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무역분쟁과 엔지니어의 연봉
입력 : 2019-08-09 06:00:00 수정 : 2019-08-09 06:00:00
"일본 IT 기업의 연공서열 파괴, 신입사원도 연봉 1억원"이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 일본의 전자업체가 구글과 페이스북 수준으로 대졸 신입사원 연봉을 준다는 소식이다. 화웨이가 인문계 박사에 억대 연봉을 준다는 기사도 있다. 한국의 IT 인재들이 고액연봉을 받고 중국으로 빠져나간다는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세계는 글로벌 인재경쟁에 돌입했고, 그들 대부분은 엔지니어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대졸 신입 엔지니어 초봉은 2억원에 가깝다. 물론 모든 공학분야가 그렇지도, 높은 연봉이 높은 가처분 소득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국 공대생의 취업 1순위는 여전히 실리콘밸리다. 이공계 인력의 60%는 탈한국을 선호한다. 그들을 사로잡는건 단순한 연봉차이가 아니다. 결혼·육아·교육 등에서 탈한국은 삶의 질을 분명히 향상시킨다. 엔지니어는, 과학·수학 등의 기술적 지식을 사용해, 실용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국적에 상관 없이 어디서나 동일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으며, 바로 그 보편성 덕분에 이민자 중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중산층에 진입한다. 엔지니어는 언제든 국적을 초월할 수 있다.
 
책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은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엔지니어 집단의 탄생을 추적한다. "근대 엔지니어는 산업 사회 사회라는 인류사의 새로운 문명을 이끈 역사의 주역"이었고, "생산 관계의 변혁을 가능케 한 기술 혁신을 이끌어 근대 산업 사회의 물질적 토대를 만든" 집단이다. 근대 엔지니어는 진보의 상징이었다. 국가마다 엔지니어 집단의 탄생과 성장은 달랐지만, 공학이 발전하는 과정은 직간접적으로 국가와의 관계 속에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유럽과 미국의 엔지니어들은 단체를 결성해 사회 세력화를 이루어냈다.
 
가브리엔 헥트는 "기술은 정치를 필요로 하고, 정치는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남겼다. 기술과 정치의 이중주는, 국가마다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남겼다. 영국 엔지니어는 노동 계급에 가까웠고, 프랑스에서 그들은 경영자 집단이었다. 국가가 철저히 관리했던 독일의 엔지니어가 높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것과는 달리, 미국의 엔지니어는 사회적 엘리트로 편입되지 못했다. 미국의 경우 기업이 엔지니어들의 전문가 협회 결성을 끊임없이 방해한 역사도 있다. 즉, 엔지니어 집단이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온 역사는, 정치와 경제라는 두 축 사이에서 벌어진 끊임 없는 투쟁의 역사다.
 
논문 <기술과 정치 사이에서 엔지니어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성의 변화>는, 경부고속도로, 당산철교, 4대강 사업을 통해 한국 엔지니어 집단을 분석한다. 한국 엔지니어 집단은 기술의 중립성에 대한 신념이 강하다. 이런 생각은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가 만들고, 이후 이과?문과를 구분하는 교육정책으로 고착됐다. 엔지니어의 기능적 전문화는 기술중립성이라는 신념 하에, 철저히 탈정치화된 역할 모델을 창조했다. 하지만 이런 탈정치화는 과도한 정치화의 기원이 된다. 국가가 과학기술발전의 모든 제도적 자원을 독점하는 상황에서, 엔지니어가 정부정책을 옹호하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경부고속도로, 당산철교, 4대강에는 한국 엔지니어 집단의 탈정치화와 과도한 정치화의 기묘한 동거가 기록되어 있다.
 
결국, 한국 엔지니어 집단은 사회를 주도하는 개혁적 주체가 아니라, 사회 발전을 위한 수단적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관료 진출을 목표로 삼았던 원로 공학자들의 생각은 틀렸다. 근대 엔지니어 집단은 전문직의 자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를 위해 협회를 만들어 국가와 협상했다. 관료에 진출하는게 전문직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킨다는 믿음은, 한국 엔지니어 집단과 과학기술계의 고질적인 망상이다. 한국엔 엔지니어협회가 없고, 한국 엔지니어는 전문직 엘리트로 성장하지 못했다. 낮은 연봉은 협회의 부재 때문이다.
 
공돌이라는 말은 엔지니어를 비하한다. '문송하다'라는 말에는, 나는 문과지만 너희보다 낫다는 비아냥이 숨어 있다. 일본과의 무역분쟁은 반도체라는 첨단 공학 분야에서 벌어진다. 그 전쟁에서 싸울 장수는 엔지니어다. 국가 위기 사태에도 당쟁만 일삼는 정치관료에겐 희망이 없다. 엔지니어가 사회를 바꿔야 한다. 젊은 엔지니어에게 투자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당장의 전쟁에서도, 미래의 한국에게도, 오직 그들이 희망이기 때문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Woo.Jae.Kim@uottawa.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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