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당의 인식과 위선
입력 : 2023-05-16 06:00:00 수정 : 2023-05-16 06:00:00
2020년 8월,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부의 방침에 따라 청와대 참모들에게는 집 한 채만 남기고 매각할 것을 권고했다가 정작 본인은 2개의 주택을 소유한 것이 드러나 결국 모두 매각하는 일이 있었다. 2023년 5월, 국회의원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코인’을 보유한 사실이 알려졌는데, 해당 의원은 이 코인을 수백 차례에 걸쳐 수십억 원에 이르는 거래를 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언론보도를 보면, 부동산 투자로 큰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 경제예측과 더불어 유망한 주식에 대한 정보를 전하는 기사, 새로운 시대에는 가상화폐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투자 수단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 과천 경마장에서 전재산을 탕진했다는 기사 등을 종종 볼 수 있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가상화폐든, 심지어 경마(競馬)든, 투자의 종목을 가리지 않고, 큰 돈을 버는 종목과 수단에 관심을 가지고 큰 돈을 번 사람을 선망한다.
 
하지만, 정치의 영역으로 돌아오면,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근로의 소득만이 신성한 것이고 부동산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고 설득하며, 허용되는 투자의 대상은 주식에 한정되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부동산 투자, 주식 투자, 코인 투자는 모두 ‘노동 이외의 자산 획득 수단’에 해당한다. ‘노동’이 아니라 ‘자본’을 특정 대상에 투자한 대가로 이익을 취득한다. 노동은 시간과 강도에 비례하여 대가를 수취하지만, ‘노동 이외의 자산 획득 수단’은 우연성에 기반한 이익을 취득한다.
 
그렇다면, ‘노동에 의한 자산 획득’만이 정당한 것인가. ‘노동 이외의 자산 획득 수단’, 즉 ‘우연성에 기반한 자산 획득 수단’은 모두 부정한 것인가. ‘노동에 의한 자산 획득’만이 정당하다는 사고는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하며 노동의 시간 및 가치에 비례하여 소득이 주어져야 하고, 그 이외에는 부정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무노동 무임금’, ‘노동가치설’이라는 학설과 같은 정책과 이념은 이러한 인식을 반영한다.
 
그런데 세상이 실제로 그러한가. 인간은 본질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존재다. 가치의 창출 수단은 실제로 노동 이외에도 많고, ‘시장원리’에 따라 평가된다. 그런데, 관념적인 ‘시장’은 가치의 창출 수단을 우연성에 기반하여 역동적으로 평가한다. 우리는 우연성에 따라 역동하는 시장에서 그 수단의 가치를 ‘예측’할 뿐이다.
 
노동의 대가만이 정당하다는 사고를 유지해야 한다면, ‘노동 이외의 우연적 자산 획득 수단’을 금지해야 한다. 하지만, 노동의 대가만이 정당하다는 사고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노동의 대가가 정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투자 등 ‘우연적 자산 획득 수단’도 모두 허용될 뿐만 아니라 모두 정당하다고 인정해야 한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어떤가. 혹시 근로의 소득만이 정당하다고 말하면서, 그 이외의 부동산 투자, 주식 투자, 코인 투자 등은 ‘우연적 자산 획득 수단’이므로 부정한 자산 획득이라고 비난하지 않는가. 그러면서 정작 당사자는 ‘현실적 상황’을 거론하거나 ‘합법적 방식’이라고 말하며, 은밀하게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쉬쉬하며 주식과 코인에 투자하여 우연적 자산 증식을 도모하는 경우가 있지 않았던가. 이러한 인식과 상황이 얽히고 버물리면서, 우리는 내재된 ‘내로남불’이 국면을 바꿔 계속되는 것을 보고 있다. 
 
정당은 사회를 선도해야 한다. 선도하되, 반 걸음 앞에서 우리가 나아갈 사회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정당이 현실을 외면해서 사회에 뒤처져 있으면, 이미 정당의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기능을 상실한 정당(政黨)은 정당(正當)한 정치를 견인할 수 없다. 정당이 사회의 현실과 다른 비현실적인 정책을 추구하면, 반드시 위선(僞善)이 발생한다. 현실과 비현실의 간극이 위선의 정도를 강화한다.
 
우리는 모두 사회의 실상에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사회의 실상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데, 사회의 실상과 다른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요하고 사회의 실상과 다른 행동을 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것은 스스로 위선을 저지르고 사람들을 위선에 빠뜨리는 것이다. 사회의 실상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데, 사회에 실상에 따른다고 비난하는 것은 이율배반(二律背反)이다.
 
민주당은 비현실적 정당, 위선적 정당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만이 정당하다는 인식, 근로의 대가만이 정당하다는 인식을 폐기하라. 과거의 잘못을 모두 사죄하고, 위선을 배태한 정책을 과감히 버려라. 국민에게 위선을 강요하지 말라. 스스로 위선에 빠지지 말라.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종로구지역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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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