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기획)①용산, 도시재생 바람타고 부활 날개짓
디지털대장간 등 연이어 개점 주목
기존 인프라와 결합해 산업 생태계 활성화 기대
입력 : 2017-08-16 06:00:00 수정 : 2017-08-16 06:00:00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지금의 IT강국을 만든 PC 열풍이 바로 용산전자상가에서 시작했다.
 
1987년 전자산업 육성을 목표로 만들어진 용산전자상가는 한때 4010개 업체가 입주하며 PC 유통의 메카로 자리잡았으며, ‘한글과 컴퓨터’ 신화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컴퓨터와 주변기기 및 관련제품은 물론 통신장비, 전원장비, 카메라, 비디오 등 각종 가전과 반도체, 소프트웨어 등 전자와 관련된 모든 제품을 다루는 명실상부 동양 최대의 전자상가로 발전했다.
 
당시 용산전자상가는 누구보다 전자산업에 해박한 상인과 전문가들이 만나면서 유통왕국에 그치지 않고 TV수신카드, PC공유기 등을 개발해내며 이미 제조 융합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새로운 기술과 상품은 용산전자상가에서 먼저 선보였으며, 다양한 서브컬처 문화를 만들어 유통시키기도 했다.
 
어쩌면 용산전자상가는 대한민국 최초의 테스트베드(Testbed)였다.
 
그리고 30년, 다시 용산전자상가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이 용산전자상가를 찾아 이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면서 미래를 현실로 만들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사이 디지털대장간, 글로벌창업센터, 패스트ICT센터, 무한창의협력공간 등이 들어서며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생산이 일어나는 곳에서 소비가 가능하다는 점은 여전히 용산전자상가만이 가지는 커다란 장점이다.
 
용산전자랜드 지하에 자리잡은 전자부품 매장들도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의 노하우를 갖고 언제든지 부품을 뒷받침할 준비가 돼 있다.
 
전자랜드 지하 조광전자의 탁남규 대표는 “예전만한 영광은 아니어도 여전히 많은 상인들은 다시 생산에 뛰어들 준비가 돼 있다”며 “최근 다양한 시도가 있는 만큼 용산에 생산 기능이 다시 살아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용산을 창업의 공간으로, 서울시글로벌창업센터
 
지난해 8월 나진전자상가 14동 3~4층에 문을 연 서울시 글로벌창업센터는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스타트업 성장을 돕고자 만들어졌다.
 
창업준비생부터 초기창업자까지 모두 대상으로 하며, 내국인도 팀원 중 외국인이 포함된 경우 지원 가능하다.
 
기존에 외국인을 대상으로한 노동상담서비스 제공이나 거주지원서비스는 있었지만, 창업지원서비스는 이색적이다.
 
이는 용산이 갖고 있는 높은 접근성과 재도약을 위한 용산전자상가의 의지 등이 만나 이뤄낸 성과다.
 
인종과 국적에 관계 없이 세계 40여개국에서 온 외국인이 모이는 만큼 공용언어로 영어를 사용해 입주공간 제공, 멘토링 지원, 시드머니 지원, 전문가 및 글로벌 진출 기회 연결 등을 제공하며, 코워킹 스페이스와 커뮤니티 운영은 글로벌창업센터만이 갖고 있는 자랑거리다.
 
지난해 9월부터 지난 3월까지 35팀의 1기 입주기업을 마치고, 지난 5월부터 내년 4월까지 42팀의 2기 입주기업이 프로그램 진행 중이다.
 
참여 입주기업들도 일반적으로 외국인들이 관심 갖기 쉬운 여행·관광에만 머무르지 않고 IT, 교육, 패션, 식음료 등다양한 분야에서 창업에 도전하며 차별화했다.
 
이미 1기 입주기업 주 상당수가 별도 사업장을 갖고 독립하거나 투자유치실적을 올렸으며, 2기 입주기업들도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기 입주기업에 참여했던 굿윌헌팅 , 임퍼펙트, 큐펫, 위즈페이스, 디코, 에피카 등은 각종 창업경진대회와 공모전 등에서 수상하며 외국인 창업자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입증했다.
 
1기 선발 때 6대 1을 기록했던 경쟁률은 2기 선발 당시에는 10대 1까지 치솟았으며, 현재 외국 경제단체나 창업기관, 기업가들로부터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향후 외국인 창업자들을 위한 휴게공간을 보다 확충하고 창업자들간의 커뮤니티 기능도 강화해 창업 프로그램의 질을 높일 예정이다.
 
-메이커 스페이스의 꿈, 디지털대장간
 
창업 붐이 일면서 시제품 제작소에 해당하는 메이커 스페이스도 전국에 수십여 곳으로 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디지털대장간은 규모 면에서나 활성화 정도에서 압도적이다.
 
창업보육공간이 인큐베이팅 기능이라면, 창업과정에서 구상하던 아이디어를 직접 만들어 투자 유치 혹은 시장 출시 직전까지 할 수 있는 메이커 스페이스는 창업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공간이다.
 
나진전자상가 15동 지하 1층에 지난해 6월 자리잡은 디지털대장간은 금속, 목공, 용접, 직물, 디지털 가리지 않고 43종 51가지 장비를 갖췄다.
 
미국의 유명 메이커 스페이스 테크샵의 우수한 운용프로세스를 벤치마킹한 만큼 장비만 많은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갖춰 초보자들도 쉽게 접근 가능하다.
 
디지털대장간은 홈페이지 예약제로 운영되며, 초기 50명에 불과하던 회원 수는 현재 2000명을 넘어섰다.
 
교육 프로그램은 안전한 장비 사용을 위해 각 교육이 기본과정과 심화과정이 서로 연계된 패키지 형태로 진행되며, 5~10명 소규모르 진행되는 강의는 집중도 높게 이뤄진다.
 
교육 프로그램을 마쳐야만 장비를 이용할 수 있는 멤버쉽이 주어지며, 본인이 원하는 장비를 예약해 장비당 3시간까지 사용할 수 있다.
 
장비 중에서는 각종 시제품의 뼈대를 만드는데 유용한 레이저커팅기가 활용도도 높고 안전한 편에 속해 가장 인기가 많다.
 
20대부터 60대까지 남녀 가리지 않고 매일 200여명이 디지털대장간을 찾고 있으며, 취미부터 예비창업자까지 찾는 목적도 다양하다.
 
디지털대장간은 직장인들의 심야·주말 이용을 돕고자 월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화~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한다.
 
디지털대장간 관계자는 “장비 종류나 운영전문성에 있어서 어떤 메이커 스페이스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자부한다”며 “앞으로 대학·중기청 등과의 협력 프로그램도 강화해 용산전자상가에 활력을 불어넣는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시장 변화 맞춰 제품 생산, 패스트ICT제조지원센터
 
디지털대장간이 아이디어의 제품 구현에 초점을 맞췄다면, 디지털대장간과 이웃한 패스트ICT센터는 실질적인 산업의 범주에 해당한다.
 
패스트 ICT란 제품의 주기가 짧고 저가이며 무엇보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제품으로 무선통신보일러, 드론, 작물재배시스템, 차량용 블랙박스 등 기존 제품에 통신과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형태다.
 
대기업 위주의 가전 및 전자제품에 비해 패스트 ICT는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이 도약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불리고 있다.
 
패스트ICT제조지원센터는 패스트 ICT제품의 제조·조립을 위한 마이크로 팩토리를 설치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들이 전자부품의 최대 마켓인 용산전자상가에 판매할 수 있도록 돕는다.
 
패스트ICT제조지원센터에는 전문엔지니어가 상주하면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의 아이디어를 분석해 구체적인 부품을 선정하고 전자회로 설계까지 지원한다.
 
이어 패스트ICT제조지원센터가 갖추고 있는 SMT라인을 통해 실장 과정을 거치면 디자인 직전의 제품이 탄생해 의뢰인 손에 쥐어진다.
 
간단한 보드 기준으로 하루에 1500개 제품 생산이 가능한 마이크로 팩토리를 갖췄으며, SMT라인은 의뢰인 요청에 맞춰 유연하게 변형이 가능하다.
 
올 3월 개소한 이후 다양한 형태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으며, 향후 연차별 장비 확충 계획을 갖고 용산전자상가 일대의 마이크로 팩토리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홍석기 센터장은 “4차산업의 핵심 중 하나가 패스트 ICT와 마이크로 팩토리이며 용산은 생산과 소비가 만나는 최적지”라며 “필요한 전자부품의 90% 이상을 용산전자상가에서 구할 수 있는 만큼 용산전자상가의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랩·멀티공대 등 용산 변화 본격화
 
이같은 변화는 이제 막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용산전자상가 도시재생활성화의 일환으로 기부채납받게 된 원효상가 6동 일부를 활용해 ‘디지털랩(가칭)’과 ‘멀티공대(가칭)’를 조성할 계획이다.
 
디지털랩은 주변의 창의거점시설들을 활성화하고 소통·교류를 촉진하는 공유공간 역할을 하며, 교육공간, 코워킹스페이스, 메이커 스페이스 등이 검토되는 단계다.
 
멀티공대는 전국 공대와 공업특성화 고교의 연구실을 집적해 창조인력이 일하고 놀고 만나는 공간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밖에도 디지털대장간, 글로벌창업센터 등 기존 시설 간의 상승효과를 도모하고 소셜 네트워킹을 구축해 차별화 및 연계방안을 마련하게 된다.
 
진희선 서울시 도시재생본부장은 “용산전자상가 공공공간을 활용해 관계기관 협업을 거쳐 청년창업의 전진기지로 신기술을 체험하고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곳으로 만들 것”이라며 “인재들의 교류공간으로 거듭나게 하고자 창업의 핵심 기반요소인 지역거점 메이커스페이스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용산전자상가에 지난해 문 연 디지털대장간에서 이용자들이 장비 작동법을 배우고 있다. 사진/디지털대장간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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