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골목상권 상생)②'지역협력계획서' 유명무실…현행 등록제, 대형 유통업체에 유리
유통재벌, 업태 바꾸며 시장 침탈 가속화…무력한 규제에 사업조정 잇따라
입력 : 2018-06-27 06:00:00 수정 : 2018-06-27 06:00:00
[뉴스토마토 강명연 기자] 최근 사업조정 신청으로 진통을 겪었던 롯데몰 군산점 사태는 유통산업발전법 규제가 여전히 무력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울렛 개점으로 직접 피해를 입는 지역 패션상인들은 롯데가 군산시에 점포 등록을 신청한 뒤 거치게 돼 있는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참여를 저지당했다. 협의회에는 지역 상인 몫으로 지역의 마트 관계자가 들어가 롯데마트 입점을 저지시켰을 뿐 롯데가 공격적으로 출점을 늘려온 아울렛에는 제대로 손을 쓰지 못했다. 실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의 상인들 구제에는 실패한 것이다.
 
지역협력계획서와 상권영향평가서 역시 부실했다는 지적이다. 롯데가 제시한 5억원 이내의 상권 환경 개선사업은 다른 대규모 점포 입점분쟁에서도 상인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상인들이 요구한 중복 브랜드 제외의 경우 롯데가 관련 내용을 서류에 포함시키긴 했지만 군산 상인이 롯데몰에 입점할 경우 중복 브랜드 산정에서 제외해 실제 효과가 없다는 게 상인들 입장이다. 롯데가 20억원을 출연해 만든 100억원 규모 상생펀드 역시 저금리 대출 지원이지 상인들이 원하는 피해 축소와는 거리가 멀다.
 
무력한 규제에 골목상권이 희생된 상황은 앞서 여러차례 반복됐다. 인구 45만이 거주하는 의정부 상권에는 2012년 신세계백화점 의정부점을 시작으로 2014년 LF스퀘어 양주점, 2016년 롯데아울렛 의정부점이 잇따라 오픈했다. LF스퀘어가 들어설 당시만 해도 지역 상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매출이 반토막났다. 이후 롯데 아울렛이 들어온다고 알려지자 지역 상인들은 오랜 기간 반대 투쟁을 벌였지만 시장 환경 개선 사업 등의 상생안 외에 실질적인 대책안을 얻어내지 못했다. 2012년 문을 연 이천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의 경우 상생안으로 지역 상인 입점을 내걸었지만 과도한 수수료를 버티지 못하고 10명이 넘는 상인이 아울렛을 박차고 나왔다. LF스퀘어 광양점, 현대 아울렛 김포점 다른 곳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준공 후 지역협력계획서 제출…무력한 규제에 골목상권 희생 반복
 
상당수 전문가들은 유통산업발전법에 담겨 있는 출점 규제가 역할을 못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보고 있다. 대규모 점포를 계획하는 경우 우선 지자체에 건축허가를 받고 건물이 준공된 이후에나 점포 등록을 신청하게 된다. 지역협력계획서와 상권영향평가서 제출, 협의회 논의는 영업 시작 전에만 진행되면 되기 때문에 보통 건물이 완성된 뒤에 실행된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중소기업학회장)는 "상권영향평가에서 피해가 크다는 결론이 나오더라도 이미 건물이 올라간 뒤여서 문을 열지 말라고 하기 힘들다"며 "도시계획상 건축허가를 내주기 전에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제출하도록 시기를 앞당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현재의 대규모 점포 등록제를 허가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과거 대규모 점포 허가가 등록으로 바뀐 것은 1997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외환위기 이후 유통산업 지원 차원에서 만들어진 이 법안은 소수의 대형 업체에만 특혜를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공격적인 신규 출점을 이어온 롯데의 경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시행된 2010년 대비 올 3월 기준 아울렛 4개→21개, 롯데슈퍼 300개→1601개, 대형마트 90개→124개로 각각 약 5배, 5.3배, 0.4배가 늘었다. 규제 확대에도 끊임없이 업태를 전환하며 폭발적인 매장 증가세를 보였다.
 
사업조정으로도 출점 막기 어려워…전문가들 "허가제 전환 필요" 주장도
 
다만 이 가운데도 법 개정으로 시행된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확대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같은 규제마저 없었다면 경제구조 내 중위층을 형성하는 소상공인 생태계가 전멸했을 거란 예측까지도 나온다.
 
이밖에 사업조정 제도도 어느 정도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형적인 유통산업발전법 규제가 대·중소 유통기업 상생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환경에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이 보장하는 사업조정 제도가 일정부분 역할을 했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그러나 사업조정 역시 이미 매장 오픈을 코앞에 두고 진행돼 한계에 부딪힌 상태다. 유진기업의 홈센터는 산업용재협회가 사업조정을 신청한 뒤 개점 3년 연기 결정이 내려졌지만 법원이 유진기업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중기부 결정이 무력화됐다. 롯데몰 군산점 역시 롯데가 중기부의 개점 일시 정지 권고를 무시하고 오픈을 강행하면서 롯데에 유리한 국면으로 넘어갔다. 이후 사업조정을 신청한 상인들은 극단적인 충돌을 막고자 사업조정을 철회한 뒤 군산시 주도의 재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영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상인들도 재협상에 큰 기대를 걸지는 않는 상황이다.
 
 
롯데몰 군산점 전경. 사진/롯데쇼핑
 
강명연 기자 unsaid@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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