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1982년생 김남국’과 민주당 4세대
입력 : 2023-05-18 06:00:00 수정 : 2023-05-18 06:00:00
민주당 1세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1924년생)과 동교동계다. 2세대의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1946년생)이다. 194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초반에 태어난 김근태·이부영 등의 재야 출신 명망가, 문재인 전 대통령, 이해찬·이낙연 전 총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민주당 3세대’는 86세대(1980년대 학번, 1960년대생)와 그 또래들이다. 이재명 대표(1964년생)와 1970년대 전반 태생 정치인들도 포함된다. 이렇게 세면 민주당은 4세대에 이르렀다. ‘1982년생 김남국’은 그일원이다. 
 
민주당 1세대는 독재자와 선배를 들이받으며 컸다. 민주당 2세대 역시 민주화운동에 이어 당내 보스에 맞서며 ‘정치개혁’을 선점했다. 민주당 3세대는 전두환 정권과 민주화 이후 초창기 집권세력에게 맞서 싸웠다. 다만 1세대에게 발탁받고 2세대와 협력하면서, 고생한 시기보다 훨씬 오래 양지에 있었다. 민주당 4세대는 반항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1980년대 전반기에 태어난 세대는 86세대처럼 정치투쟁에 앞장설 계기도, X세대처럼 문화 유행을 선도할 기회도 갖지 못했었다. 청소년기에 IMF를 겪었고, 등록금 폭등이나 불안정노동 등에 시달리며 ’88만원 세대‘로 호명되었다. 20대 시절 ’개혁도 진보도 민주도 정치도 내 문제는 해결 못하는구나‘ 환멸을 가진 사람이 많다. 2000년대 중반 이들은 ’극도로 탈정치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세대‘로 평가받았었다. 
 
지금은 민주당 고정 지지층의 꼬리칸에서 이 세대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첫 투표권을 얻는 스무살 무렵보다 취업이나 양육이 시작되는 서른 즈음에,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불만과 요구가 생겨나고 정치에 더 깊이 접속하는 경향이 있다. 마침 이 세대가 30대로 접어들던 시절에는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2008),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2009), 나꼼수 열풍(2011), 세월호 참사(2014) 등이 이어졌다. 
 
1980년대생은 앞선 세대보다 덜 관념적이었고 ‘생활정치’를 일구기에 알맞은 감각도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나라당(새누리당)은 부조리한 기득권/우리는 개혁파‘라는 서사에 빨려 들어가는 사람이 속출했다. 서열도 나이도 어중간했다. 앞줄엔 선배세대가 꽉 차 있어서 주도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서른이 넘고 나니 신세대적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힘겨웠다(이전 세대들도 20대 때 주목받았었다). 
 
물론 같은 세대 안에도 다양한 생각이 있고, 그 세대 민주당 지지층에도 여러 빛깔이 있다. 지난 제20대 대선에서 기권함으로써 민주당을 심판하는 동시에 국민의힘을 끝끝내 거부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하필 그중 가장 순응적인 사람들이 민주당의 4세대를 형성했다. 김남국 의원은 기득권세력에 맞서 싸우거나 박해받는 사람과 함께하는 데서 빛을 발했던 사람이 아니다. 자신과 노선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 공손히 눌러앉아, 그들을 거듭 흡족케 함으로써 ‘강성 지지층 코인‘을 받아왔을 뿐이다. 
 
오늘의 청년들은 민주당을 기득권의 한 축으로 인식하고 있다. 민주당 4세대는 이런 괴리는 등한시한 채 ‘어른’들에게 잘보이기 급급했다. 그리고 김남국 의원은 그간 ’자수성가‘를 연기했음이 드러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윗세대나 동년배보다 아랫세대에게 훨씬 사랑받는 정치인들이었다. 흠결도 있었지만, 후세에게 더 청렴한 세상을 물려주는 데 이바지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3대가 지나면 타락하기 마련인가. 아직도 “국민의힘은 대대로 잘만 누리던데”라고 입을 삐죽이고 있는가. 그런 말을 반복한다면 머지 않아 민주당의 대는 끊어질 것이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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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순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