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사법농단에 묻힌 상고심 개혁
입력 : 2019-07-29 06:00:00 수정 : 2019-07-29 08:20:01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로 상고법원 도입이 지목되면서 상고제 개편엔 '적폐' 낙인이 씌었다. 그러나 상고심 개혁은 '양승태 대법원' 전임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부터 현 김명수 대법원장에 이르는 3대째 대법원의 역점사업 중 하나다
 
대법원이 상고심 개혁의 이유로 호소하는 건 대법원의 정책법원 기능 강화다. 대법원의 법률 해석은 판례가 돼 하급심까지 영향을 미친다. 1·2심 판결문에는 늘 판단 기준으로 법률과 대법원 판례가 제시된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파급력을 가지는 판례는 그 자체로 정책 수립의 역할을 한다. 지난해 6월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한 뒤 그해 11월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입영 거부에 대한 판례를 변경하자, 올 초부터 무죄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미투'와 함께 올 초 우리사회에 논란을 가져온 안희정 전 충남지사 유죄 판결문 속 '성인지 감수성'도 지난해 대법원 판례에 기인한다.
 
신중한 법률 해석과 법령 통일을 위해 치열한 논의와 숙고를 거듭해야 하지만 그러기엔 대법관들이 너무 바쁘다는 게 대법원의 변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법원에 접수된 본안 사건 수는 형사 23995, 민사 19156, 행정 3866, 가사 702, 선거 10건으로 총 47979건이다. 대법관 14명 중 재판을 하지 않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12명으로 거칠게 나눠보면 1인당 연간 4000건의 사건을 맡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본안 외 사건도 17965건 접수됐다. 기소의 주체인 한 검사도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한민국은 고소공화국'이라며 사건 수가 많은 현실을 꼬집었는데, 법원의 변에도 힘을 보태는 비유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최근 관련 간담회에서 "대법원 접수 사건 수가 90년대에 비해 5배가 넘는다"면서 "과거에 비해 사건이 많아진 것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어려운 사건이 접수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자리에선 '이용훈안'(고등법원 상고부)'양승태안'(상고법원) 외 상고 허가제나 대법관 증원 등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단순히 사법농단과 연계해 적폐로 치부해버리기엔 그 요구의 시간이 짧지 않고, 수치나 현실적 변화를 든 근거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대법원 판결은 1·2심에서 거듭 유죄 판결을 받아온 '혹시라도 있을 억울한 피해자'를 구제할 마지막 판단이기에 그 결정의 무게가 더욱 무겁다. 감당하기에 대법관의 어깨가 너무 무겁다면 짐을 줄이거나 나눠 들 방안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엄밀히 말해 사법농단 공소사실에 적시된 문제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무리한 사법행정권 남용'이었지 상고제 개편 자체가 아니다. 불신에도 여전히 사법이 필요하다면 편견 없는 개혁 논의 기회는 적어도 삼세번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최서윤 사회부 기자(sabiduri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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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서윤

사회부에 왔습니다. 법조계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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