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두 번 울리는 기업들…‘채무부존재확인소송’ 무기화
입력 : 2023-05-30 16:34:40 수정 : 2023-05-30 18:12:23
 
 
[뉴스토마토 최우석 법률전문기자] #A씨는 가족과 함께 오리고기를 먹기 위해 마트에서 팩으로 포장된 ‘오리훈제’를 구입했습니다. A씨는 대기업에서 유통하는 제품이라 더욱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 A씨와 A씨 가족들은 제품을 먹고 구토를 했습니다.  A씨는 오리훈제가 상한 것이라 추측했습니다.
 
음식을 먹고 난 이후에 구토를 했다고 판매회사 홈페이지에 제품에 대해 신고했습니다. 이에 기업은 제품을 만든 제조사에서 A씨와 A씨 가족을 상대로 제품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구하는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B씨는 휴일 가족과 함께 프랜차이즈 카페에 갔다가 B씨의 3살 자녀가 흔들그네 의자에서 넘어져 다쳤습니다. 이에 B씨는 업체 측에 안전조치를 철저히 못 한 업체의 잘못도 있다며 치료비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프랜차이즈 본사는 B씨 3살 자녀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사진 제공=뉴시스>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 소비자 울리는 기업들
 
소비자들은 기업이 제조한 식품을 먹고 배탈이 나거나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서비스를 이용하다 다쳐 해당 기업에 피해보상이나 배상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러한 사고에서 '악성'이 아닌 대다수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보상은 치료비 정도의 금액입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최근 치료비 보상·배상을 요구하는 소비자들에 대해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적극 제기하고 있습니다. 소비자가 판매측에 피해보상 얘기를 꺼냈다가 온 가족이 소송을 당하는 겁니다. 어린이들도 예외가 없습니다.
 
기업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은 채권채무관계의 당사자 사이에 채권의 존재 여부에 다툼이 있는 경우 당사자 일방이 법원에 해당 채무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말합니다. 
 
다만,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은 보충성, 즉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이라고 할 때 제기가 가능합니다.
 
기업들이 소비자들을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하는 것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채무부존재소송을 제기하면 소송에 문외한인 소비자들에게 심리적, 경제적, 법적 부담을 가해 기업이 주는 보상·배상안을 따르라는 압박용으로 사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자본력과 조직으로 무장한 기업들이 소비자들을 상대로 채무부존재소송을 제기하면 소송대응 능력이 부족한 소비자에게 법적 대응 부담을 주면서, 변호사 선임비용과 패소시 소송비용부담을 느끼게 해 소비자의 보상·배상 요구를 포기하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이거나 소송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고령의 소비자들에게는 쉽게 승소판결을 받을 수 있고, 소송비용 청구도 가능합니다.
 
소비자들은 피해보상을 단순히 요구했을 뿐 소송까지는 할 생각이 없었는데 기업에 의해 강제로 소송당사자가 돼 소송비용까지 물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습니다.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행사에 따른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고 얘기합니다.
 
A씨는 “오리 먹고 배탈이 난 것에 대해 제조나 유통과정에서 상했을 수 있기에 치료비를 요구했을 뿐인데 자신을 포함해 가족들이 소송에 걸려 걱정도 되고 화가 나기도 한다”고 하소연했습니다.
 
B씨 또한 “치료비를 요구했다고 3살 아이를 당사자로 소송을 거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면서 “말 한마디 했다고 치료비도 못받고, 자칫하면 기업 측 변호사비용까지 물어주게 됐다”고 말합니다.
 
유행처럼 번지는 기업들의 '채무부존재확인소송' 무기화
 
기업들의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의 남발로 소비자들은 기업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다 피해를 입어 한번 울고, 보상 요구 했다가 송사에 휘말리게 되어 두 번 울게 되는 실정입니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계약당사자들 사이에서 계약상의 채무의 존부나 범위에 관해 다툼이 있으면 확인소송의 확인의 이익이 있다고 판시하여 소송을 받아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약당사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계약상 채무 존부나 범위와 관련한 다툼이 아닌 기업의 과실로 인한 피해의 경우에는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의 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즉, 확인의 소송에서 확인의 이익이 요구되는 이유는 국민에게 재판청구권을 인정하면서도 남소(소송 남발)를 억제해 재판제도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분쟁해결수단으로 자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불법행위채권은 3년의 단기 소멸시효 적용이 있고, 소비자들의 치료비 청구금액이 다소 소액인 점을 감안하면 기업의 이러한 채무부존재확인소송에는 확인의 이익이 없다는 견해입니다. 
 
소비자가 채무부존재확인소송과 관련, 추가로 수고와 비용을 들이는 것은 기업의 물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예정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기업이 선제적으로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초래되는 일련의 결과는 기업에게는 별다른 이익이 없는 반면 소비자에게는 무척 불리하게 되는데 형평에도 반합니다.
 
최근 자금과 조직력을 앞세운 기업들의 소비자들에 대한 소송만능주의적 태도가 앞으로 법원에서 어떠한 판단을 받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대법원 전경<사진 제공=뉴시스>
 
 
최우석 법률전문기자 wscho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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