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다시 홍역
입력 : 2019-05-31 06:00:00 수정 : 2019-05-31 06:00:00
'홍역을 치르다'라는 말은 아주 곤란한 상황을 겪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홍역은 두창이라 불린 천연두와 함께 영유아 사망률을 크게 높인 전염병이다. 홍역이 얼마나 두려운 병이었는지는, “평생 안 걸리면 무덤에서라도 걸린다”라는 말에 잘 나타난다. 홍역에 걸리면 여전히 별다른 치료제가 없다. 하지만 돌전후에 홍역 백신을 접종한 영유아는 홍역에 걸리지 않는다.
 
백신은 치료제가 아니라 예방약이다. 백신 교과서의 서문엔 “깨끗한 물을 제외하고 그 어떠한 것도, 심지어는 항생제조차도 백신만큼 사망률 감소와 인구 증가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없다”라고 쓰여 있다. 백신은 생물학이 세상에 준 가장 큰 선물이다. 백신을 맞으면 전염병에 대한 면역이 생긴다. 즉, 백신은 이른 시기에 우리 몸에 존재하는 면역계에 병원균에 대한 기억을 제공해, 우리 몸이 자연스럽게 그 병원균에 맞서게 하는 치료법이다. 
 
백신이 세상을 얼마나 극적으로 구해냈는지는 천연두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지구 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1921년 미국의 디프테리아의 발병률은 21만회에 달했지만, 1998년엔 단 1회로 줄었고, 뇌수막염 백신은 발병률을 99%까지 줄였다. 소아마비도 마찬가지다. 소아마비의 피해자였던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원으로 시작된 소아마비 백신 개발은, 미국의 과학자 조너던 소크가 개발 특허를 사회에 기부하면서, 단돈 100원도 안되는 가격으로 수 백만명의 아이들을 구했다. 소크는 수많은 제약회사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한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양에도 특허를 낼거요?” 과학자에게 감사하라.
 
다시 전근대적 질병인 홍역이 유행하고 있다. 미국 뿐 아니라 유럽과 중국 등에서도 홍역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미 수십 년전 백신 덕분에 거의 박멸된 홍역이 다시 나타난건, 낮아진 백신 접종률 때문이다. 미국 뉴욕주 록랜드 카운티의 홍역백신 접종률은 73%에 불과하다. 미국 카운티의 홍역 발생률과 백신 접종률을 비교하면 분명한 인과관계가 보인다. 홍역백신 접종률이 높은 도시에선, 홍역 환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백신을 거부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우리 주변의 이웃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다수 섞여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종교적 이유로, 일부는 자연 치유를 신뢰한다는 이유로, 어떤 이들은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백신을 거부한다. 물론 백시 거부자들 중에는 음모론자, 선동가, 반자본-반기업주의자 등도 있다. 그리고 미국의 대통령 도날드 트럼프도 한 때 백신거부운동에 호의적이었다.
 
뉴욕주에서 시작된 홍역 사태가 심각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아이들에게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며, 자신의 과거 발언을 뒤집었다. 과학이 인류에게 준 선물의 고마움을 깨닫지 못하던 사람들은, 전염병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 나서야, 이제 겨우 조금씩 백신의 위대함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제어할 제도적 장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녀는 물론, 타인의 자녀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잠재적 범죄자들이다. 이건 과학과 유사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 생존의 문제다. 학부모들은 당장 들고 일어나야 한다.
 
한국엔 안아키, "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라는 유사과학 단체가 있다. 사이비 한의사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시작한 단체로, 순진한 학부모들에게 자연치유를 강요한다. 백신 거부는 안아키의 활동 중 극히 일부다. 게다가 이들은 유사과학으로 사업을 한다. 정체불명의 숯가루를 치료제로 팔고, 계면활성제 없는 비누를 판다. 유사과학이 컬트로 존재하는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공공의 영역에 침투한 유사과학은 박멸해야 한다. 그들은 전염병이다.
 
최근 유사과학 단체의 행사에 과학기술정통부가 후원하는 일이 있었다. 과기정통부는 한국 과학의 발전을 담당하는 유일한 정부기관이다. 백신거부운동 등 공공에 해악을 끼치는 유사과학 활동을 막아도 모자랄 판에, 과기부는 사람의 눈을 가리고 투시를 통해 숫자를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가 세운 연구소의 행사를 후원하려 했다. 이제라도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적어도 어린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노력은 해야 한다. 유사과학이 우리 아이들 목숨을 노리고 있다. 과학에 대한 무지는, 아이들을 죽인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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