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2050)⑮포용국가의 '삶의 질'·'소득' 10위 전략
복지정책 프레임에 갇힌 '포용국가'…소득향상 통한 삶의 질 이끌어야
역량강화 정책을 기반으로 한 '생산과 복지의 선순환' 전략 절실
입력 : 2019-02-25 07:00:00 수정 : 2019-02-25 07:00:00
포용국가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은 포용국가를 복지국가의 짝퉁으로 왜곡한다. 지난해 가을부터 정부가 여러 방안을 담은 포용국가 정책을 발표했으나, 시민들이 이해하기로는 결국 '기-승-전-복지국가'다. 문재인정부가 포용국가 3개년 계획으로 발표한 사회정책도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에서 자료가 나왔다. 정부 스스로 포용국가를 짝퉁 복지국가의 프레임에 가둔 채 거기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포용국가의 궁긍적 목적에 관해 더 근본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포용국가의 사회정책을 통해 한국은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22위에 불과한 소득수준을 2050년에는 10위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복지국가에 반감을 품은 일부 국민들은 이 구상을 또 다른 '세금 퍼주기'로 오독할 수 있다. 그럼에도 포용국가론에서 가장 핵심적 질문은 OECD 소득 20위권 국가를 30년 뒤에는 10위로 만들 전략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현재 OECD에서 소득 10위권 국가들은 미국을 시작으로 룩셈부르크, 스위스, 노르웨이, 독일, 호주,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웨덴 등이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서구의 전통적 강대국을 제외하면 스웨덴과 노르웨이 등 노르딕 복지국가들이 많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서울 노원구 월계문화복지센터에서 열린 문재인 정부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 보고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복지정책만 강화하면 소득이 늘고 삶의 질이 개선될까?
 
또 하나의 질문. 한국이 노르딕 복지국가의 정책을 잘 받아들이면 30년 뒤에는 소득수준과 삶의 질을 그들만큼 개선할 수 있을까. 대답은 '노(NO)'다. 소득 10위권 국가들의 국부의 원천은 다른 데 있다. 그 비밀의 열쇠를 찾는 것이 국가비전 2050의 키워드다.
 
우선 OECD는 삶의 질 중 소득수준에 대한 내용부터 살펴보자. OECD는 소득수준을 측정할 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GDP로 대표되는 경제적 지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다. 대신 사용되는 기준이 가구순조정가처분소득과 가구금융순자산 등 2가지다. 가구순조정가처분소득으로 본 한국의 삶의 질은 2018년 기준으로 약 2만1700달러로, 이는 OECD 평균의 71%에 해당한다. 순위로는 OECD 38개 회원국 중 23위다. 이 분야의 선두는 미국으로, 4만달러가 넘어가는 부동의 1위다. 미국은 삶의 질에 관한 다른 지수에서는 노르딕 국가보다 순위가 밀린다. 그러나 소득 분야에서는 세계 최강대국의 면모가 여전하다. 한국과 유사한 수준의 국가는 슬로바키아와 슬로베니아, 포르투갈, 체코 등이다. 2001~2015년까지 한국은 GDP 성장률이 높았지만 가구순조정가처분소득의 증가율은 그에 못 미쳤다. GDP가 오르더라도 개인의 소득은 충분히 늘어나지 못했다는 의미다.

소득은 적절한 주거 또는 영양 섭취와 같이 사람들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자산은 경제적 충격으로부터 완충재의 역할을 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수단이다. 소득과 자산 모두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를 높여준다. 가구순조정가처분소득은 가구가 자산을 줄어간 부채를 늘리지 않고도 소비할 수 있는 최대 여력이다. OECD가 GDP 대신 가구순조정가처분소득을 사용하는 이유는 GDP가 가구의 물질적 조건을 보여주는 데 만족할 만한 지표가 아니어서다. 지난 20여년간 많은 나라에서 GDP와 가구순조정차처분소득의 차이가 점점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만 해도 1인당 GDP가 3만불을 넘었다지만, 가구의 소득은 2만불에 불과하다. 국가의 경제성장과 가구의 경제적 상황이 일치하지 않는 현상은 기업 이윤이 노동자에 대한 보상보다 재투자 등에 사용된 탓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삶의 질 중 소득수준을 측정할 때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GDP로 대표되는 경제적 지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다. 사진/플리커
 
한국의 가구순금융자산은 2018년 기준 약 3만3500달러다. OECD 평균인 9만500달러 대비 약 37% 수준이다. OECD 회원국 중 21위다. 한국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 등과 비슷한 처지다. OECD는 가구순금융자산에 관해 경제적 취약으로부터 가구를 보호할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한다. 순금융자산은 금 또는 현물과 예금, 주식, 주식 이외의 증권, 대여금, 보험, 기타 받거나 지불해야 할 계정을 모두 더한 뒤 금융부채를 제외한 값으로 산출한다. 일반적으로 가구순금융자산의 크기에는 생명보험, 연금준비금, 주식이 영향을 미친다. 일부 국가에서는 현금과 저축도 영향을 준다. 예를 들면 체코나 그리스, 일본은 현금과 예금이 가구순금융자산의 50%를 넘는다. 영국, 호주는 보험이 50%를 차지한다.

복지만 아니라 '생산과 복지의 선순환' 필요

OECD 삶의 질 지수에서 2018년 기준 한국의 소득수준은 22위 정도다. 30년 이후 한국이 10위에 들어가려면 생산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소득수준 10위권 국가 중 대다수가 노르딕 복지국가인데, 그들처럼 사회안전망과 복지제도를 확충하는 것만으로는 10위권 나라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정부의 포용국가 정책에서 관건은 복지제도를 제대로 갖추는 건 물론 생산부문에서 소득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이 나와야 한다.
 
생산부문을 보강하는 방법은 포용국가의 '역량-고용-소득' 모델이다. 국가비전 2050에서는 교육과 사람중심의 기업을 통해 개인과 공동체의 역량을 강화, 역량 증진사회와 사람중심 경제를 구현할 것을 주문한다. 바람직한 역량증진 방안은 인적자본과 사회자본을 통합한 포용적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인적자본은 개인의 능력과 기술적 숙련도, 지식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흔히 노동의 질적 수준을 의미한다. 인적자본 증진은 개인과 국가 경제·정치·사회발전에도 영향를 미친다. 포용국가의 소득개선 전략은 인적자본 역량을 향상시킴으로써 개인의 지적이고 창조적 기량을 극대화, 궁극적으로 국가적으로도 노동생산성과 기술발전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도 가능케 한다.
 
정부의 포용국가 정책에서 관건은 복지제도를 제대로 갖추는 건 물론 생산부문에서 소득을 높일 수 있는 전략이 나와야 한다. 생산부문을 보강하는 방법이 '역량-고용-소득' 모델이다. 사진/뉴스토마토
 
사회자본은 사람 간 신뢰와 협력을 통해 사회적 결속을 촉진하는 신뢰, 규범, 연결망 등 사회적 자산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개인과 집단의 발전에서도 중요한 원동력이다.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진전을 모두 이룬 선진국에선 공통적으로 사회자본이 발달했다. 개인의 창의성과 지식, 협력적 태도 등을 의미하는 인적자본과 사회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신뢰관계, 연결망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면 포용국가 역량도 진일보할 수 있다.

포용국가, 복지정책 아닌 역량강화 정책에 주목

포용국가의 소득향상 전략에서 역량강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OECD 국가 간 실증비교에서도 확인된다. 성공한 국가모델로 평가되는 노르딕 국가들의 공통점은 복지제도를 잘 갖춘 것과 함께 사람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인적 역량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포용국가론과 복지국가론이 다른 지점도 이 부분이다. 포용국가는 노르딕 국가들에서 단순 복지정책보다는 역량강화 정책들에 주목한다. 인적 역량과 소득의 관계에 관해 OECD 국가들을 비교 분석할 때, 노르웨이나 스웨덴, 아일랜드,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은 소득수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인간개발지수(HDI)도 최상위권이다. 국제연합(UN)의 HDI에 따르면 인적 역량과 1인당 GDP로 측정된 소득 간에는 상관관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HDI는 기대수명과 평균 교육연수, 기대 교육연수, 1인당 국민총소득(GNI) 등을 통해 수명과 지식, 적절한 생활수준 등에 관한 국가별 성취도를 측정한 것이다. 

인적 역량강화와 소득 간의 상관관계가 긴밀해진 것은 지식경제 시대가 도래한 덕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현명하게 대처한 나라들은 인적 역량이 높은 국가들이었고, 개인과 공동체의 회복탄력성이 컸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인적 역량과 혁신성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인적 역량이 높을수록 1인당 지적재산권 수입이 높은 것으로 조사, 혁신성과가 우수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민이 장기간 안정된 생활을 누리며 높은 지식수준을 가진 나라일수록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혁신을 도출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 성과에서도 동일하다. 연구들에 따르면 사람과 기술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역량을 증진하려는 기업일수록 최고의 경영성과를 거두는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기술투자와 사람투자를 비교할 때, 기술투자보다 사람투자에 집중하는 기업의 성과가 최대 2배 정도가 더 높았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사람투자에 집중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은 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산업화 초기 노동집약적 산업은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수출을 주도하며 한국경제를 이끌었다. 1970년대 이후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해 자본집약적 산업구조로 변했으나 기업은 여전히 사람보다 자본을 중심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후기 산업사회를 넘어 데이터경제로 이행하는 최근의 글로벌 자본주의 흐름에서 보면 앞으로는 기업의 핵심 가치창출이 사람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실제로 올해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도 산업정책의 방향이 '사람중심'임을 재확인했다.
 
2050년의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득수준 10위를 목표로 한다면 그에 따른 국가전략은 역량강화 밖에 없다. 사진/픽사베이
 
2050년의 한국이 OECD 소득수준 10위를 목표로 한다면 그에 따른 국가전략은 역량강화 밖에 없다. 글로벌 경향과 실증분석들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포용국가의 역량-고용-소득 모델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6년 촛불혁명 이후 한국의 역량강화 대책이다. 최근 OECD 보고서나 스위스 다보스포럼, G20 회의 등에서도 중심 화두는 사람중심, 개인과 공동체의 역량강화에 모아지고 있다. 개인과 공동체의 역량을 강화, 고용의 질을 높이면서 공동체의 성과를 창출하는 게 포용국가의 전략이다. 대한민국의 국가비전으로 제시된 포용국가가 단순 복지국가와 다른 이유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로, '미래, 문명, 평화'와 국정아젠다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행정학을 전공했고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장으로 국내 26개 국책연구소의 국정 정책담론을 기획·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국가비전2040을 수립하는데도 참여 중이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30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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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최병호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