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청년의 하루
우리가 사는 세상 / 가능 사회
입력 : 2017-02-06 11:50:35 수정 : 2017-02-06 11:50:35
새벽 다섯 시 반. 차주명(24)씨의 하루는 시작 된다. 눈을 뜨기 무섭게 욱신거려오는 허리를 연신 두들기며 온몸 가득 파스를 붙이고 서둘러 집을 나서는 그. 예년보다 따듯한 겨울이라지만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공기는 차갑기 그지없다.
 
사진/바람아시아
 
 몇 번의 버스를 갈아탄 이후, 동대문구에 위치한 빌라 신축공사 현장에 도착한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은 탓에 용인에서 서울까지 한 시간 반 거리의 현장에 일을 나오게 됐다. 매일 새벽 힘겹게 일어나야하는 번거로움이 생기긴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사실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하루 서너 시간씩 버스를 타며 용인과 서울을 오간다. 
 
아침 일곱 시. 현장에서 제공되는 아침을 먹는다. 아파트 신축 공사와 같은 대형 현장에서는 자체적으로 함바집을 운영하지만, 조그만 규모의 현장에서는 인근 식당과의 단기 계약을 통해, 근로자들의 끼니 해결 장소를 마련한다. 작업시작 시간은 여덟시. 그러나 대부분의 근로자들은 주명씨처럼 현장에서 제공되는 아침을 먹기 위해 서둘러 길을 나선다.
 
사진/바람아시아
 
 주명씨는 오늘 파이프 설치 작업을 지시받았다. 이제 막 건물의 뼈대를 세우기 시작한 현장은 늘 추락사고 발생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기에 파이프로 간이 난간을 설치하여 근로자들의 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어느덧 익숙해진 핸드 그라인더를 능숙한 손길로 작동시켜 파이프를 절단하고, 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공구를 사용해 안전대를 설치하는 그에게서 제법 농익은 작업자의 모습이 보인다.
 
 작업을 하던 주명씨는 연신 장갑을 벗고 손을 모아 입김을 불어넣는다. 옷을 잔뜩 껴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설상가상 찬바람이 그의 품을 매섭게 파고든다. 겨울 철 작업을 함에 있어 추위는 가장 큰 애로사항이다. 어깨를 웅크린 채 간간이 현장 곳곳 피워둔 겻불을 찾아가 추위를 달래본다. 동장군을 피해 옹기종기 모인 이들과 함께 불을 쬐며 달달한 인스턴트커피 한잔을 마시고, 시답잖은 농담 한 두 마디를 주고받는다.
 
사진/바람아시아
 
 점심시간을 맞은 식당은 작업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식당 현관을 꽉 채운 먼지 가득한 작업화들이 그들의 고된 오전 일정을 연상케 한다. 육천 원을 넘지 않는 점심 백반은 제법 푸짐하다. 주명씨는 고봉으로 쌓아올린 밥을 한 숟갈 크게 떠 체력을 보충한다. 평소 입이 짧아 가리는 음식이 많았던 그였지만, 현장 일을 시작한 이후 식사량은 크게 늘었다. 육체노동을 함에 있어, 주린 배를 부여잡고 일을 하는 것만큼 처량한 신세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오늘도 그는 묵묵히 다른 작업자들의 대화를 들으며 숟가락을 바삐 놀린다.
 
 점심 식사 이후, 작업장 구석진 곳에서 쪽잠을 청한다. 두툼하고 허름한 스티로폼은 꽤 훌륭한 침대가 된다. 시끄러운 현장 소음에 잠이 깰 법도 하지만, 몰려오는 노곤함에 주명씨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처음에는 어색하여 멀뚱히 계단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점심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새 그 역시 여느 작업자들과 다를 바 없는 현장 생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만 남겨진 오후 잔업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다고 했다.
 
사진/바람아시아
 
 오후 한 시. 다시금 현장 가득 작업자들의 공구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느덧 파이프 작업을 마친 주명씨는 현장 구석에서 톱질을 하고 있었다. 날이 추운 탓에 시멘트가 굳질 않아, 각목과 비닐을 사용해 현장 창문들을 죄다 막아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일정한 크기로 재단 된 각목을 손에 들고, 입에 못을 문채 망치질을 반복하는 그의 목덜미에 어느덧 흐르는 한줄기 땀.
 
 사실 주명씨는 공사현장 노동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늦둥이 외동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아 왔다. 용돈을 타서 썼고, 등록금 역시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해결 했다. 그러나 그는 도통 학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1학년 첫 학기 학사경고를 받았고, 다음 학기 역시 아슬아슬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성적에 맞추어 진학한 학과 수업은 지루했고, 성인이 되며 찾아온 자유는 그에게 새로운 삶의 동기를 부여해주지 못했다.
 
 그러던 도중 찾아온 아버지의 정년퇴임은 그를 많은 생각에 잠기도록 만들었다. 바뀐 환경에 맞추어, 무언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주명씨는 주저 없이 군 입대를 선택했고, 전역과 동시에 현장 일을 시작했다. 제 손으로 등록금을 마련해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젊은 청년의 취지를 기특하게 여긴 현장 소장은 그에게 기꺼이 노동의 기회를 부여했다. 전역 한지 2개월이 채 안 된 주명씨는 그렇게 총을 놓기 무섭게, 이제는 삽자루를 쥐게 되었다.
 
사진/바람아시아
 
 오후 다섯 시. 고된 여덟 시간 노동의 대가로 주명씨는 십만 원이 조금 넘는 하루 일당을 받는다. 돈을 건네받으며 종일 흘린 땀방울의 가치를 새삼 깨우치는 즐거움이 제법 쏠쏠해보였다. 어느덧 통장에 꽤 많은 액수를 모았노라 수줍게 웃는 그의 등에 훈장과도 같은 소금 꽃이 피어있었다. 흙먼지 가득한 현장의 흔적을 찬물로 씻어 내는 주명씨의 어깨 너머 다시 찾아온 초저녁의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올 겨울이 다 지나가기 전에 동록금을 마련해, 다가올 봄이면 다시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주명씨. 음향 시설에 관심이 많아 졸업 이후 독일 유명 음향기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다던 그의 미래,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거친 현장을 누비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정직한 노동을 응원한다.
 
*대한민국 아르바이트 인구는 약 500만명으로 추산된다. 국민 10명 중 1명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안전보건공단. 2014) 대학생에게도 예외는 없다. 아르바이트를 경험한 대학생 인구는 약 54만 명이며, 이는 30세 미만의 대학 재·휴학생 253만 명 가운데 21.3%에 이르는 수치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2011) 또한, 4년제 대학 1,78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7.8%에 달하는 이들이 ‘최근 1년간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한 적이 있다’고 답하였다.(출처: 한국직업능력 개발원. 2013) 
 
 
김태경 바람저널리스트  baram.news  T  F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news)에 함께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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