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지 않고 살기 힘든 세상..우리 시대 '햄릿' 그릴 것"
명동예술극장 연극 <햄릿>
입력 : 2013-11-18 16:31:31 수정 : 2013-11-18 16:35:28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명동예술극장이 올해 마지막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을 무대에 올린다. 공연 개막을 앞두고 18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는 정보석, 남명렬, 서주희, 김학철, 박완규, 전경수 등 주요 출연진과 연출가 오경택이 모여 <햄릿>에 임하는 각오와 공연의 주요 컨셉트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은 덴마크 왕자 햄릿의 고뇌를 통해 가족과 사회, 국가를 둘러싼 인간의 복잡한 정신세계를 펼쳐 내는 작품이다. 이번 공연은 고전 <햄릿>을 동시대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무대에 올린다.
 
(사진제공=명동예술극장)
 
이날 공연팀은 동시대 관객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적극적으로 현대화 작업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의 대본으로 사용된 것은 <햄릿>의 세 가지 판본 중 첫 번째 판본인 Q1본으로, 정본이 아니라는 의혹을 받기도 하지만 상대적으로 공연성이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대본이다. 공연의 길이도 50% 정도로 과감히 줄였다.
 
연출을 맡은 오경택 연출가는 "잘해야 본전인 작품"이라며 작품에 대한 부담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세기의 명작을 대극장 무대에 올리면서 젊은 연출가 오경택이 생각해낸 해법은 작품을 통해 떠오른 질문에 대한 답을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다. 아들인 햄릿의 불행을 방관하는 어머니 거트루드의 속사정, 햄릿의 연인인 오필리어가 미쳐버린 이유 등 원작에서 분명치 않았던 부분들을 연출가의 해석을 통해 꼼꼼히 채웠다는 설명이다.
 
작품의 화두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되고, 이 질문을 상징하는 공간적 배경인 엘시노어 성은 거울의 파편들로 둘러싸인 곳으로 설정된다. 오 연출가는 "내 눈 앞에 거울이 있다면 '나는 누구냐'라는 질문이 돌아오지 않을까. 미쳐버리지 않고는 살아가기 힘든 세상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 발버둥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다"고 말했다.
  
현대화된 <햄릿>이라는 점 외에 눈길을 끄는 점은 정보석, 남명렬, 김학철, 서주희, 박완규 등 베테랑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는 것이다. 특히 햄릿 역할을 수십 년간 꿈꾸며 매년 적어도 한 번씩은 <햄릿>을 읽어왔다는 배우 정보석은 이 자리에서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정보석은 "아직도 햄릿에 대해 잘 모르겠는데 모르는 게 나의 힘"이라며 "모르겠으니까 이제 젖 먹던 힘까지 쓰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직 한번도 써보지 않았던 모든 힘을 쓰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어떤 연기, 어떤 작품보다 열정은 분명히 묻어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근현대사에 부침이 있던 시기,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는 정보석은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사회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개인의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앞에 나서지 못하고, 가만히 있자니 부끄러워 뒤에서 쫓아다니고, 다시 그 모습에 대해 또 반성하는 식으로 살았다"며 "그게 햄릿의 모습 아닐까 싶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햄릿의 숙부이자 햄릿이 품은 고민의 근원인 왕 클로디어스는 남명렬 배우가 맡는다. 남명렬은 "한 왕가를 몰락시키게 한 인간 욕심의 근원, 욕망을 표현하려 노력 중"이라며 "햄릿의 고뇌를 잘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는 주변 인물이 잘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상력과 더불어 배우 개인의 욕심까지 덧입혀서 이전의 <햄릿>에서 잘 보여주지 않았던 강렬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에 참여하기 전 두달 동안 묵언수행을 하며 배우로서 방황과 침체를 겪었다는 서주희 배우의 각오도 남달랐다. "이 작품을 통해 바닥 상태에 있었던 연극에 대한 애정, 사랑, 관심, 호기심이 치유됐다"는 서 배우는 거트루드 왕비 역할과 관련해 "원작에서 거트루드는 수동적인 피해자 같은 면모를 보이지만 오경택 연출의 작품은 거트루드를 고슴도치 같은 인물로 만들어 낸다. 가시로 위장하고 상대를 찌르는 어머니 거트루드는 이 시대의 잃어버린 모정에 대한 표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밖에 14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르는 폴로니어스 역의 김학철 배우, 햄릿에게 복수를 감행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폴로니어스의 아들이자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즈 역의 박완규 배우,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그려질 오필리어 역의 전경수 배우 등이 함께 하며 인물의 내면을 샅샅이 분해하고 분석해 관객 앞에 선보일 예정이다. 우리 시대의 비극으로 풀어내는 <햄릿>은 내달 4일부터 29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공연 기간 중 부대행사로 7일과 9일, 10일에는 각각 예술가의 대화, <햄릿> 작품 강의, 영화로 엿보는 연극 강의 등이 마련된다(문의 1644-2003, www.MDtheat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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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나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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