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수의 한국철학사 11화)'금강삼매경'은 신라 찬술 경전이다
입력 : 2023-05-22 06:00:00 수정 : 2023-05-22 06:00:00
이번 연재글부터 세 번에 걸쳐서 신라 찬술 경전인 《금강삼매경》의 핵심 내용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금강삼매경》은 어떤 경전인가
《금강삼매경》은 1만1250자로 이루어진 길지 않은 경전입니다. 흔히 노자의 《도덕경》이 5000자로 이루어진 적은 분량의 책이라고 하는데, 《금강삼매경》은 1만자 남짓이니 《도덕경》 두 권 정도의 많지 않은 분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삼매경》의 내용은 부처님이 수많은 사부대중과 함께 있으면서 아가타, 해탈보살, 심왕보살, 무주보살, 대력보살, 사리불, 범행장자, 지장보살, 아난 등 여러 제자들과 함께 차례대로 깨달음과 수행 방법에 관해 문답을 나눈 것을 기록한 형식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금강삼매(金剛三昧)’에서 ‘금강’이란 어떤 물질도 깨뜨리거나 뚫고 들어가지 못함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물질을 가리키며, ‘금강삼매’란 어떤 삼매도 남김없이 다 깨뜨릴 수 있는 가장 굳건한 삼매의 경지를 말합니다. 원효는 이 경전의 제목을 풀이하면서, “모든 삼매가 다 스스로 갖춘 본성[자성(自性)]이 없음을 깨달아서 저 삼매로 하여금 스스로의 집착을 떠날 수 있도록 하여, 이 때문에 아무런 걸림이 없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달제삼매개무자성(達諸三昧皆無自性), 영피삼매개리자착(令彼三昧皆離自著), 유시무애(由是無?), 득자재고(得自在故)。]”[《金剛三昧經論》, 45쪽.)]라고 했습니다. 요컨대, ‘금강삼매’란, 불제자들이 어떤 삼매에도 집착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자기가 얻은 어떤 성취에도 머물거나 집착하지 않도록 남김없이 깨뜨려주는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반, 삼매, 참선, 부처 등 자기가 어떤 경지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아상(我相, 자기에게 실질적인 무엇이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자 ‘집착’일 수 있으며, 어떤 것에도 집착함이 없어야 비로소 깨달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금강삼매경》에 대해 강론중인 원효 스님(평택 수도사의 부조 ‘원효성사 팔상도’중에서). 사진=필자 제공
 
이렇게 볼 때, ‘금강삼매’는 원효가 얻은 깨달음의 가장 중요한 내용인 ‘화쟁(和諍)’과도 의미가 통합니다. 원효가 말하는 ‘화쟁’이란, 부처님의 가르침과 깨달음은 오로지 ‘하나의 맛[일미(一味)]’과 ‘한 마음[일심(一心)]’으로 통하므로, 자기가 받아들인 것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모든 종파의 분파적 가르침은 진리의 한 모퉁이일 뿐이므로, 서로 다툴 필요가 없이 “깨달음은 하나”라고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포섭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금강삼매’ 또한, 불제자들이 각종 삼매에 들어 자기가 얻은 깨달음을 절대화하고 진리의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데 대하여, 그런 분파적 종파적 깨달음을 모두 깨뜨려버리고, 오로지 하나의 깨달음과 가르침으로 포섭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것도 깨뜨리지 못함이 없는 ‘금강삼매’는 세상의 모든 집착은 물론, 삼매, 참선, 깨달음, 해탈 등 불교에서 가장 높은 가치를 두고 있는 것에조차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며 가차 없이 깨뜨려버리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금강삼매경》은 삼국 통일 이후 모든 차별과 종파와 분열과 집착을 넘어서서, 위대한 통일의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불교적 이상을 담고자 만들어진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만 전해오던 《금강삼매경》의 이름을 빌려, 마침 모든 것을 다 깨뜨릴 수 있는 ‘금강삼매’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는 경전의 이름을 빌려, 그 안에 신라인들이 담고 싶었던, 신라인들이 대승 불교의 최고 경지라고 받아들였던, 새로운 시대를 위한 대중적 민중적 불교의 내용을 담은 것입니다.
 
《금강삼매경》은 중국과 일본의 학자들은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중국 찬술 경전이라고 얘기하는데, 저희들이 볼 때는 신라 찬술 경전입니다. 《금강삼매경》에 유래에 관한 전래설화가 신라 사람들 중심으로 얘기를 전개하고 있고, 《금강삼매경》이 세상에 등장한 뒤에, 곧바로 신라에서는 《금강삼매경론》이라고 하는, 원효스님의 풀이글이 등장했습니다. 중국 찬술 경전이라면 경을 새롭게 만들어낸 세력들이 그 경전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세상에 피력하기 위해서 그 경전과 관련된 저작을 바로 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금강삼매경》이 세상에 나온 지 1천 년이 지난 명나라 때 원징(圓澄)스님의 《금강삼매경주해(金剛三昧經註解)》라는 글이 가장 빨리 나온 《금강삼매경》 관련 저작입니다. 신라에서는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이 세상에 나온 뒤 곧 따라서 원효 스님의 《금강삼매경론》이 나온 것과 비교하면 비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금강삼매경》은 신라 찬술 경전입니다. 《금강삼매경》의 핵심 내용에 대해서는 세상에서 별로 논의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제 연재글에서는 《금강삼매경》의 핵심 내용을 조금 더 상세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금강삼매경》의 핵심 사상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범성불이(凡聖不異)” 사상, 둘째는 “부주열반(不住涅槃)” 사상. 셋째는 “계인연(戒因緣)” 사상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첫 번째인 “범성불이(凡聖不異)” 사상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두 번 더 해서 “부주열반(不住涅槃)” 사상과 “계인연(戒因緣)” 사상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범성불이(凡聖不異): 진골·성골과 육두품의 차이를 뛰어넘어라!
 
첫 번째 “범성불이(凡聖不異)” 사상이라는 것은, “‘범부(凡夫, 중생)’와 ‘성인(聖人, 부처)’이 다르지 않다”라는 뜻입니다. ‘범부’라는 것은 중생(衆生), 뭇사람들,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세속에서 사는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성(聖)’이라는 것은 ‘성인(聖人)’, 불교에서 요구하는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가 된, 성불(成佛)한 사람들, 불교가 생각하는 완벽한 인간상(人間像)에 도달한 사람들을 얘기합니다. 범부와 성인이 같다 라는 사상은, 《금강삼매경》이 곳곳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는 사상입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중생들이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는 사상은, 《금강삼매경》이 등장하기 이전에, 《법화경(法華經)》이나, 《유마힐경(維摩詰經)》이나 《열반경(涅槃經)》이나 《화엄경(華嚴經)》 등의 경전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이런 사상을 유추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금강삼매경》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중생이 곧 본래 깨달음[본각(本覺)]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중생이 범부(凡夫)일 뿐만이 아니라, 깨달은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극언을 합니다 왜 신라 사람들은 새롭게 《금강삼매경》을 찬술하면서, 범성불이(凡聖不異) 사상을 제기하게 된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라사회는 골품제(骨品制)를 엄격하게 따지는, 계급사회였습니다. 골품제란 진골(眞骨), 성골(聖骨) 등의 왕족들이 사회의 요직을 모두 차지하고, 그 이하의 백성들은, 육두품, 오두품, 사두품, 삼두품, 이두품, 일두품으로 엄격하게 신분 질서가 고정돼 있었습니다. 이 신분제 사회에서, 가장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은 진골과 성골 다음 단계인 육두품 사람들이었습니다. 육두품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출가(出家)를 하기도 하고, 사회적인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원효와 많은 출가 승려들이 육두품 출신입니다.
 
《삼국사기》에 보면 육두품 출신이었던 설계두라는 인물의, 열전이 남아 있습니다. 설계두라는 인물은 평소에, 친구들에게 술자리에서 이런 불만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신라사회는 골품제를 신분제를 너무 엄격하게 따져서 육두품들은 재능이 있고, 실력이 있어도 합당한 대우를 못 받는다. 그것이 불만이다. 나는 중화의 나라에 가서 내 실력을 다 발휘해서, 천자의 측근으로 행사하면 원이 풀리겠다.”
 
육두품 출신이었던 설계두(한국 드라마 <대조영>에서 설계두로 분장한 배우). 사진=필자 제공
 
이런 말을 자주 하고 다녔다고 적혀 있습니다. 실제로 설계두는 당나라로 밀항을 해서 넘어가서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할 때, 선봉에 서서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그가 전사하자 당 태종은 당나라 사람도 아닌 신라 사람이 전투에 참가해서 죽은 것을 기이하게 여기면서, 어의(御衣)를 벗어서, 설계두를 감싸주었다고,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어의(御衣)’라는 것은 천자와 왕의 옷을 얘기합니다. 당태종은 설계두를 ‘대장군’으로 추존시켜주었습니다. 죽은 뒤에 계급을 올려주는 거죠. 이런 일화가 나와 있을 정도로 골품제의 경직성은 삼국통일 이후에 신라가 극복해야 될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였습니다. 골품제의 경직성을 넘어서야 사회적 통합도 이룩할 수 있고 삼국의 통합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진골 성골과 육두품과의 차이에 비하면, 성불(成佛)한 사람과 중생(衆生)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강삼매경》에서 하늘과 땅 차이인 부처와 중생도 다를 게 없는데 진골·성골과 육두품의 차이는 뭐 대단한 거냐! 이걸 뛰어넘어야 된다. 라는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살포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라 찬술 경전인 《금강삼매경》에서 “범성불이(凡聖不異)” 사상을 제시했기 때문에, 우리 해동에서는 조선 말기에 등장했던 동학(東學)에서 “사람이 곧 하늘이다” 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이 성숙되어서 나올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은 《금강삼매경》의 핵심 사상 세 가지 중에서 첫 번째인 “범성불이(凡聖不異)” 사상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두 번에 이어서 《금강삼매경》의 핵심 사상인 “부주열반(不住涅槃)” 사상과 “계인연(戒因緣)” 사상에 대해 이어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금강삼매경》이 세상에 나온 지 1000년이 지난 뒤에야 세상에 나온 명나라 때 원징(圓澄)스님의 《금강삼매경주해(金剛三昧經註解)》 표지. 사진=필자 제공
 
■ 필자 소개 / 이상수 / 철학자·자유기고가
2003년 연세대학교 철학 박사(중국철학 전공), 1990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 2003~2006년 베이징 주재 중국특파원 역임, 2014~2018년 서울시교육청 대변인 역임, 2018~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대변인 역임. 지금은 중국과 한국 고전을 강독하고 강의하고 이 내용들을 글로 옮겨쓰는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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