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갔다’ vs ‘경착륙 없다’…계속되는 반도체 고점 논란
공급자는 한정적, 수요는 4차 산업혁명에 폭발적…"초호황 끝나지만 급격한 하락 전환 없어"
입력 : 2018-10-29 07:00:00 수정 : 2018-10-29 07:00:0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유례없는 초호황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매 분기 실적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SK하이닉스는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 영업이익률 모두 역대 최대 기록을 쏟아내며 쿼드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특히 영업이익률은 56.7%라는 경이로운 수치를 냈다. 오는 31일 실적을 발표하는 삼성전자도 기록 경신이 유력하다. 반도체 부문에서만 약 25조원의 매출과 13조원을 웃도는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3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과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을 합치면 20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역대 최대 실적 기록 소식에도 주가는 연일 출렁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26일 장중 한때 각각 4만400원, 6만2900원까지 떨어지며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삼성전자는 전날과 같은 수준인 4만1000원으로 장을 마감했지만 액면분할 이후 최저가는 벗어나지 못했다. 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 대비 2300원(3.55%) 상승한 6만7000원을 기록했지만, 저가 매입 성격이 강하다. 
 
심상치 않은 양사의 주가 움직임에는 ‘반도체 고점 논란’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모건스탠리가 반도체 경기 고점론에 불을 붙인 이후 올해 들어 골드만삭스, 제이피모건, CLSA 등도 “내년 D램 가격이 두 자릿수 하락세를 나타낼 것”이라며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줄줄이 하향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지난 2년간 지속돼 온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상승이 멈추고 내년부터 업황 하락 주기(사이클)가 시작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여기에 D램 현물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반도체 고점론을 부채질했다. 시장조사기관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현물가격(DDR4 8Gb 기준)은 1월 9.65달러에서 9월 7.2달러까지 하락했다. D램 고정거래가격(DDR4 8Gb 기준)은 9월 8.19달러로 4개월 연속 보합세다. 고정거래가격의 선행지표로 평가되는 현물가격이 올 초반부터 하락세로 전환해 고정거래가격보다 10% 정도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는 만큼 D램 고정거래가격도 곧 비슷한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게 시장의 예측이다. 
 
 
 
그렇다면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정말로 막을 내릴 것인가. D램익스체인지는 최근 보고서에서 내년 D램 가격이 올해보다 15~20% 하락하고, 낸드플래시 가격은 25~30%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 기업이 공개한 수치에서도 업황 둔화 조짐이 포착됐다. SK하이닉스의 3분기 실적자료에 따르면 D램 가격 상승세는 멈췄고 낸드플래시 가격은 2분기부터 하락이 시작됐다. 3분기 낸드플래시 평균판매가격은 전분기 대비 10% 하락했고 D램은 1% 상승했다. 
 
그럼에도 최고경영자(CEO)들은 “급격한 가격하락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은 반도체 시장 경쟁 상황이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분석이다. 증권가에서는 그동안 반도체 시장이 4~5년을 주기로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사이클을 형성해 왔다는 점을 근거로 반도체 시장의 침체를 예측했다. 하지만 30여년 간의 치열한 치킨게임 이후 10개 기업이 난립했던 D램 시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3곳으로, 낸드플래시 시장은 일본 도시바까지 총 4곳으로 압축됐다. 제조업체들이 과거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들면서 업체들은 무리한 증설을 할 필요 없이 시장 수요에 따라 공급을 조절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삼성전자는 현재 평택 공장 D램 증설 속도를 조절하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청주 M15, 중국 우시 공장의 생산량을 일정 부분 조정할 방침이다. 양사는 내년 D램과 낸드플래시의 비트그로스(비트 단위 생산량 증가율)을 20~40% 수준에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협회 관계자는 “시장 플레이어가 줄어들면서 업체들이 시장 수요에 따라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고 있고, 생산량 증가보다는 미세공정 전환에 따른 생산성 확보에 집중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시장의 패러다임도 이전과는 달라졌다. 4차 산업혁명으로 반도체 수요가 지속적으로 창출되고 있어 반도체 경기가 고점을 찍었다고 해도 곧바로 불황으로 돌아설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과거 PC와 휴대폰이 주도했던 반도체 수요는 올해 들어 데이터센터(IDC)로 이어졌다.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IT 공룡들이 데이터센터 구축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면서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폭증했다. 올해 반도체 매출 중 PC 비중은 20.7%, 모바일은 33.7%이며 나머지 절반은 서버와 그래픽 등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최고운영책임자(사장)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에 모이고, 거기서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돌려서 새로운 응용을 해내고 있다”며 “올해 나타난 반도체 시장의 성장은 데이터의 폭발적인 성장과 그에 따른 데이터센터의 증가가 견인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잠깐의 가격 조정 이후 반도체 수요가 다시 상승 곡선을 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로봇과 AI 기술이 상용화되고 5년 안에 자율주행차 시장이 열리면 반도체 시장이 또 한 번의 호황을 맞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낸드플래시 시장 규모는 지난해 538억달러에서 올해 592억달러로 증가하며, 오는 2021년에도 500억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D램 시장 규모는 내년에는 올해보다 1.8%, 2020년에는 2.6% 감소하지만 2025년에 다시 호황을 맞을 것으로 예측됐다. 업계 관계자는 “메모리반도체 가격이 워낙 오른 탓에 고객들이 단기 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면서 “데이터센터 사업의 거시적인 상황, 즉 클라우드·인공지능(AI) 전환율이나 워크로드 등을 감안하면 중장기적인 상승세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왕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