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2018년은 '정치 부도'의 해
입력 : 2018-12-18 06:00:00 수정 : 2018-12-18 06:00:00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해마다 12월이 되면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런 시기가 찾아왔다. 2018년은 어떤 해로 기억될까. 연말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는 영화 중 시선을 끄는 작품은 1997년 외환위기 사태를 조명한 ‘국가 부도의 날’이다. 연기자들의 열연과 함께 국가 위기 상황을 다루는 치밀한 극 전개로 호평을 받고 있다. 오락영화의 흥행 공식을 갖춘 영화는 아니지만 요즘 우리 현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탓인지 극장으로 관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 영화는 극 중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는 이유가 내용의 사실 여부를 따지기 위한 시도에 있지 않다. 오히려 1997년으로 되돌아가 당시 상황을 따져 보면 정치와 지도자들이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20여 년 전 ‘국가 부도의 날’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제대로 대비한 국민들은 없었다. 왜냐하면 소시민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바빴을 뿐 정부가 외환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알지 못했다.
 
2018년 새해는 매우 활기차게 시작되었다. 4년마다 열리는 평창올림픽을 개최하는 해였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6월 실시예정이었다. 문재인정부 2년차를 맞아 각종 개혁과제가 야심차게 진행되는 한 해로 우리 국민들은 기대감에 부풀었다. 연말쯤이면 각종 경제 지표가 좋아져 가계의 주름살이 펴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국민들을 위협해 온 각종 안전사고와 흉악 범죄는 근절되어 웃고 또 웃으며 매일매일 행복할 추억을 채워갈 기대로 가득 찼다. 리서치앤리서치가 세계일보의 의뢰를 받아 2018년 신년특집조사로 실시한 조사(2017년 12월27~28일 실시, 전국1007명, 유무선RDD전화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10.3%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 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2018년 새해에 가장 역점을 둬야 할 분야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적폐 청산 등 개혁 작업’이 20.7%, ‘일자리 창출’이 19.2%, ‘경제 성장’ 18.6%, ‘북핵 문제 해결 등 한반도 정책’ 16.6%, ‘국민안전’이 14.5%였다. 국민들이 소망했던 2018년 과제를 정부와 정치권은 얼마나 해결했을까.
 
2018년의 문을 연 이슈는 남북관계였다. 평창올림픽은 ‘평양올림픽’이라는 정치적 공방이 나올 정도로 남북관계가 단연 화제였다.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꼬여가던 남북관계는 평창올림픽에 북한 사절단이 참여하면서 급진전했다. 북한 공연단장인 현송월과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은 우리 국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물로 주목받았다. 평창올림픽 이후 판문점 정상회담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북한 김 위원장에 대한 이미지는 크게 개선되었고 대통령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북미정상회담과 평양정상회담으로 이어진 남북관계는 지난 9월말까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상태였다. 그러나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연기되고 김 위원장의 답방은 해를 넘길 모양이다. 남북관계의 중심축인 핵 폐기와 핵 사찰은 교착상태다. 이 와중에 정치권은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관련 날 선 공방만 되풀이했다. 남북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국회의 역할과 책임은 잘 보이지 않았다.
 
지난 6월 지방선거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지만 정작 지방선거에 지방은 보이지 않았다. 전반적인 경기 침체 상황에서 지방경제는 더 곤궁한 처지다. 노동 현장은 최저임금제와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노사 간의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각종 경기 지표 악화와 현장 경기 침체로 자영업층은 IMF외환위기에 가까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평양정상회담 직후 치솟았던 대통령 지지율은 추석 명절을 관통하며 두 달 만에 40%대로 곤두박질쳤다. 국민들은 힘든 현실 속에서 바동거렸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유치원 비리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유치원 3법’은 여야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통과에 진통을 앓고 있다. 국민들의 기대와는 달리 400조가 넘는 내년 예산은 마감 시기를 넘겨 졸속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비난과 비판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거물 정치인들은 쪽지 예산을 강행하는 몰염치로 일관했다.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던 KTX탈선 사고는 고작 낙하산 인사 한 사람을 용퇴시키는 선에서 일단락되는 모습이다. 각종 흉악 범죄는 시민들의 생명을 더 옥죄어 오는 상태임에도 정치권의 혜안은 기대조차 하기 어렵다. 정치권에 대한 무분별한 폄하나 혐오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전에도 우리는 국회와 정부를 굳게 믿었다. 그러나 20여년이 흘렀지만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에 영화를 보며 경악하게 된다. 올해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 이미 제목은 정해졌다. ‘2018년은 정치 부도의 해.’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jcbae@rand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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