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소·부·장 국산화, 단기엔 안된다
입력 : 2019-09-05 06:00:00 수정 : 2019-09-05 06:00:00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한지 두달이 지났다. 그래도 염려했던 것보다는 정부와 국민 모두 냉정을 빠르게 되찾는 모습이다. 초기엔 모두들 뜨겁게 차오르는 화를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그래도 실질적이고 유효한 대응 방법을 찾는 데 열중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어느새 '노(NO) 재팬' 구호는 '노 아베'로 바뀌고 있고, 정부와 기업은 언제 또 추가로 터질지 모르는 일본 당국의 도발에 좀 더 근본적으로 대응하고자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돌이켜보면 기초산업 분야에 대한 관심이 이 정도까지 사회전반으로 퍼진 적이 있었나 싶다. 어쩌면 먼 훗날 돌아볼 때 일본 수출규제는 국내 산업 생태계의 취약점을 개선하고 극복하게 한 좋은 기회였다고 평가될는지도 모르겠다. 단, 몇 가지 필수 조건이 붙는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먼저 정부의 관련 연구개발 지원 대책에 대한 차후의 평가가 수치중심으로 진행돼선 안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부가 소재·부품기업 특별법을 이미 2001년에 만들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후 소재·부품 산업 전반의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핵심소재 부문에선 되려 격차가 더 벌어졌다고 한다. 이는 결국, 어려운 분야 대신 쉬운 분야에 쏠림현상이 있었다는 이야기밖에 안되며, 동시에 정부 정책에 대한 수치 중심의 평가가 허상일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 규제를 기업 환경에 맞게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근 중소기업계에서는 소재·부품 국산화 추진과 맞물려 화학물질 관련 안전사고를 방지하고자 제정된 일명 화평법(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 화관법(화학물질 관리법) 등에 대한 부담을 토로하고 있다. 화학물질 하나를 등록하는 데 수천만원의 비용이 발생하므로 영세 기업 입장에서는 선뜻 투자에 나서기가 부담스럽다는 지적이다. 그렇다고 안전을 도외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필요한 규제는 하되, 중소기업들에 대해선 정부가 입장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비용 부담을 덜 방안을 모색하거나 절차를 간소화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밖에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신뢰 구축 또한 시급하다. 최근 정부가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을 발굴하고 지원과 투자로 시너지를 낼 대기업과 이들을 매칭하는 작업을 구상 중인데, 이 사업이 지속되려면 무엇보다 대·중기 간 신뢰가 바탕에 깔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동안 사실상의 수직계열화나 기술탈취 등의 이슈로 얼굴을 붉히곤 했던 대·중기 사이에 정부가 꼭 필요한 시기를 맞아 중간자로 나선 만큼, 양자간 신뢰 구축과 상생에 끝까지 힘을 쏟아야 한다. 대기업 입장에서도 무조건적인 퍼주기식 지원에 머무는 것이 아닌, 상생을 위한 동반자로서의 대·중기 관계가 정립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새로운 분야의 연구와 개발에 도전하는 것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사회전반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점이다. 기초산업·기술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어쩌면 이밖에 다른 모든 요소들은 자연스레 해결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재·부품·장비 국산화가 단기에 이룩될 것이란 섣부른 기대에 젖지는 말자. '이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심경으로 교육과 산업의 기반을 튼튼히 하며 사회전반에 걸친 노력을 장기적으로 기울이는 것만이 진정한 극일의 길일 것이다.  
 
김나볏 중기IT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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