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우상’ 한석규, 이수진 감독과 뜻밖의 약속한 사연
기괴한 영화 속 엔딩 장면, 출연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
“이렇게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 ‘초록 물고기’ 이후 처음”
입력 : 2019-03-26 00:00:00 수정 : 2019-03-26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1990년대 중반 이후 충무로는 단 한 사람이 움직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든 시나리오가 그를 모델로 쓰여졌었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시나리오는 무조건 그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그의 출연 여부가 해당 영화의 성패를 좌우했다. 그 당시 한국영화 시장은 그가 출연한 영화와 그가 출연하지 않은 영화그렇게 두 그룹으로 나뉘어 졌었다. 바로 한석규다. 그는 그런 존재였다. ‘국민 배우’ ‘흥행 보증수표란 타이틀이 지금도 여러 톱스타들에게 수식어처럼 따라 붙고 있다. 당시의 한석규는 이런 타이틀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대체 불가의 존재였다. 물론 그 당시에 그랬다. 그 역시 세월을 이길 수는 없었다. 밀레니엄 이후 선택한 첫 번째 주연작 이중간첩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후 충무로에는 그의 존재감을 대체할 특급 스타들이 즐비하게 등장했다. 잊혀져 간 배우가 됐다. 물론 존재감에 국한된 표현일 뿐이다. 간간히 출연한 작품에서 그는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강호를 떠난 무림맹주의 내공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강호에 발을 내 딛었다. 잊혀진 존재감일지언정 여전히 충무로 무림을 들썩이게 할 내공의 소유자는 한석규다. 영화 우상속 그 모습이 완벽하게 그걸 증명한다.
 
배우 한석규. 사진/CGV아트하우스
 
우상 개봉 며칠을 앞두고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한석규와 만났다. 영화 자체의 형식이 생소한 탓에 다소 어렵다는 반응이 언론 시사회에서 나온 직후였다. 첫 인사와 함께 한석규는 특유의 너털웃음과 함께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엇부터 얘기를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 같았다. 고민하는 것이지만 29년 차 내공의 이 배우가 고민할 거리가 있는지도 사실 의문이었다.
 
글쎄요.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까요. (웃음) 하하하. , 영화는 제가 생각하고 그렸던 이미지와 거의 맞아 떨어졌어요. 물론 관객 분들은 아주 어렵게 받아 들이실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요. 공감 합니다. 충분히. 그런데 어려운 얘기를 쉽게 풀어내는 건 정말 어려운 일 아닐까요. 연기로 그 어려움을 녹여내자고 생각하고 덤벼 들었는데 결과가 어렵다면 받아 들여야죠. 배우 입장에선. 쓴 소리라도. 물론 그렇게 만들어 졌다고 연출을 맡은 이수진 감독이 하수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보배 같은 분이에요. 정말로요.”
 
영화의 형식 자체가 생소했다. 생소하다기 보단 지금까지의 스토리 전개 방식과는 좀 다른 느낌이 강했다. 이 점은 의외로 배우들을 자극했다. 한석규 역시 29년 연기 생활 동안 처음 보는 시나리오였다고. 그래서 너무 반가웠단다. 하지만 영화가 언론에 공개된 뒤 연출을 맡은 이수진 감독은 한석규에게 자조 섞인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후배 연출자의 이런 말에 한석규는 안타까웠다.
 
배우 한석규. 사진/CGV아트하우스
 
“’우상언론 시사회가 열린 뒤 내게 이 감독이 그러더라고요. ‘선배님 이젠 영화 못할 거 같습니다라고. 본인 뜻대로 잘 만들었는데 결과적으로 상업 영화이기에 관객이 많이 들어야 하잖아요. 기자님들의 반응에 무서웠던 걸 수도 있고요. 그게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그래요. 자기가 너무 사람을 괴롭히는 것 같은 가 봐요. ‘한공주때도 워낙 쎈 영화였는데 이번은 더 쎈 느낌이 강하니. 근데 전 그 말을 하는 이 감독이 정말 신뢰가 됐죠. ‘이 사람 영화관이 아주 좋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인간적으로 착해요. 사람이.”
 
결국 걱정하는 후배 감독에게 조언한 것은 다음 작품부턴 출연 배우들을 줄여 보라고 말했다는 것. 이유는 간단 명료했다. ‘이수진 감독은 사람을 허투루 쓰는 연출자가 아니다라는 것. 실제로 우상속 여러 인물들은 출연 비중에 상관 없이 모두가 세밀하게 조율돼 있었다. 쉽게 말하는 선택과 집중에서 이 감독은 모든 것을 선택하고 모든 것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한석규의 눈에 비친 이 감독이다.
 
연출자는 그래요. 현장에서 포기를 하면서 작업을 하는 직업이죠. 왜요? 현장에 가면 안 되는 것 투성이에요. 내가 생각하고 상상한 게 거의 제대로 되는 게 없어요. ‘이게 왜 안돼?’라며 스태프들과 충돌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이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담아 내고자 하는 얘기가 너무 컸어요. 워낙 스토리가 촘촘하고 등장 인물들도 많고. 그 많은 인물들이 스치듯 지나가면서 그 거대한 얘기가 퍼즐처럼 완성이 되죠.”
 
배우 한석규. 사진/CGV아트하우스
 
그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우상출연 결정이 납득이 되면서도 한 편으로 왜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을까란 의문이 동시에 들었다. 이 정도의 내공을 소유한 배우조차 쉽지는 않은 시나리오였다고 단언할 정도였으니. 단순하게는 도전혹은 연기 욕심이 앞선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한석규를 자극했다. 한석규는 웬만한 시나리오에는 쉽게 출연 결정을 하지 않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란 질문이라면 딱 하나였죠. 영화의 엔딩 때문이에요. 그 장면이 과연 관객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서게 될까. 정말 궁금했어요. 보셨으니 아시겠지만. 정말 기괴하잖아요. 내가 글로 읽었을 때의 느낌을 몸으로 전달해 보여 드리고 싶었죠. 구명회란 인간은 아주 비겁한 사람이에요. 그것도 끌렸죠. 그런 인간을 한 번 연기해 보고 싶던 시기였어요. 살려고 발버둥치는 데 하는 짓마다 바보 같은 선택만 하잖아요. 근데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끝까지 살아 남으려 했을까.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게 내 모습은 아닐까 싶기도 했죠.”
 
그런 인물을 그리기 위해 한석규는 무엇에 포인트를 두고 인물을 만들어 갔을까. 이번 우상이전 출연작으로도 만나 인터뷰를 했을 때마다 그는 시나리오에 다 나와 있다며 캐릭터 구현에 대한 배우 자신만의 노하우가 없음을 밝힌 바 있다. 워낙 완성도가 출중한 시나리오로 정평이 나 있던 우상이었기에 뭔가 다른 방식이 있을 것이라 미뤄 짐작이 되기도 했다.
 
배우 한석규. 사진/CGV아트하우스
 
연기를 하면 본능적으로 혹은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있어요. 그 지점에 맞춰서 인물을 만들어가죠. 그런데 우상은 그러고 싶지도 그러면 안될 것 같았어요. 겸손하게 조금씩 다가서야겠다 싶었죠. 이건 뭐라고 설명하는 것보다 영화를 보러 오시는 관객 분들에게 시나리오를 한 부씩 드렸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도 했었고요. 이런 느낌은 초록 물고기이후 처음이에요. 좋은 시나리오는 대사나 지문 자체가 명문이에요. 이창동 감독님의 초록 물고기그리고 음란서생시나리오도 좋았고요. ‘우상도 최고였어요. 시나리오에 다 있습니다.”
 
우상을 통해 한석규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배우로서의 메시지가 있을까. 그는 언제나 영화의 핵심은 단 한 가지라고 말한다. 그 안에서 메시지가 있고 그 메시지가 감독의 영화관이며 사람과 시대를 관통하는 시선이라고 전했다. ‘우상은 모든 것이 명확했단다. 아마도 이런 시나리오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란 의문도 든다고. 이수진 감독의 열렬한 마니아가 됐다는 한석규다.
 
배우 한석규. 사진/CGV아트하우스
 
영화의 핵심은 장르를 불문하고 드라마 즉 이야기죠. 다시 말하면 뭘 이야기 하고 싶은데입니다. 그게 제일 중요해요. 좋은 영화 괜찮은 영화는 시대가 있고 그 속에 사는 인간이 보여야 해요. 그 시대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말하는 것이 이야기 이며 결국 그게 영화가 되는 거죠. 이수진 감독은 한공주를 본 뒤 알게 됐어요. 그때 알았죠. 이 사람은 보배구나. 제가 절대 다음 작품 약속을 안 하는 걸로 유명한데 이 감독에겐 그랬어요. ‘뭘 하든 난 당신과 다시 하겠다라고. 다음 작품이 기다려 집니다(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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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