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전 세계 ‘건축 쓰나미’ 시대…‘공간’이 미래 결정한다
현재 세계 절반인 도시인, 2050년이면 75%…“인류 생존, 인간 이해한 건축에 달렸다”
공간 혁명|세라 골드헤이건 지음|윤제원 옮김|다산사이언스 펴냄
입력 : 2019-09-06 06:00:00 수정 : 2019-09-06 06: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루데레일스 거리 중앙에는 긴 판자집들이 늘어서 있다. 2010년 끔찍한 지진으로 집을 잃은 150만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임시 대피소다. 지붕은 방수포, 바닥은 흙인 이 단칸방에는 매일을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전기도 수도 시설도 없이 그들은 자동차와 트럭의 소음 공해에 뒤덮여 살아간다.
 
미국 일리노이주 플래이노에 있는 레이크우드 스프링스는 중산층이 살고 있는 주택지다. 하지만 이 곳 역시 인간이 살기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다. 집 구석구석 설치된 PVC 배관은 휘발성 유기 화합물이 토양으로 흘러 들어 주민들의 식수를 오염시킨다. 석고 벽은 방음이나 단열 효과가 거의 없고, 획일적으로 방을 구획한 탓에 창문엔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다.
 
전 하버드 교수이자 건축 평론가인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은 신간 ‘공간 혁명’에서 이러한 건축물들을 ‘실패한 공간’의 대표 사례로 소개한다. 건축 비용이 많고 적음에 따라 아이티와 미국의 사례가 나뉘긴 하지만 둘의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건축이라는 점.
 
최근에는 이런 공간에 사는 아이들의 학습, 발달 장애를 겪는다는 과학적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저자는 실제로 영국 34개 학교에서 학생 75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인용한다. 건축 환경 요인에 따라 조사에 참여한 학생들의 학습 진도는 25% 가량 차이를 보였다.
 
창문이 없고 리놀륨 바닥에 플라스틱이나 철제의자를 쓰는 아이들과 좋은 조명에 푹신한 가구에 앉는 아이들은 성격과 태도, 학업 성적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구 결과에서도 55데시벨 이상의 환경 소음은 호흡리듬을 흐트러트리고, 65데시벨이 넘는 소음은 심혈관계에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골드헤이건은 “국가나 도시, 조직의 잘못된 판단으로 학생 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실패작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살아간다”며 “사람들은 그것이 사회적, 인지적, 정서적 문제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간다. 실제로 당신도 누군가의 ‘선택’이 만들어낸 산물에서 살고 있지 않나”고 반문한다.
 
저자에 따르면 앞으로 세계 인류는 ‘건축 쓰나미’ 시대에 살게 된다. 경제 위기가 오지 않는 한 현재 세계 절반인 ‘도시 인구’는 오는 2050년 75%의 비중까지 늘어난다. 중국은 도시 거주자가 3억명 늘어나 총 10억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이를 수용하려면 현재 뉴욕시 만한 도시가 35년 간 매년 하나씩 생겨나야 한다. 이 대대적인 공간적 혁명에서, 저자는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축 결정이 결국은 미래 수억명의 신체와 정신 건강, 사회의 생존 방향과 직결돼 있다고 주장한다.
 
성공적인 미래 건축의 방향을 저자는 영국 윈스턴 처칠의 말에서 찾는다.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간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는 지극히 인간을 향해 있다. 인류가 오페라를 들으면서 느끼는 경험, 은유를 항구의 ‘돛’처럼 표현해 냈다. 사람들은 이 건물을 보며 항구도시의 바람처럼 느껴지는 음악을 자연스레 연상하게 된다.
 
시원한 녹색 정원에 둘러싸인 파리 뤽상부르 궁전 산책길과 격자 형태의 나무판으로 버섯 그늘을 만든 스페인 세비야의 메트로폴 파라솔은 심호흡을 안정시켜준다. 저자는 계단으로 둘러 쌓인 쌈지길을 걸으며 인간 창조력의 위대함을 생각하고, 기하학적 패턴이 그려진 북촌 한옥을 미학적 관점에서도 논한다.
 
하버드에서 교편을 내려놓고 그는 7년간 세계의 메가시티(인구 1000만명 이상)를 돌며 이 책을 집필했다. 지난 수십년 간 건축과 인간의 뇌, 인지 분야의 상관관계에 주목하며 새로운 건축의 미래를 구상했다. “사람은 천장이 높은 방에 앉아 있을 때 더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추상적인 개념에 더 잘 반응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앞으로는 지금까지와 다른 더 광범위한 틀로 건축 환경을 평가해야 한다.”
 
'공간 혁명'. 사진/다산사이언스
 
책 속 밑줄 긋기: 평소에 늘 보던 장소의 더 깊은 부분까지 보이고,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는 눈이 열린다면, 어제까지 내가 지냈던 공간은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어떤 건축물이나 도시 곳곳에서 나 자신을 강력하게 끌어당기는 공간은, 건축 환경이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당신의 공간에 온 것을 환영 한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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