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정부 발표 후 수 개월째 국회서 표류하고 있던 '1기 신도시 특볍법'이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심의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특별법은 1기 신도시인 분당, 평촌, 일산, 중동, 산본 등을 비롯한 노후계획도시의 정비 사업을 좀 더 의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사실상 ‘1기 신도시 특별법’으로 볼 수 있는데요.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나 타당성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직 많은 의견이 상존하고 있고 다른 지역의 형평성 문제도 있어 보다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7일(수) 토마토Pick에서는 1기 신도시 특별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이란?
1기 신도시 특별법이라 불리지만 정확한 명칭은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입니다.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합니다. 이번 특별법의 핵심은 법이 허용하는 용적률 이상 늘려 공급을 늘리고 각종 규제를 풀어 인허가 속도를 내는 것이 주요 골자입니다. 우선 재건축 시 안전진단을 완화하고, 2종 일반주거지역이 3종 일반주거지역이나 준주거지역으로 상향될 경우 용적률이 300%까지 높아집니다. 역세권 같은 곳은 최대 500%까지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허가 통합 심의로 사업 절차를 단축하고 통합개발을 위해 단일 사업 시행자, 총괄사업 관리자 제도를 도입할 계획입니다.
용적률 500% 가능할까
1기 신도시 특별법이 발의되고 재건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용적률 문제인데요. 용적률은 건물을 얼마나 높게 지을 수 있는지 결정하는 기준으로, 재건축의 사업성을 좌우하는 부분인데 용적률이 높을수록 가구 공급량이 늘고 조합원들의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줄어 사업성이 높다고 판단합니다. 1기 신도시의 용적률 최대 500%까지 상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아파트가 모여 있는 신도시에서 주거지를 고밀도로 개발하면 '닭장 아파트'가 쏟아지기 때문입니다. 늘어난 인구를 수용할 수 없어 교통난, 일조권 침해 등 각종 문제가 불거질 우려가 높아지는 이유죠. 이미 아파트가 빼곡한 신도시의 용적률을 300% 이상으로 높여 고밀개발하면 공원, 학교, 도로 등 기반시설 관련 판을 새롭게 짜야 하는데, 그만큼 여유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통상 용적률 300%는 아파트 35층, 500%는 50층까지 지을 수 있습니다. 1기 신도시는 1종에서 3종 일반주거지역에 건설됐습니다. 현행 국토계획법상 일반주거지역 최대 허용 용적률은 1종 200%, 2종 250%, 3종 300% 이고 준주거지역은 500% 입니다. 용적률 500%를 적용시키려면 현재 1종에서 3종인 1기 신도시의 주거지역을 모두 준주거지역으로 상향 조정해야만 가능합니다. 그동안 1기 신도시 개발이 불가능했던 것도 용적률 때문이었습니다. 1기 신도시 용적률은 일산(169%), 분당(184%), 평촌(204%), 산본(205%), 중동(226%)로, 대부분 용적률 법정 상한선은 300%에 근접합니다. 재건축을 추진해도 용적률 여유분이 부족해 사업성이 낮다는 평가입니다.
'노후계획도시' 범위는?
특별법에서 '노후계획도시'는 택지조성사업 완료 이후 20년 이상 경과한 100만㎡ 이상의 택지 규모로 확대했습니다. 100만㎡라면 수도권 행정 동 규모에 해당하며, 인구 2만5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주택 1만 채 규모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통상적인 재건축 연한인 30년에서 20년 이상으로 기준을 변경해 도시 노후화 이전에 체계적인 계획수립과 대응이 가능토록 한 것이죠. 또 택지지구를 분할 개발해 하나의 택지지구가 100만㎡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인접하거나 연접한 2개 이상 택지 면적의 합이 100만㎡ 이상이거나 동일한 생활권을 구성하는 연접 노후 구도심이어도 가능합니다. 서울에도 노후 아파트가 넘쳐나는데 1기 신도시에만 특혜를 준다거나, 지방 균형 발전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고려한 조치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전국의 택지지구 내 20년차 이상 아파트라면 이번 특별법을 적용, 재건축 사업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이 기준에 따라 1기 신도시뿐 아니라 전국 49개 택지지구가 특별법을 적용받습니다. 서울에선 목동, 상계, 중계, 개포, 고덕, 신내, 수서지구 등이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서울 외 수도권에선 인천 연수, 안양 포일, 수원 영통지구 등이 대상입니다. 지방에선 대전 둔산·노은, 광주 상무, 부산 해운대, 대구 성서지구 등이 포함됩니다.
리모델링, 가구수 21% 증가 허용
이에 정부가 1기 신도시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에 가구 수를 최대 21% 늘릴 수 있는 특례를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앞서 정부는 리모델링으로 늘릴 수 있는 가구 수를 기존의 최대 15%에서 20% 안팎까지 높여주겠다고 밝혔는데, 구체적 수치가 나온 건 처음입니다. 정부는 제정 절차가 조만간 마무리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세대 수 증가 특례가 구체적으로 제시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리모델링을 추진해 온 1기 신도시 단지들의 혼란은 여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4일 국토교통부는 리모델링 사업을 할 경우 증가 세대 수 상한을 현행 기준의 140% 완화하는 특례를 주자는 안을 국회에 제시했습니다. 현행 주택법에 따른 리모델링 사업 시 15%(세대 수 증가형) 이내에서 세대 수를 늘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정부 완화안을 적용하면 21%까지 세대 수를 증가시킬 수 있게 됩니다.
재건축 쉽고 빠르게…간소화
특별법을 적용 받으면 재건축 최대 걸림돌이던 안전진단 문턱도 사실상 사라집니다. 노후계획도시 특별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재건축을 진행하면 파격적 인센티브를 부여하는데 먼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합니다. 대규모 광역교통시설같은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등 공공성을 확보하는 경우에는 아예 안전진단을 면제해줍니다. 또 노후계획도시 특별정비구역을 '입지규제최소구역'으로 지정해 고밀·복합개발이 가능하게 한다는 취지입니다. 이와 함께 모든 정비사업에는 통합 심의 절차를 적용해 사업에 속도를 내기로 했습니다. 개별사업법에서 정하는 각종 인·허가 심의 등을 통합해 처리하도록 절차를 간소하고 각 지자체 '통합심의위원회'에서 심의절차를 완료할 경우 개별법에 따른 위원회 심의를 모두 마친 것으로 규정했습니다. 또 지자체는 이주대책 수립을 주도하고, 이주대책사업시행자를 지정해 이주단지 조성과 주민들이 재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순차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순환형 주택 공급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 국토부는 동시다발적인 정비 사업이 이뤄져 대규모 이주 수요와 시장 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본방침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1기 신도시란?
노태우 정부 시절 추진한 '200만가구 건설' 계획 중 하나로 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로 당시 ‘꿈의 신도시’라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1989년 4월 노태우 정부는 폭등하는 집값을 안정시키고 수도권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5곳에 계획도시를 조성합니다. 1989년 말 착공해 1996년 입주가 완료됐는데 성남시 분당(9만 7580호)·고양시 일산(6만 9000호)·부천시 중동(4만 1422호)·안양시 평촌(4만 2047호)·군포시 산본(4만 2500호)에 조성돼 총 117만명이 거주하는 29만2000가구의 대단위 주거타운으로 탄생했습니다. 1기신도시는 주택시장 안정화, 경기 활성화, 기반시설 공급 측면에서 성공한 도시개발의 대명사로 통합니다. 폭등하던 서울 아파트값은 1기신도시가 입주를 시작한 1991년 이후 안정세로 돌아섰고 주택 보급률도 1990년 63%에서 1997년 82%까지 높아졌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아파트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는 2026년이면 모든 단지가 입주 30년을 넘기게 됩니다. 재건축 연한이 도래한 거죠.
국회서 겨우 첫발 떼다
처리가 시급했던 전세사기 피해자 특별법에 밀려 국회 문턱에 오르지도 못했던 ‘1기 신도시 특볍법’이 마침내 국회에서 첫발을 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1기 신도시 특별법은 2개월 넘게 국회에서 계류 중이었습니다. 지난달 30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국토법안심사소위를 열고 1기 신도시 등 노후 신도시 정비·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첫 심의를 시작했습니다. 정부·여당안을 비롯해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관련 법안 13건이 일괄 상정됐습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실거주 의무 폐지 및 재건축 부담금 완화 등 시급한 현안을 우선 논의하기로 한 데다 1기 신도시 특별법은 제정법으로 내용이 방대해 단기간 소위 통과는 불투명합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 4일 이날 경기 안양 평촌신도시를 찾아 주민간담회를 열고 "신속하게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와 긴밀히 협력하는 한편, 시행령과 기본방침을 마련하는 후속 작업도 선제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원 장관은 평촌을 끝으로 고양 일산에서 시작한 5개 1기 신도시 순회 방문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특별법 탄력 vs 희망고문
원 장관은 이번 주민간담회에서 "신속하게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시행령 및 기본 방침 마련 등의 후속 작업도 선제적으로 추진해 주민들의 불변이 조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서울시는 즉각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특별법만 통과되면 리모델링보다 재건축을 하는 게 훨씬 사업성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정부가 구체적인 내용도 없고 청사진만 던져 놓은 상태라 오히려 주민 갈등만 증폭되고 있습니다. 1기 신도시 주민들은 아무런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희망고문’ 같은 정부 발표에 리모델링이 추진력을 잃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