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곤의 분석과 전망)불가역성은 어떻게 담보되는가
입력 : 2019-03-04 06:00:00 수정 : 2019-03-04 06:00:00
베트남 하노이 시간으로 28일 오전 9시, 두 번째 단독 정상회담에 앞서 기자들 앞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수 차례 반복했다.
 
뿐만 아니라 "오늘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리는 반드시 좋은 성공을 얻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기 국면인 국내 정치상황 탓에 미국 조야의 기대치를 낮춰놓으려는 전략과 상대방인 북한을 한껏 달아오르게 하려는 속내가 겹합된 발언이었던 것이다.
 
사전 정지작업 과정에서는 몰아쳐서 상대의 혼을 빼놓고 본격 협상에서는 오히려 느긋한 태도로 상대를 조급하게 만드는 것은 ‘사업가 트럼프’의 널리 알려진 협상 전략이기도 하다.
 
그리고 28일 오후 2시, 백악관은 ‘노 딜’을 선언했다.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애초 발언대로 말이 아니라도 한반도평화정착과 공동 번영은 장기간 지속될 과제임은 분명하다. 통일은 삽시간에 이뤄졌지만 동서독도 그랬다. 미국과 베트남, 미국과 중국의 관계 정상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년 싱가폴 회담에 이은 올해 하노이 회담 자체가 역사적 성과임엔 분명하지만 기-승-전-결로 이어질 과정의 첫 단계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합의의 양이 아니라 불가역(不可逆)성이다. 이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불가역성은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정은 국무위원장 혹은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담보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다른 협상에서도 당사자들은 불가역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 노력은 대체로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먼저 아예 명시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정부에서 도출된 한일위안부 합의에는 아예 ‘비가역(非可逆)’이라는 단어가 포함됐었다. 여러 통상 협상에서는 역진 방지를 위한 ‘래칫(ratchet)’조항이 포함된다.
 
하지만 알다시피 한일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파기된 것이나 다름없다.
 
두 번째는 합의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는 것, 즉 진도를 많이 빼놓는 것이다. 지난 2007년 대선 두 달 전에 진행된 2차 남북정상회담 결과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간의 10·4 공동선언이 그렇다. 여기는 6·15공동 선언의 적극 구현, 상호 존중과 신뢰의 남북 관계로의 전환, 군사적 적대 관계 종식, 한반도 핵(核) 문제 해결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 추진 남북 경제협력 사업의 적극 활성화,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 이산가족 상봉 확대 등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아는 바대로다.
 
북미 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2000년 10월,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 D.C를 방문해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났고 곧바로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이 평양으로 날아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 미 대선 전에 진도를 빼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북미 수교가 급물살을 탔고 클린턴 방북이 추진됐지만 11월 대선에서 조지 부시가 앨 고어를 꺽은 후 모든 것은 없던 일이 됐다.
 
세 번째는 합의의 주체 바깥으로 이해당사자를 확장시키고 공유할 수 있는 이익을 늘려서 공감대를 넓히는 것이다. 세 가지 중에 가장 품이 많이 들고 실현이 어려운 전략이다. 물론 이 역시 불가역성을 완전히 확보할 순 없다. 역사상 최초로 한국이 중심에서서 다자간 협상을 이끌었던 참여정부의 6자회담은 9·19 공동성명을 도출했지만 북핵실험을 막진 못했다.
 
하지만 세 가지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것이 마지막 방안인 것은 틀림없다. 독일 통일이 그랬고 EU의 결성과 확장이 그랬다. 북미가 그리고 한국이 추진해야 할, 아니 추진할 수밖에 없는 선택지가 바로 이것이다. 하노이 보다 ‘포스트 하노이’가 더 중요한 이유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taegonyo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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