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힘내리’ 박해준 “기적, 누구에게나 일어나길 바란다”
“편안하게 감동 느낄 수 있는 스토리, 나와 닮은 인물 끌려”
“이계벽 감독 눈에 세상은 ‘힘내리’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입력 : 2019-09-20 08:00:00 수정 : 2019-09-20 10:47:1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 배우를 기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영화 ‘독전’ 속 악랄한 악역 ‘박선창’이다. 잘생기고 멋들어진 외모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잘생긴 얼굴은 능글능글하다. 흡사 독을 품은 뱀 같다. 자신보다 강한 악을 향해 서슴없이 고개를 조아리지만 굽히진 않는다. 얼굴에는 이미 독기를 품은 악이 그득하다. 그게 바로 배우 박해준의 얼굴에서 읽혀진 배우로서의 비주얼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데뷔 초반부터 그는 악역에 특화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그건 박해준의 의지는 아니었다. 이 배우의 압도적인 외모에서 풍겨오는 이미지가 선의 그것보단 악의 이면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걸 연출자들은 끄집어 내고 싶기도 했을 듯싶다. 그건 순전히 연출자로서의 본능이고 욕심이다. 놀라운 점은 실제 박해준의 모습은 순하다 못해 조금은 얼이 빠진 바보스러움이다. 극단적으로 상대에 대한 공손함을 드러내며 자신을 낮춘다. 이건 박해준의 실제 본성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 리’ 속 주인공의 동생 ‘영수’란 인물이 박해준을 통해 과거 1970~80년대 교과서 단골 주인공 ‘영수’로 완벽하게 체화됐는지도 모르겠다.
 
배우 박해준. 사진/플레오이엔티
 
영화가 개봉하고 얼마 뒤 서울 삼청동 카페 보드레안다미로에서 박해준과 만났다. 최근까지 여러 작품에서 그를 많이 찾고 있다. 촬영 일정상 영화 개봉 이후 만날 수 있었다. 영화 ‘악질경찰’로 언론과 인터뷰에 나선 뒤 올해만 벌써 두 번째다. ‘독전’ 이후 급격하게 존재감이 커지면서 여러 작품에서 박해준의 존재감과 얼굴을 볼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는 여전히 쑥스럽고 적응이 안 된다며 웃는다.
 
“아직도 큰 스크린에서 제 얼굴을 보는 게 낯설어요(웃음). 이번 영화는 의외로 제가 낯설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매번 악역만 맡아 오다가 생활 연기를 하게 되니 좀 편안한 것도 있었죠. 보는 내내 좋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모든 분들이 정말 편안하게 그리고 감동도 느낄 수 있는 영화란 점에서 많이 끌렸죠. 제 실제 성격과도 많이 비슷한 면도 있어서 더 끌렸고요.”
 
배우 박해준. 사진/플레오이엔티
 
스크린 데뷔작 ‘화차’에서 강렬한 악역으로 등장한 이후 여러 작품에서 섬뜩한 악역을 도맡아 해왔다. 자신도 왜 악역에 감독들이 자신을 많이 찾아왔는지 모르겠다며 웃는다. 결과적으로 ‘화차’의 사채업자 캐릭터가 박해준의 초반 이미지를 강력하게 구축하게 된 계기였을 것이라 본인 스스로 느꼈다고. 이후 장르를 가리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 왔다. 이번 영화는 자신의 영화 필모그래피 가운데 진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전한다.
 
“얘기가 너무 매력적이고 착하잖아요. 하지만 진짜 끌린 건 사실 캐릭터였어요. 제가 워낙 무겁고 어두운 역할을 많이 해왔는데 정말 코미디 연기도 잘 할 자신이 있었거든요(웃음). 실제 성격도 코미디에 더 가까워요. 하하하. 연극할 때는 코미디도 해봤죠. 물론 영화를 할 때는 장르도 중요하고 캐릭터도 중요하죠. 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누구와 작업하느냐일 것 같아요. 차승원 선배와 이계벽 감독. 이 조합에 안 한다고 하면 안되잖아요(웃음)”
 
배우 박해준. 사진/플레오이엔티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고 착한 동료들과 함께 작업한 현장은 너무도 즐거웠다. 영화에서도 나쁜 사람들은 등장하지 않을 정도다. 물론 박해준이 연기한 영수도 마찬가지다. 굳이 지적을 하자면 현실감에서 박해준이 연기한 ‘영수’는 착한 사람이라기 보단 지극하게도 현실에 순응한 적당히 나쁜 인물이다. 여기서 ‘나쁜’이란 단어가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박해준도 충분히 알아들었단 듯한 인상이다.
 
“영수가 착한 인물? 그렇진 않죠.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피를 나눈 형 철수(차승원)와의 관계에서 분명히 고단하고 힘들고 화도 나고 원망하는 마음도 있었겠죠. 결혼한 남자가 친형을 챙기면서 사는 게 쉽겠어요. 더군다나 장애를 갖고 있는 형제를. 그래서 아내의 든든한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한 거죠. 글쎄요, 뭐랄까. 예전에는 존경했던 형이지만 지금은 형을 사랑하면서도 동생으로서의 적당한 원망도 있는 거죠. 아! 한가지 더 그 원망을 영수는 짝뚱 명품을 걸치는 허세로 드러내기도 해요. 하하하.”
 
배우 박해준. 사진/플레오이엔티
 
차승원이 연기한 ‘철수’의 동생 ‘영수’를 연기했다. 극중에선 배우 전혜빈이 연기한 ‘은희’의 남편이다. 하지만 박해준은 영화 속에서 대선배 김혜옥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신인 여배우 류한비도 그 시간에 동행했다. 영화 자체가 차승원이 연기한 ‘철수’ 그리고 철수의 딸로 등장한 샛별(엄채영)의 여정을 쫓는 과정이다. 박해준은 영화에서 형인 차승원을 찾아 나서면서 김혜옥 류한비와 함께 했다.
 
“진짜 아내로 나온 혜빈씨나 친형으로 등장한 승원 선배와는 사실 몇 장면 없어요(웃음).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혜옥 선배님과 한비랑만 같이 다녀요. 하하하. 촬영하면서 혜옥 선배님이 너무 잘해주셨어서 기억이 많이 남아요. 연기하실 때 토라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우셔서 감탄할 정도였으니 하하하. 진짜 촬영할 때마다 ‘저게 내공이구나’ 싶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차안에서 저와 혜옥 선배님 한비가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되게 잘 나온 것 같아요.”
 
배우 박해준. 사진/플레오이엔티
 
이젠 다 알려진 내용이지만 영화는 대구지하철참사가 직접적인 소재다. 여기에 주인공 차승원은 후천적 지적장애인으로 등장한다. 차승원의 딸로 등장하는 아역배우 엄채영은 백혈병 투병을 하는 딸 ‘샛별’을 연기했다. 신파가 등장한다. 국민적 아픔을 지닌 참사가 소재다. 영화에서 희화화 소재로 꽤 자주 등장했던 장애 코드가 나온다. 더군다나 불치병을 앓는 어린이까지. 그럼에도 영화는 ‘착함’을 유지한다. 그 어떤 것 하나도 소재적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그게 이계벽 감독의 힘인 것 같아요. 너무 순수하고 착하신 분이에요. 제가 알고 있는 영화계 분들 중 손에 꼽힐 정도로 착하신 분이에요. 그래서 터부시되는 소재들일 수 있지만 결코 나쁘게 사용을 안 하신 것 같기도 해요. 촬영 전에도 정말 고민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소재들을 활용하면서 누구 하나 아파하는 분 없이 그려 낼까 고민하셨죠. 현장에서 권위는 찾아보기도 힘든 분이셨어요. 결과적으로 너무도 착하게 잘 만드신 것 같아서 저도 너무 기분이 좋죠. 이 감독님 눈에는 정말 지금의 세상이 이 영화처럼 보일 것 같단 느낌이 들 정도에요.”
 
배우 박해준. 사진/플레오이엔티
 
그래서 일까. 영화에는 정말 악인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깡패들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그들조차 착하고 순진하다. 그들을 통해 감동이 전달되는 장면도 있다. 전체적으로 코미디란 장르를 표방하지만 웃음이 아닌 감동이 더 많이 느껴진다. 그래서 박해준도 영화 속 배역으로 존재했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달란 부탁에 주저 없이 한 장면을 선택했다.
 
“제가 이상하게 촬영할 때 눈물이 난 장면이 있었어요. 깡패들이 구급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도로를 정리하는 장면인데. 꽉 막힌 도로가 쫙 갈라질 때 와 갑자기 뭐가 훅 오더라고요. 결국 인간은 착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말도 안 되는 상황이고, 우린 그걸 기적이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그런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났으면 하는 게 바람이기도 하고. 아마 그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아닐까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김재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가 진짜 영화 같은 삶을 살게 된 이란성 쌍둥이 아빠입니다.