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곤의 분석과 전망)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국감
입력 : 2018-10-15 06:00:00 수정 : 2018-10-15 06:00:00
지난 주,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국회에 대한 주목도가 평소보단 꽤 높아졌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장에 증인으로 마이크를 잡은 선동렬 국가대표 야구팀 감독과 그를 불러낸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 동물원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된 퓨마가 불쌍하다며 닮은 꼴인 벵골 고양이를 정무위 국감장에 끌고 온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 자신들의 비리 근절을 위한 토론회를 힘으로 제압한 유치원 원장들과 이에 맞서 비리 유치원 전체 명단을 입수해 공개한 교육위 소속 민주당 박용진 의원 등.
 
정치인끼리 혹은 정치인과 비정치인이 서로 대거리를 하는 모습이었지만 결국은 국민들, 여론을 향해 메시지를 내놓고 평가를 받는 과정이었다.
 
이들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제각각 다를 수 있겠지만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발화자가 어떤 메시지를 내고 싶었나, 그 메시지는 적절했으며 잘 준비가 되어있었나, 실제 메시지 전달은 의도대로 되었나 등의 항목으로 따져보자. 이견은 그리 크지 않을 것 같다.
 
먼저 손혜원 의원. 완벽하게 실패했다. 국감 전에 보도 자료와 자료 요구를 통해 KBO와 선동렬 감독을 압박해 들어갈 때만해도 우려하는 사람보단 기대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하지만 정작 국감장에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확히 지적하지도 못하면서 “판공비가 무제한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금메달 대단한 것 아니다”는 등 어이없는 소리를 늘어놓았고 여론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반면 장황한 변명 대신 사실관계 전달에 초점을 준 간명한 답변으로 일관한 선동렬 감독은 동정 여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손 의원은 잘못된 커뮤니케이터로서의 반면교사 역할을 정말 톡톡히 했다. 전문가들과 일반 여론의 공통된 질타가 쏟아진 후에도 불분명한 대상을 두고 ‘적폐’ 운운한 것이다. 손 의원으로 인해 ‘적폐’라는 단어의 사회적, 정치적 의미는 더 희화화됐다. ‘이명박근혜’라는 단어를 안 꺼낸 것이 다행인지 몰라도.
 
전달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상대를 불러냈고 부실한 콘텐츠에 더해 ‘톤 앤 매너’ 는 불쾌했으며 이후 대중의 반응에 전혀 피드백을 하고 있지 않으니 정말 완벽한 실패작이다.
 
김진태 의원. 남북 정상회담 기간에 우리에서 탈출했다가 사살당한 퓨마. 국감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다. 이 역시 여론이 후끈 달아올랐던 사안이었다. 그런데 벵골 고양이는 무슨 상관인가? 김 의원 본인은 “사살된 퓨마랑 비슷한 것을 가져오고 싶었는데”라고 말했다.
 
손 의원 케이스가 앞선 의욕, 부족한 실력, 남 말 안 닫는 닫힌 귀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참사라면 김 의원의 경우는 그냥 ‘아무 생각도 없다. 왜냐하면 아무 생각도 없기 때문에’ 수준의 황당 케이스인 것.
 
청문회 장에서 맞선 것은 아니지만 유치원 원장들과 박용진 의원의 충돌도 흥미롭다. 산전수전 다 겪은 유치원 원장들이 토론회 방해에 나섰을 때의 의도와 전략은 명확했다.
 
“못 볼 꼴 보여 다수 국민들의 욕은 먹겠지만 박 의원에게 ‘실력’을 행사해 시범케이스로 삼아야 다른 국회의원들은 이런 일을 못한다. 비용에 비해 성과가 훨씬 크다”는 것. “우리 전체를 비리집단으로 몰아붙인단 말이냐”를 단골 레퍼토리로 삼고 있는 각종 집단들의 기본 전략이고 이 전략은 거의 성공했었다.
 
하지만 박 의원은 전국 비리 유치원 전체 명단과 사유를 입수해 공개했다. TV 인터뷰를 통해 실태를 설명했고 전체 명단은 방송국 홈페이지에 올려서 일반인의 접근이 용이하게 했다. 대박을 터뜨렸다.
 
똘똘 뭉치기까지 한 기득권 세력에 맞선 정치인들이 적진 않았다. 하지만 용기와 진정성 만큼이나 효율적 수단을 활용한 정치인은 매우 드물었다. 그런데 박 의원은 상대가 감수해야 할 비용을 획기적으로 높여놓았다. 그 수단은 역시 대중과 커뮤니케이션이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taegonyo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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