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2050)⑭포용국가의 삶의 질 10위, 주택정책
한국 '삶의 질', 11개 분야에서 취약·양호가 확연한 불가사리형
주거에 관한 삶의 질 6위…저출산·고령화로 주거정책 변화 불가피
입력 : 2019-02-11 07:00:00 수정 : 2019-02-11 07:00:00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의 목표는 1인당 국민총생산(GDP) 등 경제적 지표에서 '삶의 질(Better Life)' 지수로 옮겨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인당 GDP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최고의 정책목표였다. 1980년대에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시작된 신자유주의적 국정운영에서는 이런 경향이 더 짙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나면서 공적 가치에 따른 통제를 벗어난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이 일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경제적 가치 일변도의 정책목표에 근본적 반성과 성찰이 생겨났다.  

2008년 유엔총회에서 의장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그간 국가 간 삶을 비교하는 데 사용된 1인당 GDP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등에게 대안적 지표를 개발할 것을 요청했다. 스티글리츠 등은 <경제적 성과와 사회적 진보의 측정에 관한 위원회의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핵심은 "GDP가 사람들의 안녕을 적절히 측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소득이 삶의 질이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줄고, 소득 외의 요인이 영향을 주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진단이다.
 
'GDP 한계론'의 대안으로 탄생한 '삶의 질' 지수

 
이런 맥락에서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한 게 '삶의 질' 지수다. 삶의 질 지수의 문제의식은 세 가지다. 첫째는 경제의 집합적 조건이 아닌 가구와 개인을 중심에 놓자. 둘째는 보건의료 지출과 같은 정책 투입이 아니라 안녕의 성과를 중심에 놓자. 셋째는 성과의 격차가 심한 사회를 고려해 안녕의 분포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OECD는 '더 나은 삶을 위한 보다 나은 정책'과 '더 나은 삶의 계획'을 강조하며 2011년부터 매년 <삶을 어떻게?(How’s Life?)>라는 이름의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2017년 제시한 5대 국정목표 가운데 '더불어 잘 사는 경제'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포함했다. 이는 OECD가 지향하는 삶의 질 개선과 관련성이 많다. 사진/뉴시스
 
OECD는 11개 분야에 걸친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를 통해 회원국의 삶의 질 수준을 높이는 공론장을 제공한다. 삶의 질 측정을 위한 지표 등 방법론 정립과 정책 방향의 재설계도 유도한다. 특히 문재인정부는 2017년 제시한 5대 국정목표 가운데 '더불어 잘 사는 경제'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포함했다. 이는 OECD가 지향하는 삶의 질 개선과 관련성이 많다. 지난해 12월 제2차 사회보장기본계획 공청회에서도 삶의 질 지수 순위를 2023년에 20위, 2040년에 10위로 올리는 목표를 설정한 바 있다.

삶의 질 지수는 소득만이 아니라 삶의 다차원적 측면을 반영하고자 물질적 생활조건, 삶의 질, 지속가능성 등 세 가지 측면으로 구성됐다. 물질적 조건에서는 주거와 소득, 노동을 측정한다. 삶의 질은 교육과 공동체, 환경, 시민참여, 건강, 삶의 만족도, 안전, 일과 삶의 조화 등 8개 측정영역으로 구성됐다. 지속가능성은 자연, 인적 자본과 경제·사회적 자본이 포함됐다. 하지만 지속가능성 분야는 아직 구체적으로 지수화하지 않았다.

한국은 삶의 질 11개 분야에서 취약한 영역과 양호한 영역이 확연한 불가사리형이다. 2018년 한국의 삶의 질은 OECD 38개 회원국 중 29위다. 상위권인 북유럽 국가와 중위권 국가들은 대체로 동그라미형이다. 한국의 삶의 질 개선은 순위를 29위에서 10위권으로 높이는 것과 불가사리형을 동그라미형으로 균형 잡히게 하는 과제가 함께 주어졌다.
 
한국, 주거에 관한 삶의 질 종합 6위…주거 관련 지출의 함정

 
이를 위해 OECD 삶의 질 11개 분야에서 한국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우선 이번 기획에서는 '주거'를 살펴본다. 주거는 물질적 삶의 조건에 속한다. OECD는 주거 관련 지출과 기본시설이 없는 거처에 사는 인구비율, 개인당 방의 숫자 등 세 가지 지표로 삶의 질을 측정한다. 주거에 관한 한국의 삶의 질을 종합하면 38개국 중 6위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삶의 질' 지수에서 주거에 관한 한국의 삶의 질을 종합하면 38개 회원국 중 6위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세부 영역의 내용은 흥미롭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한국의 주거 관련 지출이 38개국 중 1위, 즉 지출이 가장 적다고 조사됐다는 점이다. 한국은 소득의 15%를 주거에 지출한다. 2위인 핀란드는 17%다. 한국의 높은 부동산값과 주거난을 생각하면 의외의 결과다. OECD는 임대료와 주택 유지보수에 필요한 비용을 주거 관련 지출로 인식한다. 주택 담보대출 등은 금융소득 분야의 비용으로 계산한다. 서구에서는 월세가 대부분이다. 반면 한국은 자가 주택비율이 높고 전세가 많아 매달 지출하는 비용이 적은 것으로 해석됐다.

대신 한국인이 주택에 지출하는 실제 비용은 금융 등 다른 계정에 숨어 있다. 자가 주택은 대부분은 은행 등에 주택 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산 후 매월 원리금을 상환하고 있는데, 사실상 서구 국가들의 임대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전세의 경우도 주택가격의 60~70%에 달하는 전세금을 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아 집주인에게 예치하고 있다. 전세금의 이자는 매월 은행에 납부하는데, 이것도 실질적으로는 임대료와 똑같은 주거비용 개념이다.

이 내용을 보면 20년 안에 한국의 주거제도가 어떻게 변할지 전망할 수 있다. 주택 담보대출로 자가 주택을 사거나 전세를 활용하는 제도가 확연히 줄고 임대주택이 늘 것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자기 집'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또 부동산 경기부양을 이용한 개발경제 시대를 거치며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경험, 부동산을 보유하는 게 부의 재생산에 가장 유리했다. 그러나 이제 부동산 경기부양에 따른 주택 보유가 가져다주는 실질소득 증가가 예전 같지 않다. 무리한 대출로 주택을 소유하려는 수요는 점점 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높은 부동산값은 30대의 소득과 담보대출 능력 밖이다. 결혼적령기 연령층에서는 자가 주택 구입을 포기하는 상황이다. 초기 비용부담이 큰 자가 주택이나 전세 대신 임대주택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임대주택이 늘고 임대료를 내는 제도가 정착되면 한국은 OECD의 주거 관련 지출 순위에서 10위권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삶의 질 지수' 가운데 주거에 관한 삶의 질에서 한국은 주거 관련 지출이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는 주택 담보대출 등으로 인한 비용부담이 생략돼 집계된 탓이다. 사진/뉴시스

저출산·고령화 인구구조 변화와 주거정책 변화
 

장래 주거정책에서 심각하게 고려할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인구구조의 변화다. 한국의 총인구는 2026년 5188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급감할 전망이다. 2062년에는 인구가 3000만명대에 진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15~64세까지 생산가능 인구는 2017년 3763만명을 정점으로 해 2065년 1728만명까지 절반이나 줄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고령화는 급속히 진행, 2065년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48.5%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다.

또 지방과 농촌의 공동화도 주목된다. 2015년 서울과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 대도시에서 인구가 0.4% 정도 준 것으로 나타났는데, 2045년에는 수도·충청권 인구가 정체되고 다른 지역에서는 0.1~0.4%의 감소가 예상된다. 장래 주거정책은 인구구조의 변화를 기초로 설계돼야 한다. 수도권 인구가 정체 또는 감소한다면 기존 신도시 개발과 다른 방식의 주거정책이 모색돼야 한다. 주거정책에서 '예견적 거버넌스' 도입이 시급하다.

주택을 더 짓는 것보다 기존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한 패시브하우스(에너지를 절감한 최소한의 냉난방으로 실내온도를 유지하는 집)와 액티브하우스(태양열과 지열 등 자연에너지를 이용해 능동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집)를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주거정책은 인구구조의 변화만큼 중요한 환경의 지속가능성에 대비하는 방식으로 전환돼야 한다. 노후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사업에 정부 지원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2018년 3월 부산항만공사는 부산 감천항에 국내 항만 중 처음으로 패시브하우스로 설계된 항만 편의시설을 준공했다. 사진/뉴시스
 
주거에 관한 삶의 질에서 두 번째로 지표는 기본시설이 있는 거처에 사는 인구비율이다. 이는 한 가구가 단독으로 쓸 실내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곳에 사는 인구를 뜻한다. 한국은 인구의 95.8%가 기본시설이 갖춰진 집에서 산다. 순위로는 38개국 중 28위다.

세 번째 지표는 개인당 방의 숫자다. 주거과밀화를 측정하는 지수로, 거주하고 있는 곳의 방의 개수를 살고 있는 사람의 수로 나눈 비율이다. 간이 주방과 다용도실, 욕실, 화장실, 창고, 차고, 컨설팅룸, 사무실, 상점은 집계에서 제외한다. 한국의 개인당 방의 숫자는 1.4개로 OECD 회원국 중 25위다. 1위는 캐나다로 개인당 방의 숫자가 2.5개다.

20년 이후를 내다보는 주거정책에서 핵심적으로 고려할 것은 총인구 감소에 따른 인구구조의 변화와 환경의 지속가능성이다. 장차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정책 못지않게 지방과 농촌의 공동화에 대한 대책이 중요해질 것이다. 주거에 관한 삶의 질을 25위권에서 10위권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주거정책에 대해 지금까지와 다른 접근을 시도할 때다. 불과 20년 전 한국은 산아 제한정책을 추진했지만, 지금은 저출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예견적 거버넌스가 부족해서 일어난 대표적인 정책 사례다. 지금 신도시 건설 등 부동산 경기부양에 주력하는 것은 또 다른 정책실패 사례를 불러올 것이다. 이제는 에코-스마트 빌리지 등으로 전환적인 정책이 나와야 할 때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로, '미래, 문명, 평화'와 국정아젠다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행정학을 전공했고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장으로 국내 26개 국책연구소의 국정 정책담론을 기획·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국가비전2040을 수립하는데도 참여 중이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30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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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최병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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