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고해를 가르며, ‘로큰롤라디오’ 닻은 오르네①
6년 만에 발매한 2집 정규 앨범…희망 꿈꾸며 작성한 음악 항해일지
입력 : 2019-03-15 17:43:54 수정 : 2019-03-15 18:13:2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디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누구에게나 삶은 고통과 불안으로 점철된 ‘고해’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우린 끝없는 절망을 마주하고 버텨내며 성장한다. 그리스 신화의 시즈프스처럼 생명이 붙은 이들은 자신 만의 바위를 지고 정상으로 향한다. 그것이 계속해서 몸을 짓누르고, 삶을 위태롭게 할 지라도. 
 
밴드 로큰롤라디오 역시 시지프스와 같은 삶의 철학을 늘 가슴에 품고 산다. 불안과 고뇌로 가득한 이 ‘고해’ 속에서 그들은 매일 닻을 올리는 뱃사공처럼, 음악을 한다.
 
“그러니까 뱃사람 같은 거죠. 고기가 많이 잡히든, 그렇지 않든. 그게 우리고, 음악입니다.”
 
지난 12일 저녁 서울 광흥창 CJ 아지트에서 이 뱃사람 같은 이들(보컬·기타: 김내현, 기타: 김진규, 베이스:이민우, 드럼: 최민규)을 만났다. 불안과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밴드는 이 곳에서 희망을 꿈꾸며 음악이란 ‘항해 일지’를 작성한다. 지난달 발표된 2집 ‘유브 네버 해드 잇 소 굿(You’ve Never Had It So Good)’ 역시 여기에서 흘린 피, 땀의 시간이 고스란히 묻었다.
 
지난 12일 저녁 CJ아지트에서 만난 밴드 로큰롤라디오. 사진/뉴스토마토
 
1집 ‘셧 업 앤 댄스(Shut up and dance)’ 이후 6년 만에 나온 정규. 영화 인터스텔라 제작 기간만큼의 세월이 걸린 이 앨범에서 밴드는 시지프스 같은 삶의 철학을 논한다. ‘고통은 끝나지 않겠지만 그 사실을 인정함으로써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는 메시지가 12곡의 정서를 관통한다. 
 
“(내현)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이 시지프스와 같은 상황에 놓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을 하고 열심히 살아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그런 게 어떻게 보면 삶이니까.”
 
“(진규)이 시대에 행복은 신기루 같은 느낌이 있다 생각해요. 때론 고통을 외면하면서까지 그런 행복을 찾으려 하고요. 근데 그런 감정(고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먼저가 아닐까 해요. 그런 다음에 행복이든, 변화에 대한 희망이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앨범명 ‘You’ve Never Had It So Good’ 역시 이런 사고 회로에서 나온 중의적 표현이다. ‘아직까지 좋은 순간은 없었다’는 뜻과 ‘지금이 이토록 좋은 순간이다’란 뜻이 공존한다. “(내현)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순간이 어떤 이에게는 느껴보지 못한 순간일 수도 있어요. 2차 대전 후 영국 보수당과 노동당이 이 구호를 두고 서로 논쟁을 펼쳤는데, 그게 오늘날 우리 시대와 맞닿아 있는 듯 해서 타이틀로 정하게 됐어요.” 
 
밴드 로큰롤라디오 2집 커버. 사진/미러볼뮤직
 
애매모호한 앨범명처럼 커버에도 하마나 하이에나처럼 보이는 동물을 박아뒀다. 어떤 동물인지 분간도 안 된다 하니 멤버들이 웃는다.
 
“(진규)사실은 미국 LA 화이트샌드 사막에 있던 개를 즉흥적으로 찍은 거에요. 혁오 뮤직비디오를 찍은 정진수 감독님이 보내주셨어요. 저희도 처음에는 아리쏭했는데, 보면 볼수록 갖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전작보다 다채로운 면들이 많은 이번 앨범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앨범에서 밴드는 시지프스 같은 캐릭터를 내세워 그 동안의 삶을 고찰한다. 염세적이고 자기 반성이 가득한 이 캐릭터는 일그러진 어제를 기억하는 데서 내일을 향한 출사표를 던진다.(곡 ‘Here Comes The Sun’) 
 
“(내현)돌이켜 보면 밴드로서의 지난 세월들이 그랬던 것 같아요. 1집이 어설프게 주목을 받으면서 ‘헛바람’이 들었었고, 여기서 조금만 더 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거든요. ‘히트곡을 만들어야 한다’, ‘사람들이 좋아해 줄 만한 음악을 해야 한다’라는 관념에 지나치게 매몰돼 있었던 것 같아요.”
 
“지난해 친하게 지내던 지인(러브록컴퍼니 기명신 대표)이 돌아가시고부터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성공 같은 것 보다 삶에서 더 중요한 것들이 있구나, 우리가 못보고 지나쳐 온 것들이 많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앨범 작업에서는 우리의 음악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자는 마음이 반영됐던 것 같아요.”
 
밴드 로큰롤라디오가 홍대 앞 클럽 프리버드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트랙리스트들이 돌아가는 순간, 밴드가 품고 있던 고민 거리들이 캐릭터의 입을 빌려 전해진다. 지키지 못할 약속과 거짓에 지친 과거 자신을 인정하고(곡 ‘말하지 않아도’), 울음을 가득 머금은 기타소리로 지인의 죽음을 위로(곡 ‘비가 오지 않는 밤에’)하며 때론 스치는 바람 만으로도 살아있음을 느낀다(곡 ‘SISYPHE’). 밴드의 삶은 음악이 돼 흐르고, 다시 그들의 삶이 된다. 내일이, 희망이, 꿈이 된다.
 
“(민우)멋있어 보이려는 음악보다 우리 넷이 만족스러운 음악, 껌데기가 아닌 솔직함, 그것이 뮤지션에게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지난 6년간 이러 저러한 부침도 있었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말, 그리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이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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