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양극화 치닫는 빈부와 이념, 그리고 양성
입력 : 2019-08-01 06:00:00 수정 : 2019-08-01 06:00:00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부자와 빈자라는 계층 간의 널뛰기 '양극화'는 오랫동안 경제생활에서 빚어지는 빈부격차의 문제로 인식되었다. 언론은 상위 1% 내지 10%가 차지하는 부의 편중과 도덕적 빈곤을 우려하였고, 정부는 부자와 빈자들의 격차를 줄이려고 부단하게 노력하였다. 모든 정부는 격차해소를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여전히 간격이 크다.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역사나 현대 중국의 실용주의 이후 경향을 보면, 양극화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서만의 숙명이 아니다.
 
양극화는 언제부턴가 빈부를 넘어 전선이 확장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념의 대립으로 초래된 좌와 우의 양극화를 들 수 있다. 좌와 우가 서로 극단화를 지향한다. 우향우의 끝을 지향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수상은 국내외의 비판을 무릅쓰고 정치 캠페인에서 '보다 짜릿한 효과'를 노린다. 한국 사회에서 이념의 극단화는 정치뿐만 아니다. 태극기부대의 우경화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근로자들도 노동조합법을 무기로 극단으로 치닫는다. 노동쟁의 현장에서 '민주'는 있을지언정 평화는 찾기 어렵다.
 
유럽에서의 난민은 극우 테러범들의 표적이 된다. 앙겔라 메르켈 수상의 친난민 정책을 지지하였던 독일 보수정치인 발터 뤼프케는 금년 6월 극우 테러범에게 저격을 당하였다. 서구 공항들이 "외부에서 테러범들이 들어온다"는 가정 아래 검색을 강화시킴은 현실과 동떨어진다. 공항 검색을 강화하여 테러를 막을 수 있다는 발상은 참 순진하다. 외신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테러는 이민자들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이민자들을 혐오하는 자국민들이 저지른다.
 
리처드 J. 맥알렉산더가 '서유럽의 테러 사건 데이터(TWEED)'를 활용해 작성한 논문(워싱턴포스트 2019.7.19.)에 따르면, 이민자들을 향한 증오가 우익들의 공격을 유발한다. 유럽에서 이민자 숫자와 테러 사례가 비례한다. 좌익 테러, IRA나 ETA와 같은 분리주의자 테러, 바스크족(스페인) 테러는 이민과 무관하다.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독일에서 벌어졌던 86건의 테러 사건 중 60%가 우익 테러범으로 추정된다.
 
흔히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빼앗아 경제적 곤란으로 말미암아 우익 테러범들이 이민자들을 공격한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맥알렉산더의 분석에 따르면 이 추론은 증거를 찾기 어렵다. 난민들이 우익 테러범들과 일자리를 두고 다툴 가능성은 없다. 우익들은 이민자 자체를 공격한다. 우익 테러범들은 동유럽 이민자들보다 무슬림 이민자들을 주로 공격한다. 무슬림 이민자들에 대한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의 테러는 일자리를 명분으로 삼지만 속내는 따로 있다고 봐야 한다.
 
이데올로기 양극화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양성의 양극화이다. 종래 음양의 이치로 표상되었던 양성은 대립의 상징이 아니라 화합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하늘 같은 남자'라는 말을 오해한 남성들의 잘못으로 일부 여성들은 남성을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단군신화에서 왜 웅녀가 남자가 아닌 하느님의 아들과 혼인하였겠는가? 음양오행에서 하늘은 우러러 받드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양을 나타내는 공에 불과하다. 음을 나타내는 대지가 없었다면 인류는 지구에 발을 붙일 수 없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대지를 인류의 어머니라고 믿었다.
 
생태인류학적 성찰이 부족했던 일부 남성들의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전 세계는 미투(#MeToo) 혁명에 휩싸였다. 이 혁명은 성 평등을 넘어 여성우위가 도래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언제부턴가 양성은 음양의 이치를 떠나 우향우 좌향좌 하면서 서로 지구의 반대편으로 치닫게 되었다. 심각한 성의 양극화이다. 미인대회가 수면 아래로 내려갔음은 물론이려니와 "아름답다", "매력적이다", "섹시하다", "예쁘다", "잘생겼다", "못생겼다", "뚱뚱하다" 등 성차별적 낱말들이 국어사전에서 퇴출될 지도 모른다. '여자가…'처럼 여성이 주어가 된 문장은 기피대상이 될 것이다. 작가뿐만 아니라 대중 앞에 나서는 정치인, 학자, 강연자 등은 중성적 언어를 쓰거나 말을 더듬어야 할 것이다.
 
빈부, 이념, 양성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된다. 증오와 폭력 그리고 대립이 확산된다. 양극화 문제를 누가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빈부의 양극화는 정치인, 기업인 그리고 노동조합의 협력으로 풀 수 있다. 그 해법은 신뢰와 양보 그리고 호혜에 있다. 다음에 이념(사상)의 양극화는 누가 풀까? 이념의 양극화를 틈타거나 조장하여 좌·우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만들고 자파 결속을 도모하면서 선거 승리를 노리는 정치인들 말고. 중도가 아닌 중용의 도리를 잘 이해하는 정치가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마지막으로 양성의 양극화는 누가 풀 수 있을까? 결자해지(結者解之)에 따르면, 맺은 쪽이 풀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강자의 미덕은 관용"이라는 위인전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강자라고 생각하는 쪽이 풀어야 한다. 여성계는 "아직 양성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말한다. 여성이 강자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남성은 또 원인자로서 부메랑 효과 때문에 적절한 주체가 아니다. 양성의 양극화는 어느 한쪽의 대승적 결단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가해자들의 집단적 반성과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 가정, 일터, 교단, 강단 그리고 언론에서 재발방지를 향한 비상한 노력이 절실하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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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창현

산업1부에서 ICT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