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첨단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가다)이수희 조아라 대표 “한국 시장의 한계, 미국에서 돌파”
“누구나 글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가치로 전 세계인의 작가화 꿈 꿔"
입력 : 2019-03-08 00:00:00 수정 : 2019-03-08 00:00:00
[샌프란시스코=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기술도 하드웨어도 아닌 문화 플랫폼을 갖고 미국 실리콘밸리 진출에 나선 기업이 있다. 문화며 언어, 모든 것이 낯선 이곳에서 겁 없이 도전장을 던졌다. 이수희 대표는 ‘누구나 제약 없이 글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지난 2000년 웹소설 사이트 조아라(JOARA)를 만들었다. 어언 20년. 이 대표 홀로 구상하면서 시작된 조아라는 하루 30만명의 독자가 드나들고 1000만건의 웹소설이 업로드되는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2009년 1억원 남짓했던 매출은 2014년 72억원, 2015년 125억원, 약 180억원이상까지 올랐다. 이제 한국 시장은 좁다. 이 대표는 전 국민의 작가화에서 전 세계인의 작가화까지 하겠다는 목표다.
 
이수희 조아라 대표. 사진/뉴스토마토
 
“한국 시장은 (물리적으로)작다. 미국, 인도부터 동남아, 유럽도 가려고 한다. 어디에서든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이 얼마나 편리하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을지에 포커스를 맞출 것이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코트라 실리콘밸리 무역관에서 만난 이 대표는 조아라의 해외 시장 진출 계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기업을 시작할 때 드는 비용이 한국보다 훨씬 많다. 애플이나 페이스북처럼 창고에서 시작해서 어느 정도 성장시킨 다음 투자받지 않으면 성장할 수가 없다. 현지에서 좋은 학교를 나와 인맥 네트워크가 풍부하고 사업 확대 방안도 어느 정도 마련돼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 여기는 훨씬 더 많은 스타트업과 더 좋은 아이디어를 놓고 경쟁이 벌어지기 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미국 진출의 애로사항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해 3월에 미국 땅을 밟은 이후 1년간 미국지사 설립에 매진했다. 언어도 문화도 모두 달라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기회’다. 이 대표는 “타파스, 래디시 등의 웹소설 플랫폼이 있지만 상품성에 좀 더 집중하고 전문 소설가 집단을 추구하는 형태다. 아직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조아라 같은 플랫폼이 해외에는 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설득시킬 수 있다면 투자유치가 한국보다 수월하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라면서 “미국은 시장 규모를 바탕으로 회사가 조 단위로 급격하게 클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조아라 한국 사이트. 사진/조아라 홈페이지
 
처음부터 웹소설을 통해 사업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소설을 읽는 것을 좋아해 중국 김용의 무협 소설들을 탐독했고 퇴마록 등 판타지 소설을 섭렵했다. 그는 “당시 한국은 게시판 형식으로 소설을 올렸는데 글을 일일이 검색한 후 읽어야 해서 불편했다”면서 “글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도 운영진에서 검열이 많아 가능성 있는 소설이 빛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아라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글이든 공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작품을 검수하거나 수정하지 않았다. 성실한 작가는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70화, 100화 등 화수를 채울 때마다 선물을 제공하고 어느 정도 인기를 얻으면 배너를 걸어 홍보도 해줬다. 덕분에 ‘신인작가의 등용문’, ‘작가들의 사범대학’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현재 웹소설 작가들 중 60~70%은 조아라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면서 “기성 작가들도 ‘조아라에서 시작하라’고 할 정도”라고 말했다. 화제작 ‘메모라이즈’,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달빛조각사’ 모두 조아라에서 연재된 작품이다. 
 
글을 쓰고 읽는데 제약이 없다보니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많았다. ‘그게 무슨 글이냐’라는 비판이 늘 뒤따랐다. 이 대표는 “어디까지 예술인가 외설인가의 논란이 항상 있었다. 사이버수사대 측에 확실한 기준을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자신들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한국은 사업을 시작하기에 세계 어느 나라보다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엔젤투자매칭펀드, 스케일업 전용 펀드 등 수많은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 정부가 신규 벤처투자 연 5조원 달성, 유니콘기업 20개 창출 등 표어를 내걸고 벤처 확산 붐에 나선다. 하지만 창업 후 3~7년에 닥치는 데스밸리에 있거나 데스밸리를 뛰어넘어 본격적인 성장단계에 진입한 기업들이 사업을 접거나 폐업을 고민하는 사례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환경은 시작하고 난 후 3년까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 돼있다. 일정 노하우와 기술이 쌓이면 한 단계 성장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하드웨어나 서비스질도 올려야 하고 시장의 판정도 받아야 하는 시기인데 추가 투자를 받기가 힘들다. 또 아이템이 괜찮다고 생각하면 대기업이 해당 플랫폼을 그대로 벤치마킹하거나 해당 기업을 인수한다. 성장의 기회가 막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중소 업체들이 시작했던 웹소설 시장도 어느새 대기업들이 활발하게 진출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네이버, 카카오 등이 시장에 뛰어들면서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이 대표는 “대기업들은 조아라에서 이미 스타로 만들어진 작가들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해 스카우트하는 경우가 많다. 작가와 콘텐츠에 독점을 걸고 무료 이용권을 배포하는 등 프로모션을 하면 작가 유출도 막고 매출도 올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직원들이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라지면 신인작가들 설 자리는 누가 만드나”라고 했다. 그는 창업을 고려하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이뤄야 할 가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내가 만든 상품이 좋으니까 잘 팔아서 더욱 크게 될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하면 경쟁자 나오는 순간 무너진다. 단지 ‘돈을 벌겠다’, ‘성공하겠다’라고 시작하면 버티기가 힘들다. 그런 것들을 잘 고민했으면 좋겠다.”라고 제언했다.
 
조아라의 미국 진출은 향후 5~7년을 내다보고 있다. 그는 “해외 진출하고 큰 시장에서 가면 고생은 10배 이상 하겠지만 기회는 열려 있다. 우리는 그 기회를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한국에서 웹소설 작가, 웹툰 작가라는 새로운 직군과 문화를 만들었는데 미국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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