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크리드2’, 오히려 빛을 낸 ‘드라고’의 깊은 슬픔
3040세대 향수 일깨워 준 ‘록키4’, 아들 세대가 벌이는 대결
‘록키 vs 드라고’ 끝나지 않은 그들의 경기…아버지 세대 유산
입력 : 2019-02-13 13:53:58 수정 : 2019-02-13 16:28:24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3040세대에겐 복싱 영화의 교과서이자 바이블인 록키시리즈는 한 남자의 성공 신화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고뇌가 사실적이고도 현실감 있게 그려지면서 전 세계적인 흥행을 이뤄냈다.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 스타 실베스터 스탤론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록키는 그의 자전적 스토리나 다름없었다. ‘록키에 등장한 주인공 록키 발보아, 아폴로 크리드, 이반 드라고는 열정이란 코드로 통합된 인물들이었다.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다를지언정 그들은 그 열정 안에서 최선을 다한 인물들이었다.
 
 
 
록키시리즈를 아버지 세대의 얘기로 규정하자면 크리드는 아들 세대의 스토리다. 영화 제목 크리드는 록키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또 가장 절친했던 친구 아폴로 크리드의 아들 아도니스 크리드(마이클 B. 조던)가 주인공이다. 국내에선 개봉하지 않았던 1편에선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록키의 조력에 따라 복싱 선수로 거듭나게 되는 아도니스의 스토리였다. 이번에 개봉하는 크리드2’는 록키 시리즈의 4편에 해당하는 이른바 넥스트 제네레이션 스토리다. ‘록키4’는 소련의 복싱 선수 이반 드라고(돌프 룬드그렌)이 아폴로 크리드와의 경기 도중 그를 죽이게 되고, 이에 대한 복수로 록키가 소련에서 경기를 펼치는 과정을 그린다. 결국 록키가 승리를 하면서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다. 당시 등장했던 이반 드라고의 무시무시한 운동 능력과 피지컬은 인간 기계의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하며 관객들에게 색다른 공포감을 선사한 바 있다.
 
크리드2’ 1편에서 세계 챔피언에 오른 뒤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아도니스에게 도전장을 던진 빅터 드라고(플로리안 문테아누)와의 대결이 그려진다. 미국의 영웅으로 불리던 아버지 아폴로의 뒤를 이어 아도니스는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최고의 복싱 선수로 성장한다. 반면 소련의 기대주이자 믿음직한 선수였던 이반 드라고는 록키와의 대결에서 패한 뒤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소련 연방 붕괴 뒤 우크라이나의 한 빈민가에서 생활하는 그는 자신을 쏙 빼 닮은 한 남자의 트레이닝을 돕고 있었다. 황량한 우크라이나의 빈민가처럼 두 남자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없다. 목표도 없어 보인다. 생존을 위한 야수성만이 남아 있는 육식 동물의 그것처럼 날카롭고 둔탁하다. 이 남자는 바로 이반 드라고의 아들 빅터. 빅터는 낮에는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시내의 사설 복싱 경기에 출전하는 아마추어 복싱 선수다. 아버지 이반의 피를 물려 받은 듯 상상을 초월하는 피지컬을 앞세워 상대 선수들을 무참하게 때려 눕힌다. 그의 경기를 한 남자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빅터의 연이은 승리에 이 남자는 묘한 미소를 짓는다. 미국의 프로모터 버디.
 
영화 '크리드2' 스틸.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현 챔피언과의 대결에서 승리 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아도니스는 애인 비앙카에게 청혼을 하고 결혼까지 앞두고 있다. 물론 그에겐 아버지 아폴로에 대한 향수와 상처나 남아 있었다. 경기 도중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트라우마로 자리했다. 그런 그를 보듬어 준 비앙카. 둘은 결혼을 앞둔 채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TV를 통해 버디의 기자회견을 보게 된다. 버디는 아버지 세대의 대결에서 매듭짓지 못한 경기를 아들 세대가 이어간다는 취지로 아도니스와 빅터의 경기를 추진한다. 아도니스 역시 버디와 빅터의 도발에 흔들린다. 하지만 록키 역시 절친 아폴로의 사망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 이 경기를 반대한다. 아폴로의 아내이자 아도니스의 어머니 메리 역시 말은 못하지만 내심 반대를 한다. 아도니스는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경기에 나서지만 무참히 패하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부상을 당한 아도니스. 이제 그의 경기를 반대했던 록키는 절친 아폴로의 아내였던 메리의 부탁을 받아 아도니스의 트레이너로 나서게 된다. 그리고 이반은 록키를 찾아와 선전 포고를 한다. 자신의 패배를 아들이 되갚아 줄 것이라고. 이제 아도니스와 빅터의 대결은 록키4’에서 이뤄졌던 록키와 이반의 대결 2차전이 된 셈이다.
 
영화 '크리드2' 스틸.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크리드2’는 기본적으로 록키4’의 맥락을 따라가는 스토리다. 전편이 록키1’의 구성과 흐름에 기댄 오마주 성격이 짙은 스토리라인이었던 점과 통한다. 정점에 오른 록키가 절친 아폴로의 죽음에 대한 책임과 복수 그리고 선수로의 자긍심 등 복합적인 영향으로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나선 점은 크리드2’에서 그려진다. ‘크리드2’에서 아도니스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복싱 선수로의 자존심, 아버지 세대인 록키와 아폴로가 남겨 준 유산을 스스로 증명하려 든다. 홀로 나선 경기에서 패한 점, 그리고 이어진 아버지 세대의 남은 유산 록키의 조력은 록키4’의 후대가 증명할 라인업임을 영화는 확실한 인장으로 스크린에 새긴다. 끔찍한 패배 이후 재기에 나서는 모습과 록키와의 교감은 3040세대가 기억하는 가슴 뛰는 록키시리즈의 박진감이자 마초성을 건드리는 날 것 그대로의 표현 방식이다. 정제된 시스템의 균질화된 챔피언 아도니스가 황량한 벌판 위 낡은 체육관에서 재기를 위해 몸부림 치는 모습은 록키4’의 트레이닝 명장면을 이어 받았단 확실한 증거다.
 
마지막 경기 장면은 영화의 후반 25분 정도를 책임진다. ‘록키4’에서 그려진 박진감과 특유의 화면 분할을 통해 그려진 두 선수의 감정 상태는 이 영화에는 없다. 단지 때리고 때리는 두 남자의 강렬한 타격만 드러난다. 그 타격이 감정이 완벽하게 배제된 날 것의 폭발이라면 크리드2’의 넥스트 제네레이션은 실패다. 반대로 그 타격 속에서 록키4’를 통해 느꼈던 남자의 뜨거움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 영화의 감정 전달 방식은 성공이다. 3040세대라면 전자에 가까울 것이고, 1020세대라면 후자에 손을 들 듯하다.
 
영화 '크리드2' 스틸.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주)
 
무엇보다 이 영화가 주목되는 것은 록키4’에서 일말의 감정조차 느낄 수 없었던 이반 드라고를 그린 방식이다.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아 낸 깊게 패인 주름 속 이 남자의 슬픔이 오히려 더 가슴을 흔든다. 차라리 크리드에 대한 호기심보단 드라고란 스핀오프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진 스토리가 됐다. 개봉은 오는 21.
 
P.S ‘록키4’를 기억하는 3040세대라면 꽤 놀랄 만한 배우가 깜짝 등장한다. 이 배우를 바라보는 이반 드라고의 눈빛에서 남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극한의 슬픔이 묻어 나온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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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