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어르신들 말에 담긴 근현대 삶의 흔적
출판사 '봄으로부터', '됐따 고마!' 출간
입력 : 2019-03-29 14:53:44 수정 : 2019-03-29 14:57:28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무심한 듯 내뱉는 어른들의 말 속에는 녹록지 않은 삶의 흔적이 담겨 있다. 그것은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오랜 문화의 편린이며 이를 하나 둘 증축하면 생생한 근현대사가 된다. 
 
1934년생 김시정 할머니는 경북 안동 임하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아들이 많았던 집에서 '정이'로 불리며 사랑을 받으며 자랐고, 영양군 모시골로 시집을 가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부모 공양과 자식 뒷바라지에 50여년을 바쳐온 그는 이제 80을 훌쩍 넘긴 '할매'가 됐다. 
 
출판사 '봄으로부터'가 할머니의 말과 행동을 엮은 '됐따, 고마!'를 펴냈다. 어린시절부터 어른들께 들으며 배운 우리네 말들을 단문 형식으로 소개하고, 그에 담긴 인생의 함의를 짚어주는 책이다. 책 제목은 평소 돌려서 말 못하는 할머니의 '직진' 성격에서 따서 지었다.
 
소녀일 때는 '세상없었다'라는 말로 자신이 온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살았고, 가족이니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을 '남 모타리(남이라면 못할 일)'이라 했다. 쌀이 귀했던 시절 쌀 한 말을 먹기 쉽지 않아 '쌀 한 말 먹음 많이 먹었다'를 입버릇처럼 하기도 했다.
 
김 할머니 생의 서사에는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가 함께 흐른다. 유년기였던 일제시대 때 어린 학생들의 볼을 때리는 일본군들을 보면 '몸써리가 났'고(진저리가 쳐진다는 표현), 6·25 때 아버지의 호통은 '꾀닥소리(전쟁통 포탄으로 살림살이가 깨지는 소리의 표현)'와도 같았다. 결혼 후 산업화 물결이 밀어 닥친 서울 살이에서는 노량진 사글셋방 한 칸에서 시댁 오촌 조카와 네 식구, 시어머니와 함께 '드글드글' 터를 잡고 사는 삶도 그려진다. 
 
이제 90세를 앞둔 할머니는 잔병 치레가 늘었다. 어머니 산소 앞에 당도하면 목 놓아 울고, 생과 죽음에 대해서도 종종 생각한다. 한평생 자식을 키워내느라 시커메진 속 마음, 비슷한 나이대의 고향 집 마당 감나무에서 위로를 얻는다.
 
책을 펴낸 출판사는 "모든 걸 다 내놓으신 우리 부모님들의 생을 깨닫고자 책을 냈다"며 "부모 공양과 자식 뒷바라지에 인생을 바치신 우리 부모님들께 이 책을 바친다"고 서문에 썼다.
 
1934년생 김시정 할머니 어릴 적 모습. 사진/봄으로부터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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