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 개선의 길, 곳곳이 ‘지뢰밭’
일본 각료들 야스쿠니 참배…난처한 정부 ‘모순된 논평’
입력 : 2015-08-16 10:39:54 수정 : 2015-08-16 10:39:54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종전 70년 담화를 비교적 긍정 평가한 것은 연내에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양국 관계를 바꿔보겠다는 신호로 풀이된다. 그러나 아베 담화 다음 날 아베 내각의 각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서 보듯 일본 정부의 우경화 행보는 앞으로도 주저함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이 관계 개선을 추진하며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박 대통령은 아베 담화에 아쉬움이 없지 않다고 하면서도 “비록 어려움이 많이 남아 있으나 이제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할 때”라며 담화를 사실상 받아들였다. 이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양국의 위상에 걸맞게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 번영을 위해 함께 공헌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국제사회에 대한 양국의 공헌’을 명분으로 미국이 원하는 한·미·일 3각 협력에 동참하겠다는 뜻이다. 일본과의 갈등 때문에 한·미·일 협력에 적극적이지 못했던 상황을 더는 이어가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울러 중국과 일본이 과거사 갈등과 별도로 정상회담은 이어감에 따라 ‘한국 외톨이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것도 대일관계 개선을 원하는 이유로 분석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사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응답’은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 참배였다. 아베 총리는 이날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총재 특보를 야스쿠니로 보내 공물료를 대신 납부하도록 했다. 하기우다 특보는 아베 총리가 “영령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야스쿠니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는 메시지를 냈다고 밝혔다. 전날 담화에 나온 절충적인 입장은 과거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아베 내각의 각료 3명은 직접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에 소속된 여야 국회의원 66명도 단체로 참배했다.
 
아베 담화를 호의적으로 평가한 한국 정부로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외교부 대변인이 이날 오후 1시에 내놓은 두 편의 논평은 그같은 정부의 입장을 잘 보여줬다. 외교부 대변인은 ‘아베 담화에 대한 논평’에서 “아베 총리가 역대 내각의 역사인식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점에 대해서는 주목하며, 과연 일본 정부가 이러한 입장을 어떻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해 나갈 것인지를 지켜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교부 대변인은 공물료 납부에 관한 별도의 논평에서 “일본의 지도급 인사들이 진지한 성찰과 반성의 자세를 행동으로 보여줄 때만이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엄중히 지적한다”고 말했다. 즉, ‘앞으로의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말과 ‘오늘 지켜보니 잘못된 행동이 있었다’라는 뜻의 말이 같은 형식으로 동시에 발표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대일 관계 개선의 길이 험난할 것임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일본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태도와 비교되는 것도 박근혜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중국 외교부는 신사 참배에 관한 성명에서 “강력한 반대와 강렬한 불만을 표시한다”고 밝혔고, 아베 담화에 대해서는 “군국주의 침략전쟁에 대해 진정한 사과를 하라”고 촉구했다. 아베 담화에서 구체적인 사과를 받은 중국이 이같은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반면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한국이 관계 개선만 우선시할 경우 자칫 여론의 심각한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오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광복 70년 국민 대합창 '나는 대한민국'에 참석해 1945 합창단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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