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투명화의 그늘
입력 : 2019-08-28 06:00:00 수정 : 2019-08-28 06:00:00
전월세 거래 신고를 의무화하는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최근 발의됐다. 개정안은 전월세 거래도 주택 매매처럼 30일 이내에 실거래가 신고를 의무화하는 것이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안호영 의원 대표 발의의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사실상 전월세 실명제가 시행된다. 국회의원 대표발의의 개정안이지만 이는 국토교통부의 즉 정부와 사전 논의를 바탕으로 추진하는 사안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전월세 시세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특정 지역의 임대료 급상승을 억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주택 보유자의 투기 목적 거래도 일정 부분 제한할 수 있을 전망이다. 여기에 거래 내역이 공개됨으로 인해 과세 당국 입장에서는 세금 부과의 근거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 또 세입자 보호 장치도 늘어난다. 주택임대차 계약이 신고제가 되면 자동으로 확정일자가 부여돼 임차인으로서는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어서다. 일부 임차인 즉 집주인이 과세를 우려해 확정일자 신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꼼수가 원천 차단되는 셈이다.
 
나아가 내년부터는 올해 발생한 연 2000만원 이하 임대소득에 분리과세가 이뤄지는 만큼 임대소득 과세 환경이 무르익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뒤로 따져볼 때 분명 긍정적 효과가 상당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려되는 부작용은 적지 않다. 투명한 거래가 오히려 임차인들에게 독으로 돌아갈 수 있다. 즉 집주인들이 임대료를 올려 세금 부담 등을 세입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요가 공급보다 월등히 많은 역세권이나 대학가 등은 더 큰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거래가 투명해지는 대신 주거비용 부담은 더 커지는 것이다. 여기에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전체 주택의 공급 물량이 줄어들 개연성도 크다. 임대료 상승이 불가피해 보이는 이유다.
 
또 다주택 보유자라 하더라도 월세로 생활하는 서민형 임대사업자의 반발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정년 퇴직 후 쌈짓돈 모아 마련한 주택에서 나오는 소액의 월세로 생활하는 이들이라면 거래 투명화가 되레 삶의 무게를 더해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예컨대 한 달 월세가 백만원 남짓하는 다가구주택 소유자의 경우 수입이 드러나면서 노령연금이나 의료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초래될 수 있다.
 
제도 정착을 위한 단속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거래 규모를 떠나 거래건수는 적게 잡아도 수천만, 수억건을 넘을 것이 분명이다. 해당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물리적으로 어려울 뿐더러 허위나 부정 신고를 파악하는 것 또한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지자체의 인력과 행정 예산이 뒷받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때문에 정부는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특정 지역과 금액 기준을 정해 시범적으로 실시한 뒤 전국으로 확대하는 단계적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신고 주체의 저항과 지역 형평성 문제, 임대료 상승 등과 같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그늘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 그 그늘이 서민에게 드리우는 것이라면 제도 도입의 정당성이 아무리 확고하다 하더라도 정부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제도 투명화가 애꿎은 서민들의 부담만 늘리는 식이라면 그 정책은 정당성과 관계없이 실패한 정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권대경 정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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