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2050)⑪포용국가의 정치혁신과 정부혁신
아젠다 성공의 첫째 조건은 대화와 소통을 통한 '설득의 힘'을 발휘하는 것
분절화와 능률성, 경쟁·시장화·성과주의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는 정부혁신 모색
입력 : 2018-12-24 07:00:00 수정 : 2018-12-24 07:00:00
문재인정부의 아젠다인 '포용국가'는 성공할 수 있을까. 포용국가론이 대통령 프로젝트로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대통령 아젠다 연구의 권위자인 폴 라이트 교수는 대통령직을 '승산 없는 대통령직'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영향력과 효율성을 모두 갖춰야 한다. 불행히도 이는 대통령의 임기에 따라 엇갈리게 움직인다. 임기 초반에는 영향력이 높지만, 전문성이나 정보력 등 효율성은 낮다. 임기 후반에는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지되 경험이 축적되면서 효율성은 높아진다. 미국 대통령제의 숙명은 한국 대통령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87년 민주화 이후 6명의 대통령이 있었지만, 지지율 관리에서 성공한 정부를 찾기 어렵다. 한국 대통령도 승산 없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승산 없는 대통령직'의 숙명과 문재인정부의 3년차
 
폴 라이트는 승산 없는 대통령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아젠다를 만들고 이를 촘촘히 관리해야 한다고 봤다. 집권 3년차 정부는 전문성과 정보, 경험의 축적 등으로 효율성이 상당히 증가한다. 문재인정부도 그에 따라 자신감 넘치게 포용국가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대통령 프로젝트의 수행과정은 쉽지 않다. 우선 야당이 아젠다에 순순히 동의할 리 없다. 2020년 4월 총선이 불과 1년여 남았다. 야당은 협력보다는 정치적 투쟁과 갈등을 선호한다.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을 들고나올 게 뻔하다. 대통령은 영향력 하락세를 늦추고 정국의 이니셔티브를 가질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문재인정부가 아젠다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정부·정치혁신이 필수다. 3년차 정부는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야 하고, 법안과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야당의 협력을 끌어낼 정책 이니셔티브를 가져야 한다. 여야의 협력을 받아 낼 수 있는 정치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이것은 2019년 문재인정부의 가장 중요한 현안 중 하나다. 정치혁신의 방향은 포용국가의 주요 내용을 대통령 아젠다가 아닌 여야가 공동 추진하는 국가 아젠다로 합의해나가는 것이다. 여야 합의로 도출할 수 있는 국가 아젠다는 포용국가의 핵심 내용 중 국민역량 강화와 국가도약 미래투자, 사람중심경제와 사람중심기업 육성, 한반도와 세계 평화번영 추진,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 등이다.
 
문재인정부가 '포용국가'라는 국가 아젠다를 대통령 프로젝트로 완수하고, 아젠다 추진과정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지금과는 다른 정부·정치혁신이 필수다. 사진/픽사베이
 
문제는 이런 합의가 한국정치에서 가능한가다. 아젠다를 제기하는 대통령이 비상한 노력을 하고 지금의 한국정치 문화와 전혀 다른 새로운 혁신을 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앞서 6번의 정부에서 드러나듯 임기 후반부로 갈수록 청와대는 여야 정치권과 시민사회, 노동조합 그리고 국민들로부터 고립된다. 집권 후반부로 가면 집권당에서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미국 대통령도 임기 중반이 되면 지지하는 의회의 의석 수가 줄고 국민 지지율도 떨어진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가 될수록 관료계층마저 정권과 거리를 둔다. 행정부의 대외비 정보들까지 대통령과 반대에 선 정파에 흘러들어 간다. 언론은 대통령 흔들기를 하나의 정치흐름으로 알고 부패스캔들 발굴에 혈안이다. 이런 정치문화를 바꾸지 않고는 포용국가라는 아젠다를 대통령 프로젝트로 성공시키기 쉽지 않다.

포용국가라는 아젠다가 성공하려면 87년 민주화 이후 만성화된 대통령의 영향력 감소를 극복해야 한다. 3년차 정권이 대통령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여야 정치권의 협력과 시민사회의 지지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지금까지 친숙했던 기존 정치문화와 결별해야 한다. 대통령학의 권위자인 미국의 리처드 뉴스타트는 "미국 대통령의 힘은 '설득'에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다. 아젠다 성공의 첫째 조건은  '대화와 소통을 통한 설득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익숙한 정치문화와의 결별…설득의 힘 발휘해야

 
대통령의 설득력을 키우고자 한다면 우선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청와대와 행정부, 의회의 협치수석실로 바꿔야 한다. 그간 정무수석실은 현안을 중심으로 여야 정당대표부가 소통하는 창구로 활용됐다. 그러나 협치수석실은 미국의 의회전담사무소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이 야당의 초선의원들과도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으로 재편돼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 아젠다를 수행하기 위해 입법과 예산 등에서 여야의 누구라도 상시적으로 접촉할 수 있어야 한다.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사진 왼쪽)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며 7일째 단식 중인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방문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또 대통령은 국회 내 여야 중진·원로들을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 대통령 아젠다와 주요 국가 의제에 대해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타게 엘란데르 스웨덴 총리의 사회적 대화는 모범사례다. 엘란데르 총리는 1946년부터 23년간 집권하면서 스웨덴의 경제발전과 복지를 완성했다. 그는 매주 목요일마다 만찬을 열고 재계 주요 인사들과 노조 대표들도 초청, 정치와 경제의 상생을 협의했다. 이 모임은 '목요클럽'이라는 노사정 상생모델로 발전됐다. 포용국가 아젠다를 제시한 문재인정부도 목요클럽처럼 매주 대화채널을 가동, 정치권과 시민사회와 만나야 한다. 이를 통해 포용국가 아젠다의 진행과정을 설명하는 한편 다양한 요구를 듣고 정책에 대한 지지와 협력을 요청할 수 있다. 한국정치에서는 대통령이 초청하면 예의 차원에서라도 특별한 사안이 없는 한 초대에 응한다. 한국형 목요클럽은 잠재적으로 성공 가능성을 갖췄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성공하는 대통령을 위한 필수 요건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참고할 만한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대화를 통해 '비토크라시(Vetocracry)' 상태의 난국을 돌파했다. 남아공은 흑백 분리정책의 위기로 1991~1994년 무정부상태에 빠졌다. 만델라는 각계에서 영향력 있는 22명의 대표들을 모아 발생가능한 미래 시나리오를 토론, 4개의 모델을 설정하고 검증했다. 그리고 만델라와 각계 대표들은 홍학처럼 모든 세력이 연합하자는 '플라밍고 모델'에 합의했다. 한국도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연대의 틀을 만드는 제도적 장치를 모색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의 정치는 '대통령화(Presidentialization)'의 경향을 보인다. 대의 민주주의에 의존하기보다 직접 국민과 대화하는 게 대통령화의 주요 특징이다. 소셜미디어의 보편화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해지고 중요해졌다. 포용국가의 핵심 아젠다가 여야 교착상태로 진척이 없을 때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적극 활용, 국민들과 다양한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유튜브 등의 채널을 통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직접 포용국가 아젠다를 설명하고 지지를 구할 수도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정치는 이런 정치의 주요한 흐름을 포착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지지를 확보했던 '노변정담'이 이제는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까지 진화했다.

대통령 아젠다를 실행할 정부혁신도 요구된다. 30년간 한국 관료제의 운영원리로 기능한 신공공관리론을 넘어 포스트 신공공관리 방식이 대두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는 퇴조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10년여의 시차를 겪고 2016년 촛불혁명을 통해서야 새 국정 패러다임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신공공관리론의 특징인 분절화와 능률성, 경쟁, 시장화, 성과주의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는 정부혁신이 모색돼야 한다.
 
현대 정치에서는 대통령이 대의 민주주의에 의존하기보다 국민들과 직접 소통하는 경향을 보인다.이런 시도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지지를 확보했던 '노변정담'이 이제는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방식으로까지 진화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포스트 신공공관리론'과 정부혁신…'매듭과 느슨함의 결합전략'
 
노태우정부와 김영삼정부에서는 효율성과 시장화를 강조, 작은 정부와 탈규제, 생산성, 민영화, 민간위탁 등을 정부혁신의 담론으로 다뤘다. 김대중정부는 신공공관리론에 따른 공공분야 4개 개혁을 진행했지만, 동시에 생산적 복지개념과 국민기초생활보호 제도를 도입했다. 참여정부는 생산적 복지 개념을 이어받아 2005년에는 사회투자국가 개념을 도입하고 '비전2030' 등을 설계했다. 하지만 정부혁신의 기본 틀은 신공공관리론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는 신공공관리론과 발전국가론을 혼용했다.

문재인정부의 정부혁신은 포스트 신공공관리 방식에 따른 국정운영을 지향한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라는 국정비전이 대표적이다. 포스트 신공공관리의 구체적 이론인 신공공서비스론은 행정에서 민주적 가치와 시민들의 참여를 강조한다. 국가는 시민과 공동체, 시민사회 위주로 운영돼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특히 거버넌스 시스템의 중심에 시민을 둔다. 정부는 사회를 통제하거나 방향을 잡는 게 아니다. 시민들이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즉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포스트 신공공관리 방식을 지향하는 정부혁신에서 청와대와 행정부처 그리고 대통령직속 기구들의 관계도 중요한 현안이다. 포용국가의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운영에는 '매듭과 느슨함의 결합전략(Tight-loose Coupling)'이 필요하다. 청와대는 대통령 아젠다에 집중하고, 대통령은 큰 방향에서 정책 우선순위에 집중해야 한다. 또 씨줄인 대통령직속 기구들과 날줄인 부처를 촘촘하게 관리해야 한다. 직속 기구들의 무력화를 방지하는 동시에 행정부의 부처 이기주의를 극복, 각자의 방향을 잡고 상호협력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를 기능중심으로 개편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현재는 기능중심의 사회수석과 경제수석과 과제중심의 일자리 수석이 혼재됐다. 새 아이디어 생산과 정책 설계를 위해 대통령직속 기구들과 청와대 정책실이 협력하고 역할을 조정하게 하는 것도 정부혁신의 핵심 과제다. 행정부에 대한 청와대의 정책관리를 강화하고 고위공무원단의 직무평가에서 국정가치와의 관련성을 평가하는 것도 정부혁신의 내용이 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3월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제1회 정부혁신 전략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청와대는 국정운영을 매듭전략으로 시작해 느슨함의 전략으로, 다시 매듭전략으로 강약조절을 해야 한다. 첫번째 매듭전략은 명확한 국정방향을 정립하고 국정의 핵심가치와 목표를 행정부가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젠다에 대한 방향 잡기다. 두번째 느슨함의 전략은 정책의 효과적 집행을 위해 부처에 대대적 분권과 위임을 하는 것이다. 공무원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 행정부와 공감하는 게 핵심이다. 세번째 다시 매듭전략은 엄정한 성과평가와 분명한 포상, 책임요구 등으로 매듭과 느슨함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집권 3년차 정부에서 대통령 아젠다인 포용국가는 암초가 많고 물길이 빠른 해협을 지나게 될 것이다. 5년 단임제 정부에서 3년차 국정운영이 중도에 난파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받게 될 것이다. '승산 없는 대통령직'은 미국보다 한국 대통령에 더 적절한 말이다. 성공하는 정부의 뱃길을 가기 위해서는 능력과 천운이 함께하는 유능한 '국정운영술'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 기초는 정치혁신과 정부혁신이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 중이다. 또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공정책분과 위원장으로 국가 미래전략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15회로 연재한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