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중국 헌법 수정을 둘러싼 명분과 의지 조화
입력 : 2018-03-12 06:00:00 수정 : 2018-03-12 06:00:00
중국 양회 기간 헌법 수정을 둘러싼 논란이 진행 중이다. 지난 5일 전국인대 부위원장인 왕천(王晨)은 헌법 수정안 설명에서 21개 부분에 대한 헌법 수정안을 제출할 것임을 밝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논쟁의 초점은 국가주석의 두 번 초과 연속 재임 제한 규정을 삭제하는 것에만 집중되고 있다. 중국공산당 영도를 헌법에 넣는다든지, 지방인대에서도 법규 제정 권한을 갖는다든지, 감찰위원회를 여덟 번째 국가기구로 헌법화 한다든지 등 국가주석 임직 관련 규정 외에 중국 정치생활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일부 내용은 오히려 여론의 관심에서 밀려났다.
 
국가주석 임직 관련 규정 삭제 방안이 주목받는 것은 주석 3연임이 가능하도록 제도화한다는 점 때문이다. 제한 규정 삭제에 따라 시진핑 주석은 2023년 제14기 전국인대 1차회의에서 다시 주석직에 오를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이다. 물론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지만 현재 흐름으로 봐서는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소수의견에 불과하다. 주석직 연임 가능성에 대해 한국인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박 대통령은 삼선개헌을 통해서 장기집권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 주석의 이른바 ‘삼선 개헌’은 한국인에게도 핫이슈가 돼버렸다.
 
당 중앙은 헌법 수정안 초안을 제출하면서 헌법 수정의 필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이 첫번째다. 혁명과 건설의 시대를 지나 현 시기는 혁명, 건설, 개혁의 시대로 변했기 때문에 헌법도 관련 내용을 반영해 수정해야 한단 얘기다. 둘째, 당의 영도를 헌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시대 변화는 당의 영도를 더욱 필요로 하고, 그렇기 때문에 당의 영도를 헌법이라는 국가의 기본법에 넣자는 것이다. 셋째, 변화된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당과 국가기구 개편의 근거를 헌법을 통해서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으로 당 중앙은 21개 수정 의견을 전국인대에 회부하고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헌법 수정안이 국가주석 임직 규정으로만 수렴되면서 사회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마오쩌둥 1인 집권의 폐해라는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는 중국에서 다시 개인 권력이 강화되고, 강화된 권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그 반향은 당의 지배를 기저에서부터 약화시키는 사회적 운동으로까지는 확대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진행되었던 중국의 정치 제도화가 이번 조치로 약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는 당 집권에 대한 동의를 보내던 사람들이 동의를 거둬들이면서 당에 대한 신뢰와 신념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관리가 필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당은 적극적으로 헌법 수정의 당위성을 선전하고 있다. 그리고 헌법 수정에 대한 인민의 의지가 담겨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헌법 수정이 당내 당원들의 명분을 획득하는데 그리고 국가적으로 인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얻어내는데 아직 미약하다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왕천의 설명 그리고 전국인대 각급 대표단 회의에서 참석한 당의 여러 지도자들의 관련 언술에서도 헌법 수정이 필요하다는 당위성만 있을 뿐 ‘왜 지금’ 인지에 대한 설명은 여전히 공허할 뿐이다. 물론 몇몇 고위 지도자들은 이번 헌법 수정은 당의 의지일 뿐만 아니라 인민의 의지를 체현한 것이며 심지어 국가의 의지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그 근거는 여전히 미약하다. 근거가 미약하기에 명분도 쉽게 얻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은 당위성에 대한 선전을 통해서 헌법 수정안을 밀어부치고 있다. 이는 관행과 명분 그리고 의지라는 중국정치의 큰 흐름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중국정치는 오랜 기간 전통정치의 맥락에서 관행을 찾아 그것을 명분으로 정치를 펼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헌법 수정에 대한 관행 역시 기존 경험에 따르면 크게 관례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다. 사실 현 헌법 또한 지난 1982년 반포된 이후 수차례 수정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행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헌법 수정은 관행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관행의 수용이나 변용도 명분이 명확하고 그 명분은 당내 동의 그리고 인민의 지지와 성원에 기초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헌법 수정은 명분의 선전보다는 당위성의 선전 그리고 당의 의지가 매우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관행과 명분, 의지라는 패턴이 부분적으로 불균형의 모습을 보이면서 장기집권할 것이라는 ‘의지’ 부분만 중폭된 측면이 없지 않다.
 
관행과 명분, 의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중국정치는 세 요소의 조화와 중용이 가장 안정된 상태를 구현하는 최선의 모습이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대부분 세 요소의 균형을 위해 노력했다. 개인이나 집단의 의지가 지나치게 정치과정에 반영되는 경우 중용의 미덕은 사라지고 불균형의 정치가 작동하고 심지어 갈등을 유발한다. 마오쩌둥과 마오쩌둥을 둘러싼 일단의 사람들이 저질렀던 역사적 과오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이 세 요소의 완벽한 균형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는 자신과 집단의 의지를 내세우기보다는 동의와 지지 기반을 두텁게 하는 정치적 명분을 획득하기 위한 길에 더욱 눈을 돌려왔다. 헌법 수정을 둘러싼 명분과 의지의 조화에서 당은 명분을 더 풍부하게 획득하기 위해서 당위성으로 치환된 의지의 강조점을 낮출 필요가 있다. 자칫 당의 지배에 대한 신념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헌법 수정을 둘러싼 중국내 분기(分岐)가 심상치 않은 이유기도 하다. 
 
양갑용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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