색으로 이야기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아요."
박진희 작가 개인전 'Return to Arche: 처음으로 돌아가다'. 사진=박진희 작가
오늘날 전 세계의 현대미술, 컨템포러리아트와 관련해선 “근대 미술까지는 예술 사조들이 뚜렷이 있었던 데 비해, 오늘날에는 난해한 것도 많고 아예 답지를 주지 않는다”며 “답을 향해 가는 것보다는 새로운 경향과 이야기들, 미래에 대한 것을 그려가는 게 중요해졌다”고 얘기했습니다.
“자기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서, 자기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는 예술, 표현할 수 있는 게 우리 시대의 정직한 예술이라 생각해요. 한 여자로서 엄마로서 미술 강사로서 삶에서 느꼈던 사유의 지점들을 나의 시각으로 표현하는 것. 누구나에게 공감대를 줄 수 있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고 싶어요. 미술계에 어떻게 남고 싶다가 아니라.”
미국 화가 애너 메리 로버트슨 모제스(1860~1961)처럼 작품활동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페루나 북극, 아프리카까지 가보는 것이 목표. “모제스 할머니는 70세부터 시작해 100세가 넘을 때까지, 사과 잼이나 썰매 같은 일상 소재들을 그리셨거든요. 누군가에게 진정성이 닿을 수 있는 꾸며지지 않은 모습, 그런 그림들을 그려내고 싶어요.”
개인전 'Return to Arche: 처음으로 돌아가다'를 여는 박진희 작가 작품들. 사진=박진희 작가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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