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한일 경제전쟁에 승자는 없다
입력 : 2019-08-08 06:00:00 수정 : 2019-08-08 06:00:00
김의중 정치부장
헤이세이 초기 일본은 반도체 강국이었다. 1989년 1월 아키히토 일왕이 즉위하고 이듬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은 그야말로 승승장구했다. 반도체 상위 10개사 가운데 무려 6개가 일본회사였을 정도다. NEC와 도시바는 각각 1위,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일본의 반도체 회사는 상위 10개사에서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2019년 1분기 매출액 기준 현재 1위는 미국 인텔이지만, 삼성전자가 뒤를 잇고 SK하이닉스가 무시 못 할 점유율을 확보 중이다. 아베 정부가 지난달 콕 집어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을 규제한 것과 무관치 않다. 지난 2일에는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목록에서 한국을 제외하고 7일 시행세칙까지 발표했다. 한국을 끌어내림으로써 일본이 다시 한 번 반도체 강국을 꿈꾸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실제 우리기업의 타격은 작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본에 발목이 잡힌 사이 글로벌 경쟁사들이 공격적인 투자로 경쟁력 제고에 나섰다. 세계 1위 업체인 미국의 인텔은 시설투자를 늘리기로 했다. 3위 업체인 TSMC는 첨단 극자외선(EUV) 공정과 5G 이동통신용 반도체 생산 증대에 나섰다. 이런 투자 계획은 공교롭게도 일본의 수출 규제 직후 잇따라 공개됐다.
 
일본의 도시바도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점유율 2위인 도시바메모리는 최근 회사 이름을 '키옥시아(Kioxia)'로 바꾸고 기업공개(IPO)를 추진한다. 반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2030년까지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는 목표를 내놓은 삼성전자로서는 일본의 규제가 뼈아프다.
 
우리정부와 청와대는 "우리도 일본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맞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한국의 경쟁력이 큰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경우 일본에 대한 수출 비중이 올 상반기에 각각 전체의 1.03%와 0.64%에 불과하다. 우리의 대일본 수출규제 자체로는 일본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아베의 각성은 100번 촉구해도 지나치지 않다. 누가 뭐래도 이번 사태의 책임은 아베 내각에 있다. 일본제품 불매 운동으로 일본기업 역시 작지 않은 피해를 받고 있다는 점을 일본정부는 직시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맞대응이 일본 압박을 넘어 정면대결로 가는 건 무리수다.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국민이 질 수밖에 없어서다. 정부가 중장기적 대응책을 마련 중이지만, 당면한 기업의 손해는 막을 길이 없다. 아무리 일본에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그냥 감수하기엔 기업 입장에서 너무나 가혹하다.
 
일본이 백색국가에서 우리를 제외했다고는 하나, 포괄적인 허가를 개별적으로 할 뿐 전면적인 수출금지는 아니다. 시행 과정에서 얼마든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는 감정이 격화돼 대화에는 다소 소홀한 것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탈일본'은 당연히 추진해야 할 과제다. 다만 대화 노력 병행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대응에 맞대응을 이어가며 극으로 치닫는 건 어쩌면 반일감정을 부추긴 아베의 노림수에 놀아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철저하게 국익만 생각하고 일본에 구실을 줘서는 안 된다. 
 
이번 싸움에선 한일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김의중 정치부장(zer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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