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의 한국철학사 10화)신라인들이 용궁에서 구해온 '금강삼매경'
입력 : 2023-05-15 06:00:00 수정 : 2023-05-15 06:00:00
오늘은 《금강삼매경》이라는 경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경전은 원효스님이 《금강삼매경론》이라는 저술을 남겨 우리에겐 친숙한 경전인데요. 이 경전은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팔리어나 산스크리트어 원본이 없습니다. 이 말은, “인도에서 만들어졌다”고 확정할 수 없다는 뜻이죠. 이 경전의 제목이 가장 처음 나오는 문헌은, 남북조시대 양나라 승우가 쓴 《출삼장기집》이라는 경전목록집입니다. ‘경전목록집’이라는 것은, 불경 제목만 모은 책이죠. 남북조시대 《출삼장기집》에서 제목이 처음 나오는데, “제목만 있고, 본문은 없다”고 합니다. 수나라 때는 《법경록》이 대표 불경목록집이고, 당나라는 《정태록》이 대표 불경목록집입니다. 이 두 목록집에서도 “실역(失譯, 잃어버린 번역 경전)”이라고 합니다. 이 경전의 제목은 있는데, 내용은 없다는 뜻이죠. 수나라의 《법경록》은 수문제가 스님들 20명을 풀어서 중국 전역에서 유통되는 불경의 모든 목록을 조사하라고 명령을 내려, 이에 따라 조사한 겁니다. 그 결과, 이 경전은 “원문이 없고 제옥만 전해집니다”라고 기록했죠.
 
그런데 그 100년 뒤 원효가, 중국에서 스님 20명을 풀어도 원문을 못 찾았던 경전인데, 이 경전의 원문 100%를 인용한 《금강삼매경론》을 씁니다.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은 “경왈(經曰)”해서 경전 한 마디를 인용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풀이를 “논왈(論曰)”해서 적습니다. 그러니까, 이 경전의 원문이 《금강삼매경론》에 100% 다 포함돼 있는 거죠. 이런 구조로 저작된 책이 《금강삼매경론》입니다. 당나라 중기(개원 19년, 서기 730년)에 나온 지승의 《개원석교록》이라는 ‘불경 리스트’가 있어요. 이 불경 리스트는 이 경전에 대해 “북량(北?) 때, 즉 남북조 때의 잃어버린 경전으로, 이름만 전해져왔는데, 지금은 ‘습유본(拾遺本)’이 있다”고 합니다. ‘습유본(拾遺本)’은 “짜깁기 책”이라는 뜻이죠. 즉, A라는 책과 B라는 책에서 인용해 놓은 것들을 긁어모아 만드는 식을 ‘습유본’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만든 습유본 《금강삼매경》이 있다는 겁니다. 이 경전은,《개원석교록》(서기 730 년) 이전에는 제목뿐인 경전이었는데, 원효(617~686)를 지나면서 습유본이 나옵니다. 이 습유본이라는 건, 원효의 저작에서 “경왈(經曰)” 이라고 인용한 구절들만 모으면 만들어집니다. 지승 등이 보았다는 습유본과 한중일 삼국의 대장경에 실린 이 경전이 원효 저작에서 습유한 판본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까닭은, 원효 이전에는 이 경전의 내용에 대한 정보가 단 한 줄, 단 한 글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불경을 모아서 목록을 만드는 게 임무이던 이들이 입을 모아 “제목만 전해올뿐 본문은 없는 경전”이라던 《금강삼매경》이 7세기 신라에 갑자기 온전한 판본으로 등장해, 원효는 그에 대한 저작을 남깁니다.
 
원효 스님이 쓴 《금강삼매경론》. 사진=필자 제공
 
그런데 지난 글에서 말씀드렸던 송나라 찬녕의 《송고승전》을 보면 원효가 《금강삼매경론》을 저술한 배경에 대해서 다음처럼 설명합니다. 이 경전의 출처가 용궁이랍니다. 신라왕의 부인 왕후마마가 머리에 난 악성종기 ‘영용종’으로 병고를 치루고 있어서, 근심이었습니다. 이 때, 왕이 나라사람들에게 왕후를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박수무당이 “당나라에 가서 아가타 약(불교에서 얘기하는 만병통치약)을 구해오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하자, 왕이 그 말을 듣고 좋은 얘기라며 사신을 당에 보냅니다. 사신들이 배를 타고 당나라로 가는데 풍랑을 만나서 배가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용궁에 도착합니다. 용궁에서, 용왕님이 묻습니다. "너네들 지금 어디 가냐?" “신라의 왕후님이 머리에 종기가 나서 아가타약을 구하러 당나라에 갑니다.” 그랬더니, 용왕이 그거 다 쓸데 없다며, 순서가 흐트러진 《금강삼매경》을 던져주면서, 이걸 가지고 가서 대안 스님 시켜서 제대로 순서를 바로잡고, 그걸 원효 스님이라는 분에게 강론하게 하면, 왕후의 병은 바로 나을 것이다. 용왕님이 그렇게 얘기하더니. 칼로 사신의 장딴지를 찢고 거기에 이 경전을 집어넣고 싹 문질러 주니 아무런 흔적도 없이 아문다. 그러면서, 가다가 마귀들이 달려들어 (경전을) 빼앗아 가면 안되니까, 여기 다 감추고 가라고, 돌려보냅니다.
 
이 얘기는, 이 경전의 출처가 용궁이라는 말이죠. 사신일행이 귀국해서, 장딴지에서 이 경전을 꺼낸 뒤, 왕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합니다. 용왕님의 말씀에, 편차는 대안(大安) 스님한테 맡기고요. 대안(大安) 스님이라는 분은, 앞에서 ‘동경 흥륜사 금당 십성’에는 안 들어갔지만. ‘동경 흥륜사 금당 십성’에서 민중불교를 실천했던 사파, 혜숙, 혜공, 원효와 같은 부류의 스님으로, 그는 길거리에서 “대안(大安)하여라(크게 평안하여라), 대안하여라” 라고 외치고 다녔다고 해서, 대안(大安) 스님입니다. 그래서 이 사신들의 말에 따라 왕이 사신들이 용궁에서 가져왔다는 흐트러진 《금강삼매경》을 순서는 대안스님 보고 매기도록 하고 이것에 대한 해설은 원효 스님이 하라고 명을 내립니다, 대안스님이 그것을 8품으로 순서를 매기자, “부처님 말씀과 다 일치했다”고 합니다. 그뒤 원효가 황룡사에서 지상에서 처음으로 이 경전에 대해서 역사적 강론을 하죠, 이 설화가 하는 얘기는 이 경전이, 인도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용궁에서 왔다는 겁니다. 용궁에서 온 이 경전을 처음 본 사람들은 신라사람들입니다. 설화지만 저희가 분석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죠. 이 경전의 용궁 기원 설화를 만든 사람이 누구일까요? 이 설화를 만든 사람들은 신라사람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죠. 주인공들이 다 신라사람들입니다. 신라의 왕후가 머리에 종기가 나서, 사신들이 간 거고, 용왕도 신라의 대안스님과 원효스님을 알아요. 꼭 이 분들에게 이 경전의 순서를 매기도록 하고, 풀이를 써야 된다고, 알려줍니다. 신라사람들이, 이 설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주인공들이 다 신라사람들인 거죠.
 
신라의 사신들이 용궁에서 구해온 《금강삼매경》에 대해 원효가 처음으로 법회를 열어 강론을 한 경주 황룡사 터. 선덕여왕 때 백제 장인 아비지(阿非知)를 초청해 9층 목탑을 건립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4대의 왕이 100년에 걸쳐 조성한 가람이다. 1238년 몽골 침략 때 불에 탄 뒤, 1976년부터 8년간 진행한 발굴조사 결과 가람 건물들의 초석이 드러났다. 사진은 원효의 사자후 기운이 감돌고 있는 황룡사 중금당(中金堂)의 초석. 사진=필자 제공
 
이 경전은 출처 정보가 이 설화밖에는 없습니다. 신라에서 어느 날 갑자기 원효스님이 《금강삼매경론》을 저술합니다. 그게 습유본의 저본(底本)입니다. 원효스님은 이걸 어디서 구했을까요? 수나라 황제가 스님들을 20명이나 풀었어도, 제목밖에 없었는데, 원효스님은 어떻게 원문을 100% 다 구해서 《금강삼매경론》을 쓸 수 있었을까요? 많은 학자들은 《금강삼매경》이 인도 찬술 경전이 아니라 ‘후대에 만들어진 위경(僞經)’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본 불교학자인 미즈노 고오겐(水野弘元), 한국 불교학자 김영태, 미국 아시아학자인 버스웰(R. E. Buswell) 등이 이런 주장을 해왔죠. 근데 저는 《금강삼매경》을 ‘위경(僞經)’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위경(僞經)’이라는 단어는, ‘가짜 경전’이란 얘긴데, 가짜는 아니거든요. 그 내용이 불교에서 얘기하는 불학의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에, ‘위경’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고, 후대에 만들어진 진짜 경전이기 때문에, 이것을 ‘후대의 경전’ 이렇게 불러야 합니다. 미즈노 고오겐(水野弘元)은 이 경전이 “중국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라고 주장을 하는데, 근거는 없습니다. 김영태와 미국 아시아학자인 버스웰 등은 “신라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봅니다. 결국 이 경전은, 신라에서 만들어졌다고 판단하는 것이 지금까지 드러난 자료에 부합하는 합리적 판단이죠. 저는 원효가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면서 얻은 깨달음 사건이 신라사회에 던진 충격이 컸기 때문에 신라사회가 원효라는 성불한 스님에게 당신이 깨달은 내용이 무엇이오? 그것을 얘기해 주시오라고 요구해서, 이 경전이 나왔다라고 봅니다. 용궁 기원 설화밖에 없는 《금강삼매경》의 핵심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이어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고전서에 편입된 《개원석교록》. 사진=필자 제공
 
■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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